[Opinion] 나는 겁이 너무 많아 [사람]

두려움 앞에 서서
글 입력 2020.10.19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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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라는 책을 좋아했다. 책은 생각이 많은 특정한 사람들을 ‘정신적 과잉 활동인’이라 지칭한다.

 

엠비티아이 유행의 반발로, 입체적인 개인을 얕은 정의에 끼워 맞추는 행위를 곱게 보지 않는 시선도 늘었다는 것을 인식하고 난 뒤부턴 분류로 설명하는 게 어색해졌지만, 이런저런 행동들에 대해 나만 그런 것이 아님을 설명 들으면 마음이 안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여튼, 나는 생각이 많다. 그래서 그런지 겁도 많다. 귀신의 집도 못 가고, 무서운 영화를 보면 그날 밤은 이불에 파고들어 꼼짝도 못 한다. 비가 매섭게 오는 날은 하고많은 것 중에 혹시나 내 머리 위에 벼락이 떨어질까 봐 겁이 난다. 발을 헛디뎌 넘어질까 무서워서 계단을 내려갈 때는 손잡이를 꼭 잡고 걷는다.


눈 온 뒤에는 미끌미끌한 바닥에 엎어질까 겁에 질려 펭귄처럼 뒤뚱뒤뚱 걸음을 옮긴다. 혼자 산 지 4년이 되어 가는데도 바람에 문이 덜컹거릴 때, 신발장이 헐거워 저절로 열릴 때, 윗집 소리가 크게 울릴 때마다 심장이 쿵 내려앉아 몸을 움찔거린다. 그렇게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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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것이 많아 피곤할 때도 있지만, 겁이 많은 것에는 장점도 있다. 일단, 무서운 것이 이미 너무 많으므로 오히려 무서워지지 않을 것들이 많다고 볼 수 있다.


또, 많은 겁이 높은 조심성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넘어지거나 흘리는 일이 드물다. 초등학교 육 학년 이후로 길에서 넘어진 적이 없는 사실은, 자신 있는 것 하나 없는 요즘 같은 때에 은근히 뿌듯함이 되어준다. 무거운 물건을 드는 순간, 이걸 떨어뜨리면 발가락이 부러진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무서워져 주의를 쏟아서 조심조심 들게 된다.


겁이 많다는 것은 감수성이랑 공감능력 그리고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좋은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무서운 영화를 보면 유독 덜덜 떨리는 이유는, 무서운 감정을 생생하게 느끼고 죽게 되는 안타까운 주인공에 감정이입을 해서 그런 것이다.


물론 명백한 단점도 있다. 새로운 시도를 잘 못 하는 것이다. 무서워서 번지점프도 안 하고, 짚라인도 안 탈 것이다. 시내가 바짝 붙어 있는 방둑을 따라 묘기하듯 한 발 한발 걷지 않을 것이고, 벼랑 쪽에 서서 사진을 찍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안 해보고 죽는 게 딱히 후회 될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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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되는 것은, 나로서 시도할 수 있는 것들을 피할 때다.

 

나의 겁처럼 타고난 겁이 있는 반면, 어른이 되면 될수록 커지는 겁도 있다. 의견 한 마디 얹을 수 있는 것을 얹지 않고, 벌릴 수도 있는 일을 벌이지 않기로 한다. 완벽하지 못할까 봐 그런 것이다. 완벽하지 않은 것들이 세상 속에서 까이거나 관심받지 못하고, 두어 바퀴 데구르르 구르다가 멈춘다는 것을 너무 잘 알게 되어서 그렇다.


어렸을 때는 다 완벽한 줄 알았다. 아니, 그에 대한 개념도 없었다. 유치원 재롱잔치 때는 내가 제일 옷을 잘 입고 깜찍한 줄 알고 무대에서 춤을 췄다. 문법이 뭔지도 몰라서 영어를 잘하는 줄 알고 외국인과도 종알종알 이야기했다. 그저 내가 완벽이고 완벽이 나였기 때문에 아무 때나 살인미소를 날리고 다니던 어린아이는 이제 없고, 솟구쳐버린 완벽의 기준이라는 딱딱한 장벽 앞에 초라히 서서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하는 어릿광대가 되었다.


그래도, 그 높은 벽을 두른 두려움마저 머리를 치켜 올려다보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가끔은 이런 겁에 도전하려고 노력한다. 나의 방법은 이렇다. 먼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명확하게 구분한다. 좋아하는 것과 관련된 것은 일단 억지스럽지 않고 재밌으니까, 생각을 비우고 ‘혹시 잘 안 돼도, 내가 즐겼으니까 잃을 게 없어’라는 세뇌를 나에게 거는 것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면 즐거움은 어떤 저항 없이 느낄 수 있다. 무엇을 하든 전혀 상관없다! 강변에 앉아 멋진 파도를 바라봐도 좋다. 파도 속으로 뛰어들어 수영해도 좋다. 늘 바라 왔던 것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냥 기다리지 마라. 용감하게 한 발짝 내디디면 이 기회들은 찾아온다. 가슴이 노래 부르게 할 만한 일을 과감히 실행하면 말이다.

 

[미안하지만 스트레스가 아니라 겁이 난 겁니다] 중

 

 

[곽예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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