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그녀와의 대화, 22살의 그녀에게.

그녀와의 대화
글 입력 2020.10.15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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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살의 그녀에게 이 인터뷰를 바치며.


그 때를 기억하기 위하여.


인터뷰 시작.


Q: 이름과 나이는?

A: 너, 2년부터 3년까지.


Q: 인터뷰에 응한 계기는?

A: 새로운 기운을 위해서.


Q: 요즘 가장 즐겨 하는 것은?

A: 우두커니 서서 글자들 나열하기.


Q: 글에 대한 자신의 평가는?

A: 나는 늘 죽은 글만 쓴다. 객관적으로만 살아있는 평가를 쓸 뿐, 내 글자들은 평생 죽어있다.


Q: 가장 신이 날 때는 언제?

A: 내 일필휘지 아래 쓰레기들이 창조 될 때. 하면 할 수록 더 찢어버린다. 그만 관둬야 할 때인 것 같아도 약간 남은 부분이 날 부른다.


Q: 요즘 가장 즐겨듣는 노래는?

A: <맛 없는 크래커>.


Q: 그 이유는?

A: 가사가 마음에 들어서? 특히 <생각 없이 소파에 앉아 갉아먹기에는 딱/ 그것도 하루 이틀이더라/ 아직 더 많은 그대가 날 바라보지만/ 난 그대를 쓰레기통으로> 이 부분.


Q: 가사를 중요시하는 타입인가?

A: 애증이다. 노랫말이 너무나도 깊게 들리던 때 부터 나는 사는게 무서워졌다.


Q: 애증이라, 조금 더 이야기 해줄 수 있나?

A: 딱 그런 것이다. 머릿속에서는 늘 자라나는데 손가락은 움직이지 않는, 시원히 마셔본 적 없어 맛도 모르며 자꾸 목말라하는. 떠올리면 울컥하는데 마주하면 견디기가 싫다. 가슴은 뜨거워지는데 머리는 얼어가는, 그런 것.


Q: 그렇다면 가장 사랑하는 것과 미워하는 것은?

A: 나, 그리고 행복할 때만 웃는 이들.


Q: 사랑이란?

A: 괴롭히는 것. 나는 날 너무 사랑하지.


Q: 아름다움이란?

A: 원칙 없는 자.


Q: 스스로 아름답다고 생각하나?

A: 글쎄, 나는 인생의 미학도  모르면서 다 아는 척 깔깔하는 달이다.


Q: 미학을 모른다는 것은?

A: 허영 때문이다. 뜨거운 사랑은 못하지. 침대머리에서 메모나 끄적일 뿐.


Q: 뜨거운 사랑을 해보지 못했다고 들리는데.

A: 이상한 경험은 해보았다. 밤거리와 내 입에서는 그의 향기가 나고, 바람과 내 머리칼에서는 그 사람의 향기가 나는 그런 이상한 밤. 그게 내 사랑이다.


Q: 조금만 더 구체적으로 말해줄 수 있나?

A: 한마디로 꼭 어항 속을 헤엄치는 것 같다. 밖이 보이지 않을 만큼 파란칠이 되어있는 어항 말이다. 꼭 사춘기 때로 돌아간 기분이든다. 근데 그때와는 다르다. 뭔가 다른거다 이건. 그땐 너무 뜨거워서 그랬다면 지금은 권태가 안으로 굽었달까.


Q: 그런 회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A: 엄밀히 말하자면 회귀가 아닌 나아감이다. 예전에는 물음표를 붙이곤 했지만 이젠 아니다. 나는 벌을 받는거다.


Q: 벌이라 하면, 무엇을 위한 벌인가?

A: 같이 영화를 보면 온전히 영화에만 집중하게 해줬던 남자들. 처음엔 32분 음표 같다가도 결국엔 너무 지루해져서 몸이 베베 꼬이다 못해 내가 피네!라고 외치게 하던 그런 남자들.


Q: 후회하는가?

A: 아니. 늘 그렇듯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다.


Q: 지금 이 인터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A: 그냥 나오는대로 말하는 허접. 아니, 예술인가? 웃기다.


Q: 예술가는 무엇인가?

A: 나에게 물어도 되는 질문인가? 자고로 고통에 파묻혀있어야 사랑받는 법이다. 제 아무리 희망을 늘어놓아도 기대한 것이 아니다. 한번에 해내면 안된다는 뜻이다. 그 누구도 다른 이가 뱉어내는 가래에는 관심이 없다. 들러붙은 가래를 뱉을거면 적어도 죽기 직전에 뱉는 쇼라도 보여주라고! 근데 왜 내가 대답하는지? 난 예술가가 아니다. 적어도 이제까지는.


Q: 나와 너의 차이는?

A: 행복.


Q: 행복할 때, 그때 너를 마주할 수는 없는 것인가?

A: 이 세상 모든 너들은 고통과 사랑 속에서 튀어나온다. 사랑이 너 아니냐고? 너나 사랑이나 고통 속이다. 사랑의 등에는 언제나 너가 업혀있다. 둘을 따로 만난다면 꿈을 꾸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넌 한번도 사랑을 업어주질 않더라.


Q: 그래야 할 이유가 있는지?

A: 글쎄, 없을지도. 저 유럽 어느 성당의 형형색색 아름다운 빛깔 스테인글라스도 잘게 부숴 한데 모으면 검정일 뿐이다.


Q: 검정?

A: 검정. 그곳에 모든 감정과 영감과 상상 그리고 우울한 사랑이 있다. 그게 무언지 알면 알아서 모르면 몰라서 사람들은 표현할 길이 없어서. 그들은 울지도 않는다. 운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눈물에게 노잣돈을 쥐어주어야 하기에.


Q: 해결할 방법은 무엇인가?

A: 책에서도 영화에서도 해결책을 내놓으라고 재촉한다. 어딜가도 답을 찾는 이들 뿐이다. 내가 해결책을 주자면, 그런 것은 없다. 밭에 제초제를 뿌려 잡초를 죽일 수는 있겠지만, 잡초에게 제초제를 뿌려 잡초 안에서 잡초를 끄집어 죽일 수는 없다. 한 몸이 되버린 것은 못 죽인다.


Q: 뭔가 슬프기도 하다.

A: 그렇다. 괴롭게 땀을 내어야 멀어졌었는데 어느 새 내 옆자리에 자리했다는 것이, 퍼런 동굴에서 도망쳐 나오니 바다를 따라 걷고 있다는 것이, 기억을 파내어 들어앉아 있다는 것이, 바닷물을 떠다가 가만히 가슴에 얹힌다는 것이, 물이 마르고 소금기가 박혀 퍼레지는 것이.


Q: 그럼에도 계속하는 이유는?

A: 비참해지는 걸 비참하게 여기지 않기 위해서.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A: 판도라의 상자를 열지 말 것. 좋아하는 노래도, 공감하는 가사도.


인터뷰 끝.

 

 

[김유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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