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Netlfix & Watcha. 인기 절정의 작품 - 대기화면 [문화 전반]

글 입력 2020.09.2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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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키코모리, 속된 말로 방구석 찐따라는 낙인이 찍히던 사람들이 이제는 책임감 있는 어른으로 보이는 기이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 방구석에서라도 살아남기 위해서 하릴없이 문화 콘텐츠를 찾아 떠돈다. 연간 성장률 평균 21%라는 기록적인 수치를 기록한 OTT 산업이 이를 증명하며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 중 한 명으로서 나는 왓챠를 애용하는데 어떤 이는 넷플릭스를 애용할 수도 있다. 서로 엎치락뒤치락 겨뤄대는 이 두 플랫폼은 분명 저마다의 특징이 있을 것이고 그 차이에 따라 이용자의 선택이 달라지겠으나 아이러니하게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인기 순위 1위를 절대 놓치지 않는 것이 바로 ‘대기화면’이라는 것이다. 무엇을 볼지 생각하느라 시간 다 보낸다는 속설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The Great Culture Depression



경제 대공황은 대량생산으로 인한 잉여 생산물의 범람과 소비 시장의 포화 상태의 결과물이었다. 물건이 넘쳐나고 팔 사람은 있는데 살 사람이 없으니 어찌 경제가 움직이겠는가. 그 당시에는 물질적인 생산품이 문제였다면 지금 내 모니터 속의 문제는 디지털 세상의 생산품, 즉 문화 콘텐츠다. 코로나 덕분에 뜻하지 않게 소비 시장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콘텐츠 산업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그 덕분에 다양한 작품을 골라 볼 수 있는 선택지가 늘어났으나 결과는 어찌 된 영문인지 문화적 대공황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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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Edu Grande on Unsplash

 

 

21세기 사회에서 시장의 포화상태는 일어나기 힘들다. 인터넷으로 물리적 제약을 뛰어넘어 전 세계가 연결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데 어찌 시장이 포화가 될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이 문화적 대공황은 양적인 차원이 아니라 질적인 차원에서 일어난 시장 포화 상태로 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교육과 경제적 성장으로 교양 수준이 높아져 가는데 만들어지는 콘텐츠는 엇비슷하니 취향에는 맞으나 봤던 것 또 보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고 새로운 것을 찾고는 있지만 새로운 것은 보이질 않으니 소비는 안 한다. 하지만 시장의 수요는 그대로 남아 있으니 이를 노리고 이런저런 작품들을 마구 쏟아낸다.


대부분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어디에서나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게 되면서 우리는 물리적 제약을 뛰어넘어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이 수도 없이 많은 콘텐츠를 집에 앉아 편하게 소비할 수 있는 조건을 갖췄고 코로나로 인해 격리 생활이 길어지면서 이를 아낌없이 활용하고 있다. 이미 안정적으로 활용이 가능한 소비 시장은 확보가 됐다는 뜻이다. 그럼 우리의 이 수요를 충족시킬 공급을 해결할 일만 남았다.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초등학교,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까지 내가 배웠던 것은 주로 미술이나 음악의 역사 같은 학문적 지식과 작품을 어떤 식으로 만드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지식적인 측면과 생산적인 측면의 예술 교육을 10년이 넘는 시간을 거치면서 받았으나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식으로 활용하는지는 배우지 못했고 주변에서 배울 기회도 마땅치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예술 작품을 만들 줄 알고 이에 대한 지식은 있으면서도 이러한 것들을 어떻게 쓰는지 방법을 몰라 썩혀두고 있다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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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Alice Dietrich on Unsplash

 

 

학창시절의 기억을 떠올려본다면 아마 다들 공감하리라고 생각한다. 도리아식이니, 이집트식이니 따위를 논하면서 기둥의 모양을 외우고 음악의 아버지니 어머니니 하면서 작곡가들 이름을 적는 시험을 치고는 했었다. 실기나 수행평가가 있다고 하면 리코더 운지법을 미친 듯이 익히고 단소 소리 내려다 폐활량만 키웠다. 그 결과 우리는 이게 무엇인지는 알고 대충 어떻게 부는지는 알지만 무엇을 보여주고자 하는지는 아리송하다. 차라리 이게 무엇인지는 모르더라도 어떤 것을 전달하고 싶은지나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지를 풀어내는 방법을 알고 있는 편이 일반 시민으로서는 훨씬 이득이다. 이런 저런 자료를 들고 분석을 해도 학자가 되려는 사람이 아닌 이상은 별 쓸모가 없지 않은가.


문화와 예술은 인간 내면의 감정과 사고방식을 비롯한 개인의 내적 세계를 바탕으로 태어나는 존재다. 그렇다고 해서 지식적인 측면이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과학이나 수학처럼 지식적인 욕구를 채우고 어떠한 현상을 논리적으로 밝혀내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기에 이해하고 공감하는 측면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친구 혹은 지인과 만나 대화를 나누는 동안 저 사람이 뱉는 단어는 어떤 작용을 바탕으로 도출된 결과물이며 그로 인해 나로부터 어떠한 반응이 나오는지에 대한 설명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분석하지는 않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평행에서 접점으로



콘텐츠 생산이 활성화되는 것은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재미가 더욱더 많아지고 다양해져 간다는 것이기에 지향해야 할 올바른 현상이나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접점은 생기지 않고 평행선만 길어진다면 그건 올바르다고 할 수 없다. 문화 콘텐츠를 제작하는 생산자들은 상업성이라는 목적을 쫓아 나아가고 이를 감상하는 소비자인 사람들은 저마다의 재미와 감성을 찾아서 나아간다. 이런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제 갈 길만 가다 보니 지금처럼 그 간격은 좁히지 못하고 계속 나아가기만 하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와 양보가 없다면 좋은 결과를 끌어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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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Adi Goldstein on Unsplash

 

 

문화와 예술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사람과 그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 사이에서 태어나는 연결고리다. 서로 자기가 원하는 쪽으로만 끌고 가려고 하면 연결은 못하고 얼마 못 가 끊어지고 만다. 나의 시선에서 지금의 상황은 서로 자기 쪽으로 끌어오기 바빠 보인다. 정반대로 가고 있다. 예술가들은 감상하는 사람들이 어떤 것을 원하는지 고민하면서 그 속에 자신의 세계를 담아내고자 노력하고 사람들은 그들의 작품에 어떤 세계가 담겨 있는지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태도를 지니며 학교를 비롯한 교육기관은 그러한 것을 어떻게 하면 보다 잘 이해 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것이 우리가 나아갈 올바른 방향이다.


못 해도 대기화면이 인기 순위 부동의 1위라는 말은 안 나와야 한다.

 

 



[김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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