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사라지지 않는 간판들 - 오래된 한글 간판으로 읽는 도시 [도서]

오래되 가게가 사라진다는 건 켜켜히 쌓인 추억들도 단숨에 사라진다는 것
글 입력 2020.09.30 12:27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던 공간도 어느 날 가보면 모두 허물어진 채 새로운 건물이 올려지고 있고, 자주 방문하던 카페도 몇 달 후 방문하면 이미 다른 곳으로 바뀐 후다.

 

모든 게 빠르게 변해버려서 사람들의 온기와 기억조차 쌓이지 못한다. 거리를 가득 메운 간판마저도 저마다의 개성을 잃고 하나같이 천편일률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크기변환]1_2020서울_을지로3가_만선호프_OB베어.jpg

 

 

이 변화무쌍한 도시에서도 제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존재가 있다. 바로 오래된 한글 간판이다. 정겨운 동네의 골목 사이사이를 걷다 보면 발견할 수 있는 각양각색의 간판들. 그저 낡아 보인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간판에 담긴 이야기의 가치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이야기가 담긴 존재를 좋아한다. 사람들이 빈티지 물건을 좋아하는 이유도 물건이 간직한 시간과 이야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쌓이고 쌓인 추억은 물건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든다. 빈티지 물건처럼 오래된 간판도 저마다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제작한 사람에 따라 필체도 모양도 각기 달라서 그 가게만의 고유한 특색이 되어준다.

 

책 <사라지지 않는 간판들>의 저자 장혜영은 한국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한글 간판을 필름 카메라로 수집했다. 저자의 시선을 따라 간판들이 간직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저마다의 개성에 놀라고 과거의 향수에 젖어 든다. 그 시절 거리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하고 그려보게 된다.

 

 

 

장인들의 예술작품, 간판



[크기변환]다운로드 (3).jpg

 
 

왜 한 번도 간판이 예술작품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까? 요즘 간판은 컴퓨터로 손쉽게 출력하여 제작할 수 있지만 9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장인들은 간판에 어울리는 서체까지 직접 디자인하여 간판을 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 시절 제작한 간판들은 모두 각기 다른 개성을 지녔다.

한글의 자음과 모음, 받침이 결합해서 만들어지는 조합만 하더라도 최소 2350자라고 하니, 서체의 크기와 간격을 세심하게 조절해야 했을 장인들의 작업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실감하게 된다.

 

장인들이 제작한 간판은 고유한 예술작품과 다름없다. 장인들은 간판에 자신만의 개성과 능력을 한껏 뽐냈다. 서울 봉천동에 있는 수진의상실 간판 서체는 마치 가위로 자른 듯한 느낌으로 의상실의 특색을 잘 살려냈고, 서울 성북동 골목의 반도 이발관은 자음 니은과 리을을 웃는 입 모양으로 굴곡 있게 조각해 유쾌함을 담아냈다.

 

 

[크기변환]다운로드 (2).jpg

 

 

비슷한 간판 스타일을 지니고 있는 동네도 있다. 을지로 골목을 걷다 보면 함석판 위에 붓글씨를 적은 간판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는 그 지역의 특색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다. 해당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활용하여 간판을 제작하였기 때문이다.

 

을지로와 달리 문래동은 샤시 문을 선팅하고 시트지를 붙인 간판이 많다. 이는 문래동 공업사들이 공통적으로 샤시 문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시트지로 글자를 붙인 건 작업하는 모습을 가려주기 위함이었다. 이렇듯 간판은 동네의 환경뿐만 아니라 그 시절의 이야기까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가게 이름 짓는 법



[크기변환]3_202002서울_문래동1가_우경베벨기어_간판1.jpg

 

 

1. 누가 장사를 하는지를 강조한다

2.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나 포부를 적는다.

3. 주인의 소원이나 바람을 담는다.

4. 이미 알고 있어 기억하기 쉬운 단어를 넣는다.

5. 업종과 관련된 은유적인 표현을 쓴다.

 

 

오래된 가게들은 모두 비슷비슷한 이름을 지니고 있다. 현대마트, 우정 떡집, 소문난 국숫집... 저자는 간판을 관찰하며 발견한 이름 짓는 규칙을 5가지로 나누어 우리에게 설명한다. 주인 사장님 이름이 들어간 가게, 지역 이름을 붙인 가게, 긍정적인 가치를 담은 가게 등 오래된 간판 이름은 일정한 규칙을 지니고 있었다.

 

서울에 있지만 특정 지역의 지명을 붙인 가게는 알고 보니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정착하며 살아온 사장님의 향수가 담긴 이름이었다. 저자가 말해준 5가지 규칙을 머릿속에 넣어두고 거리를 걷는다면 전에는 알지 못했던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할 것이다.

  

 

 

오래된 간판, 새로운 옷을 입다



[크기변환]9975154D5BF93BB81B.jpg

 

 

옛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간판과 가게는 새로운 공간으로 탄생하기도 한다. 속초에 있는 칠성 조선소는 오랜 시간 동안 조선소로 사용되었지만 시대가 변하며 목선이 플라스틱 배로 대체되고 어획량이 감소하면서 위기에 처했다.

  

3대째 조선소를 운영하던 최윤성 대표는 집이자 삶의 터전인 조선소를 허물지 않고 지킬 방법을 고민한 끝에 이곳을 호수가 보이는 카페로 탄생시켰다. 배를 만드는 작업장은 조선소를 기억할 수 있는 전시 공간으로 변화시켰다. 이제 칠성 조선소는 꼭 방문해야 하는 지역의 명소가 되었다.

  

이 외에도 목욕탕에서 멋진 카페 겸 복합문화공간으로 탄생한 행화탕, 종로의 폐업한 바에서 주워온 간판을 달은 을지로의 펍 신도시, 쌀을 도정하고 공장 부자재를 보관하던 공간을 멋진 카페 겸 전시관으로 개조한 성수동의 대림창고, 오래된 여관을 전시장으로 탄생시킨 서촌의 보안여관까지. 과거의 모습과 이야기를 간직한 공간은 젊은 세대의 발걸음을 이끄는 멋진 공간으로 탄생했다.

 

 

[크기변환]다운로드 (1).jpg

 

 

오래된 가게는 동네 주민들이 서로의 안부를 묻는 모임 장소이자 이야기가 오가는 곳이었다. 그런 공간이 사라진다는 건 그 가게가 품은 쌓아온 추억과 시간이 단숨에 사라진다는 것이다. 주민들의 일상이 결코 이전과는 같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오래된 간판은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도시의 역사를 품고 기억하고 있었다.

 

세상엔 사라지지 않아야 할 것들도 있다. 오래된 간판들이 우리 곁에 계속해서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는 너무나도 분명해 보인다.

 

 


 

 

[크기변환]312427485(1).jpg


 

도시의 나이테

켜켜이 쌓인 시간의 조각품

 

간판은 가게를 소개하는 안내판이자 도시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사라지지 않는 간판들』에서는 오래된 한글 간판으로 도시의 삶을 들여다본다. 현대 도시, 특히 서울은 짧은 시간에 산업화의 모습이 축적되어 다양한 간판의 모습이 존재하게 되었다.

 

함석판에 적힌 붓글씨, 유난히 많이 보이는 지방 이름의 간판, 도시의 야경을 만들어내는 네온 간판, 주인들이 직접 만든 DIY 간판, 외래어 표기법 이전에 생겨난 흥미로운 단어가 담긴 간판 등, 시대의 흐름을 담은 간판의 흔적을 따라 도시의 다양한 시선을 만날 수 있다.

 

이 책은 크게 두 장으로 구분되어 있다. 1장 ‘간판이 있는 자리’에서는 도시 속에 조용히 존재감을 드러내는 한글 간판의 형상을 담았다. 동네 특성을 담은 간판, 시대의 유행을 보여주는 간판, 주인의 소망이 담긴 간판 등이 어떻게 이미지로 구현되는지 살펴본다. 화려하게 돋보이는 간판이 아닌 세월의 흔적이 담겨 소박하지만 진솔한 간판이 우직한 울림을 주는 것처럼 주인의 노력과 정성이 담긴 간판을 만나보자.

 

2장 ‘간판에 쌓인 시간’에서는 가게와 주인에 초점을 두어 이야기를 건넨다. 간판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에도 주인의 의지와 애정이 필요하다. 매일 성실하게 살아가는 주인의 정성이 담겨 있기에 간판과 가게가 오래 유지될 수 있던 게 아닐까. 시시각각 변하는 도시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오래된 가게들은 언제든 다시 찾아갈 수 있는 이정표가 되어주는 것처럼 간판에 쌓인 시간의 의미를 되새겨보자.

 

 

사라지지 않는 간판들

-오래된 한글 간판으로 읽는 도시-

 

 

지은이 : 장혜영

 

쪽 수 : 224쪽

 

출판사 : 지콜론북


발행일

2020년 08월 25일


정가 : 15,800원

 

 

 

PRESS 임정은.jpg

 

 

[임정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