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오늘은 일기 쓸 게 생각이 안 났다." [사람]

글쓰기의 괴로움에 대하여
글 입력 2020.10.1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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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방을 정리하다가 일곱살 때 썼던 일기장을 찾았다. 오래 돼서 누렇게 변색된 종합장에 삐뚤빼뚤한 선으로 칸을 만들어서 쓴 일기에는 유치원에서 배운 것, 친구들과 나눈 대화, 가족들과의 일화가 꽤 자세히 적혀 있었다.

 

언제 썼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일기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이 문장이다. “오늘은 일기 쓸 게 생각이 안 났다. 아 나의 하루여” 저 일기장은 아마도 엄마의 꼼꼼한 검사를 받았을 텐데, 쓸 내용이 없다고 말하는 솔직함. 그리고 ‘아 나의 하루여’라는 여섯 글자에서 느껴지는 창작의 고통. 문득 지금 이 순간에도 나를 괴롭히고 있는 글쓰기의 고통이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와 함께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생 때 ‘일기 쓰기’라는 숙제를 해본 사람이라면 모두 어렸을 때 이미 ‘마감이 있는 글쓰기’를 경험해본 것이나 다름없다. 짧게는 다섯 줄, 길게는 열 줄이나 되는 분량을 채우는 게 어찌나 고역이었는지. 한 글자 한 글자를 옆으로 길게 늘려서 쓰거나, 널찍하게 띄어쓰기를 하는 식으로 열심히 잔머리를 굴려봐도 칸을 채우는 건 쉽지 않았다.

 

심지어 20편이 넘는 일기를 써가야 하는 방학이면 일기가 밀리기 십상이었고 시트콤 <순풍산부인과>의 ‘미달이의 방학숙제’ 에피소드처럼 가족들을 동원해 공장형 시스템으로 일기를 만들어 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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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제로 일기를 썼던 시기를 지나면서 일기는 쓰고 싶을 때만 쓰는 것이 되었다. 내게 일기가 숙제보다는 취미에 가까워지면서, ‘일기를 어떻게 쓸 것인가’하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일기 20편을 하루만에 만들어 가야 했던 고통만큼은 아니지만, 여기에도 스트레스는 있다. 롤랑 바르트가 1979년 발표한 글 <심의>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나는 ‘진솔함’의 작위성과 ‘즉흥적인 것’의 예술적인 빈약함을 인지하며 절망한다.” 아직까지 이 문장만큼 일기라는 장르를 정확하게 설명하는 문장은 보지 못했다.

 

일기를 쓸 땐 항상 작위성과 즉흥성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굳이 글로 남기지 않고 싶은 감정을 어디까지 솔직하게 쓸 것인지, 솔직하지 않다면 일기가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고민이 되기도 한다.

 

바르트의 글을 읽고 나는 ‘이렇게 유명한 학자도 일기에 대한 고민을 했다니?’하고 감탄하며 기쁨을 느꼈다. 동시에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봤을 법한 일기의 괴로움을 적확하고 섬세한 표현으로 풀어낸 그의 문장을 아주 즐겁게 읽어 내려갔다. 역설적이게도, 정말이지 당장 일기장을 꺼내 일기를 쓰고 싶게 만드는 글이었다.

 

일기장에 글을 쓰는 것과 타인이 볼 수 있는 장소에 글을 쓰는 것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다르다. 나 홀로 간직하고 있을 땐 괜찮아 보였던 것도 밖에 내놓으면 허술해 보이고, 민망해지는 게 글이다. 아트인사이트에서 에디터라는 이름으로 글을 올리기 시작한지 벌써 세 달이 지났다. 일기보다는 리뷰에 가까운 글을 쓰고 있지만 나의 생각과 감상을 최대한 솔직하게 쓴다는 점에서는 일기와 다를 게 없다.

 

그동안 쓴 글을 보면 고치고 싶은 문장, 추가하고 싶은 문장이 수도 없이 떠오른다. 내가 쓴 글을 다시 읽는 일은 나의 부족함을 인정해야 하는 괴롭고도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내게 글쓰기는 넘어야 할 산, 어떤 과제처럼 느껴진다. 누군가 글을 쓰는 이유를 묻는다면 순전히 나를 위해서 쓴다고 답할 것이다. 아직은 나의 글이 타인의 마음에 울림을 주거나, 생각을 트이게 해줄 만한 힘을 가졌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언젠가 그렇게 될 것을 기대하지만)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과거의 내가 남긴 기록은 나에게 앞으로 나아갈 이유를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과거에 쓴 부끄러운 글을 고치고 싶은 욕구일 수도, 다른 사람이 쓴 멋진 글을 조금이라도 닮고 싶다는 기대일 수도 있다. 글감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아 ‘아 나의 하루여’하고 탄식하게 되는 순간은 앞으로도 자주 찾아올테지만, 그럴 때마다 과거의 내가 쓴 글들이 다시 책상 앞에 앉아 글쓰기를 시작할 힘을 줄 것이다.

 

 

[도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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