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는 사람과 하는 사람 [도서]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글 입력 2020.10.02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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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을 생각하려 한다. 구름을 생각하려 한다. 나는 소담하고 아담한 공백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그저 계속 달려가고 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은 여간 멋진 일이 아니다.'

 

좋아하는 작가가 있나요? 누군가 물으면 나는 조금 고민하는 척하다가 무라카미 하루키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루키를 좋아하기엔 내가 좀 젊지 않나 싶을 때도 있지만, 나는 우리 부모님이 나만했을 적에 센세이셔널했다는 그의 소설이, 그의 글이 가깝게 느껴진다.

 

성인이 되기 전에는 그의 글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으므로 내가 하루키 팬이 되길 자처한 건 오래되지 않았다. 하지만 고등학교 3학년 하루 24시간이 모자라던 수험생 시절, 자투리 시간에 1Q84를 보기 시작했다가 결국엔 며칠 만에 1, 2,3 권을 다 읽고야 말았던 그때부터 내가 하루키의 팬이 되는 건 결정되어 있었다.


몇 해전 겨울,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을 읽었다. 책 장을 덮은지 이틀 정도 지나고 다시 처음부터 읽었다. 두 번째 읽을 땐 세 번째로 읽고 싶어 질 것 같은 부분을 필사했다. 어떠한 쓰임을 위해 기계적으로 텍스트를 옮기던 거 말고 다른 이유 없이, 나도 이런 문장을 쓰고 싶어서 펜을 꺼냈던 첫 번째 필사였다. 그리고 그의 유명한 다른 장편 소설들, 수필집을 하나씩 사서 읽어 내려갔고 책 장 한 켠을 하루키 코너로 만들었다. 어떤 작가를 좋아한다고 말할 때, 의당 그의 웬만한 책들은 소장하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더 부지런했던 것도 있다.


지금도 서점에 가면 가장 먼저 '일본 유명 작가' 코너에 간다. 그중 반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두툼한 추리소설들이고 한 칸 정도 아래 익숙한 하루키의 책들이 있다.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같은, 제목부터가 하루키스러운 수필집들을 조금씩 들춰보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발견했다. 하루키의 팬이라면 의당 읽었어야 할 책이다. 한동안 베스트셀러였기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책이고, 하루키 러너 인생을 모르면서 하루키를 안다고 말할 순 없음으로. 늦깎이 하루키 팬은 얼른 이 책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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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제목에서, 그리고 서문에서 말하고 있듯 달리기라는 행위를 축으로 한 일종의 회고록이다. 세 번째 소설 <양을 쫒는 모험>이 호평을 받고 전업 소설가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한 그는 , 자신이 정한 정체성에 맞게 삶을 맞춰나간다.

 

일찍 일어나서 일찍 자기로 결심했으며 담배도 끊었다. 그리고 책상에 앉아서 원고를 쓰는 생활을 길게 이어나가기 위해선, 체력을 지킬 방법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뼈져리게 느꼈다. 소설을 쓴다고 하는 작업은 육체노동이라는 확신하고는 언제 어디서든, 그리고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운동으로써 달리기-마라톤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고, 실행했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자신이 가진 재능의 양이 정해져 있어 많든 적든 재능의 부족분을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연구하고 노력해서 보강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조금이라도 가치 있는 글을 오랜 기간에 걸쳐 계속 써나간다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방법으로, 어떤 방향에서 자신을 보강해가느냐 하는 것이 작가의 개성이 되고 특징이 된다. 그리고 하루키는 소설 쓰기의 많은 것을 매일 아침 길 위를 달리면서 배웠다고 밝힌다.


'계속하는 것-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 일단 리듬이 설정되기만 한다면, 그 뒤는 어떻게든 풀려 나간다. 그러나 탄력을 받은 바퀴가 일정한 속도로 확실하게 돌아가기 시작할 때까지는 계속 가속하는 힘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어디까지 자신을 몰아붙일 수 있는 것인가, 어느 정도의 휴식이 적당하고 어디부터가 지나친 휴식인가, 얼마만큼 외부의 풍경을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되고 또 얼마만큼 내부의 깊이에 집중하면 좋은가 등의 질문들에 달리기는 착실하게 답을 주었던 모양이다. 하나의 불안전한 인간이, 인간이기에 필연적으로 한계를 끌어간고 있으면서, 불투명한 인생을 더듬어 나가며 자신의 안에서 나올 소설에 기대하는 마음을 품을 수 있게 된 것에 달리기가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었다면 하루키는 달리는 것에 깊이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 말한다.


하루키는 달리기를 권유하지 않는다. "자 모두 함께 매일 달리기를 해서 건강해집시다" 따위의 주장을 하는 게 아니다. 그렇지만 읽다 보면, 달리고 싶다. 이게 글의 힘이 아닌가 싶다. 생각해보면 운동에 흥미도 관심도 없던 내가 조금씩 근육을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 싹튼 건 운동하면 머리 좋아진다는 선생님의 말씀이나 헬스장 전단지의 비포 애프터 사진이 아닌, 자투리 시간에 1Q84를 읽으며 아오마메가 매일 공을 들여 스트레칭하는 모습을 텍스트로 따라갈 때였다. 팬케이크에 콜라를 부어 먹어 보고 싶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하루키 소설 속 등장인물이 그렇게 먹으면 음식과 음료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면서 태연하게 푹 젖은 팬케이크를 먹던 터이다. 아마 이런 게 글쓰기의 힘이라는 거겠지.


그는 소설 쓰기와 마라톤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매 구간을 조금씩 완성시켜가며 전체의 큰 부분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작가라고 정했고, 그의 삶의 방식도 작가라는 정체성을 완성시키는 방향으로 만들어냈다. 나는 누구야, 나는 이런 삶을 살고 싶어. 말하는 사람은 많아도 그에 마땅한 삶을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멋진 글솜씨와 튼튼한 체력을 원해,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니까.라고 말할 때 과연 나의 삶은 이에 마땅한 행위들로 채워져 있던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많다.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책을 읽으며 뛰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생동감 있게 사는 것, 그러기 위해선 주어진 개인의 한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자신을 연소시켜 가야 하는 것, 그것이 달리기의 본질이며 그것은 또 사는 것의 메타포이기도 한 것을 더 이상 알고만 있고 싶지 않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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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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