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세상을 바꾼 반대자, 그를 추모하며 -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RBG [사람]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RBG
글 입력 2020.09.24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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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법학자인 러니드 핸드 판사는 우리 헌법의 토대인 자유정신이야말로 성별을 떠나 모든 국민이 가장 최우선에 둬야 할 가치라고 말했습니다. 공동체의 소수 의견이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다수 의견과 마찬가지로 존중받아야 한다고요. 저는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끝까지 사법부에 헌신하겠습니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가 별세했다. 그의 말대로, 그는 자유정신을 내세우며 끝까지 사법부에 헌신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 그럼에도 그의 부고 소식이 유독 참담하게 느껴지는 건, 루스 긴즈버그가 영원히 살 것 같다는 근거 없는 기대감을 은근슬쩍 품었기 때문이다. 절대 쓰러지지 않을 것 같은 사람.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일어나는 사람. 나에게 루스 긴즈버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루스 긴즈버그는 미국의 대법관이었고, 나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지만 그의 삶과 언어는 나에게 하나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나침반이었다. 루스 긴즈버그를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단단해졌다. 존재만으로 든든한 사람이었다.

 

한 사람의 일생을 온전하게 이해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지만, 최소한으로나마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를 알아가고 또 기억하기 위해 그에 대한 몇 가지 텍스트들을 소개하려 한다.

 

 

 

세상을 바꾼 변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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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On the Basis of Sex)>은 루스 긴즈버그의 첫 발걸음을 조명한다. 영화의 첫 장면, 무채색의 양복을 입은 남자들 사이에 원피스 정장을 입은 한 여성의 얼굴이 보인다. 여성의 하버드 로스쿨 입학이 허용된 지 6년째인 1956년, 500명의 입학생 중 여자는 9명이었고 그중 한 명이 루스였다.

 

하버드 로스쿨 학장은 만찬 자리에서 여학생 9명에게 ‘남자에게 돌아갈 자리를 차지한 이유’를 묻는다. 또한 루스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화장실도, 도서관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없었다. 교수의 질문에 답변할 기회조차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만연했던, 성차별이 합법이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여성을 위축시키는 환경에서도 루스는 언제나 뛰어난 역량을 발휘한다.

 

이후, 남편과 함께 뉴욕으로 간 루스는 컬럼비아 로스쿨로 편입해 공동 수석 졸업한다. 그러나 뉴욕의 어느 법률 사무소에서도 유대인, 여성, 어머니인 그를 받아주지 않는다. 지원하는 로펌마다 불합격된 뒤, 연구원으로 활동하다가 1963년에 럿거스대 로스쿨의 교수로 부임한다. 1972년에는 컬럼비아대 최초 여성 종신교수가 된다. 그 사이 미국시민자유연맹(ACLU)과 협력해 여성 인권 사업을 추진해나가며 수많은 젠더 차별 사건을 재판에 부친다.

 

영화에서 중심이 되는 사건은 1972년 '모리츠 대 국세청장(Moritz v. Commissioner of Revenue)'이다. 노모를 돌보는 독신 남성 찰스 모리츠는 세금 공제를 받기를 원했다. 그러나 피부양자가 있는 기혼남 혹은 여성이 아닌 독신 남성은 세금 공제를 받을 수 없었다. 루스는 해당 사건이 미국 법에 내재된 성차별을 무너뜨릴 수 있는 기회임을 직감하고, 남편과 함께 모리츠의 공동 변호를 맡게 된다.

 

모두가 이길 수 없다고, 재판에서 질 거라고 말했지만 루스는 딸, 남편, 그리고 주변인들에게 힘 입어 연방항소법원으로 간다. 당시 미국의 조세법 214조는 가족의 보육자 자격을 여성으로 지정함으로써 남성 가족 보육자를 차별하는 동시에 보육을 여성의 몫으로 규정한다는 점에서 성차별적이다. 루스는 이에 대해, 조세법 214조의 목적은 여성 보호나 남성 차별이 아니라 보육자의 사회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법을 수정하기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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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에서 '헌법적 명분'을 따지며 '여성'이란 단어는 미합중국 헌법에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고 말하는 판사에게, 루스는 이렇게 답한다. "'자유'란 단어도 마찬가지입니다. 판사님." 결국 항소법원은 조세법원의 판결을 파기하고 모리츠의 보육자 공제 자격을 인정하게 된다. '모리츠 대 국세청장(Moritz v. Commissioner of Revenue)' 재판과 루스가 변론 취지서를 작성한 '리드 대 리드(Reed v. Reed)' 재판은 성별에 의한 차별이 위헌임을 최초로 공표한 재판이 됐다.

 

루스 긴즈버그는 한 평생 차별에 반대하며 수많은 싸움을 치렀지만,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은 그의 첫 신호탄을 주목한다. 루스가 말한 것처럼, 일반적으로 사회의 진정한 변화와 지속적인 변화는 단계를 거친다. 단번에 성공하는 건 없다. 그리고 그 변화는 누군가의 실천으로 시작된다.

 

여성들은 한 세기 넘게 같은 논쟁에서 져왔다. 영화에서 딸 제인은 루스에게 (<앵무새 죽이기>의 애티커스 핀치의 말을 빌려) "엄마가 시작하기 100년 전에 졌다고 이기려는 시도조차 안 할 필요는 없다"라고 말한다. 여성이 자신의 명의로 신용카드를 만들 수 없었고, 여성 경관은 뉴욕에서 순찰을 할 수 없었으며, 여성이 군용 수송기에 타는 것이 불법이었던 시대였다. 지금 뒤돌아보면 말이 안 되는 것들 투성이지만, 그때는 그게 당연했다. 불평등하고 차별적인 선례가 또 다른 선례들을 만들어내고, 그로 인해 불평등과 차별이 계속되었던 시대. 성별에 근거한 차별법이 178개 조항이나 되었던 시절 말이다.

 

루스 긴즈버그는 당연함에 지지 않는다. 차별과 불평등이 당연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루스의 첫걸음은 앞으로 자신의 일생을 '차별과의 싸움'에 바치겠다는 선언이었고, 이는 변화의 출발점이었다. 그 어떤 일이든 간에, 변화의 시작이 가장 어렵다. 견고하게 자리 잡은 과거의 유산에 대항하고 균열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루스 긴즈버그는 법정에서 그 작업을 시작한다. 그리고 말한다. “이 나라를 바꿔달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건 법정의 허락 없이도 이미 시작됐으니까요." 당시의 미국은 인권운동 등 전반적인 사회운동이 활발히 일어난 때다. 사람들의 의식은 변화하기 시작했고, 루스는 그 '권리'를 지키기 위해 법정에 섰다. '법정은 그날그날의 날씨에 영향을 받기보다 그 시대의 기후에 발맞춰야'하기 때문이다.

 

 

 

나는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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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1980년 컬럼비아 특별재판구 연방항소법원 판사로 임명되었으며, 1993년 클린턴 대통령의 지명으로 연방대법원 대법관에 임명된다. 미국 역사상 두 번째 여성 대법관이다. 긴즈버그는 죽기 직전까지 대법관 자리를 지키며 계속해서 사회에 진보적인 목소리를 냈다.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이 루스 긴즈버그의 출발점을 보여준다면, 다큐멘터리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 나는 반대한다(RBG)>는 그가 만들어낸 역사의 궤적과 그 파급력을 포착한다.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는 80대의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를 ‘노터리어스 RBG’(래퍼 Notorious BIG의 이름을 패러디한 명칭)라 부르며 찬양의 물결을 만들어낸다. 이른바 ‘RBG 현상’이다.


그는 반대파들로부터 ‘마녀’, ‘악랄한 운동가’, '괴물', '헌법 전통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명명백백한 대법원의 수치’로 불린 것과는 정반대의 학창 시절을 보냈다. 어려서부터 차분한 사색가의 기질을 보였던 루스는 어머니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코넬대학교에 입학한다. 대학에서 인생의 반려자 마티 긴즈버그를 만나고, 반공주의에 휩싸인 사회 속에서 옳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법조인을 꿈꾸게 된다.


앞서 언급했듯, 1950년대에 하버드 로스쿨에 입학하고 컬럼비아대 로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한 후에도 루스는 만연한 차별을 당한다. 이후 그는 평생을 차별과 맞선다. "루스 긴즈버그는 어떻게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나?"라는 질문에는, 그의 일생으로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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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루스가 처음으로 대법원에 변론한 성차별 사건인 프론티에로 대 리처드슨(Frontiero v. Richardson) 사건은 기혼 남성 공군에게는 지급된 주택 수당을 받지 못한 기혼 여성 공군 소위 샤론 프론티에로의 소송이었다. 긴즈버그는 이에 대해 피부양자 혜택과 관련된 군대의 법령이 부당하게 임금노동자로서의 여성을 차별함을 주장하고, 프론티에로는 승소한다.


1975년, 와인버거 대 와이젠펠드(Weinberger v. Wiesenfeld) 사건에서 스티븐 와인젠펠드는 아내가 출산 과정에서 사망하자 아들을 부양하기 위해 사회보장 혜택을 받으려고 한다. 그러나 홀어머니가 아니라 홀아버지라는 이유로 혜택을 받지 못한다. 긴즈버그는 젠더 차별이 남녀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해당 사건을 대법원에 제소하고 성공적으로 이끈다. 대법원은 사회보장법에 내재된 젠더 차별이 사망한 아내, 생존한 남편, 아기 모두를 차별한다고 판결 내린다.


1996년, 연방정부 대 버지니아(United States v. Virginia) 사건은 한 여학생이 버지니아군사대학교가 남성 생도들만 뽑는 건 위법이라며 소송을 제기하며 시작됐다. 버지니아군사대학은 개교 이래 150년간 남자 생도들만 받았다. 해당 사건에서 “여성의 뜻과 성취와 참여는 제한될 수 없고, 여성도 능력에 근거해 사회에 기여할 것이다”라고 밝힌 긴즈버그의 판결문은 여성들이 버지니아군사대학교에 지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2007년, 레드베터 대 굿이어(Ledbetter v. Goodyear Tire & Rubber Co.) 사건에서 릴리 레드베터는 비슷한 지위의 남성 동료들보다 임금을 적게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굿이어 타이어사의 고용주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 대법원의 다수 의견은 릴리 레드베터가 너무 늦게 소송을 냈다며, 그의 임금 보상 요구를 기각한다. 루스 긴즈버그는 반대 의견을 통해 릴리 레드베터가 소송을 제기할 만큼 임금 차별을 일찍 알 수도 없었을 것이고, 불평등한 임금 지불에 대해 좀 더 일찍 알았더라도 고용주는 분명 레드베터에게 남성 동료보다 임금을 덜 받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으리라 주장한다. 그의 반대 의견서가 나온 이후, 미의회는 릴리레드베터 공정임금법을 통과시킨다.


2013년, 셀비카운티 대 홀더(Shelby County v. Holder) 사건에서는 대법원이 참정권 차별을 감시하던 투표권법의 핵심 조항을 더 이상 인종차별적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폐지한다. 루스 긴즈버그는 이에 대한 반대 의견서에서 선거권법의 일부 조항을 폐기할 권한은 법원이 아니라 의회에 있으며, 투표 과정의 인종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밝혔다. 또한 "오늘 판결은 폭풍이 몰아치는데도 우리는 젖지 않을 것이라고 우산을 내던진 꼴이다”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는데, 이는 SNS를 중심으로 젊은 세대에게 크게 주목 받았다.


2014년, 버웰 대 하비 로비(Burwell v. Hobby Lobby Stores, Inc.) 사건에서 대법원은 신실한 신앙으로 뭉친 소유집중회사(기업의 주식이 특정 집단이나 개인에게 집중되어 있는 회사)는 의료보험에 피임 비용을 포함시키지 않아도 된다고 결정한다. 긴즈버그는 이에 대한 반대 의견서에서 “여성의 동등한 참여를 경제적, 사회적으로 독려하기 위해 보장해야 할 것은 출산에 관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다”라고 말하며, 회사 주인의 신실한 믿음은 직원의 생식권에 영향을 끼쳐서도, 부담적정보험법(ACA)에 반해서도 안 된다고 명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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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루스 긴즈버그는 2015년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법화, 2016년 낙태 시술을 제한하는 텍사스주의 법안 폐지 판결에도 함께했다. 루스 긴즈버그의 행보 하나하나가 인권과 평등을 위한 헌신 그 자체였다. 루스 긴즈버그는 보수적인 대법원 지형 속에서 끊임없이 반대표를 던졌고, 이에 대해 "만장일치 의견의 가치를 인정하지만, 중요한 문제가 위태로운 때에는 계속해서 반대 의견을 낼 것이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입장을 고수해나갔다.


그는 자신이 제시한 반대 의견 대부분이 언젠가는 법이 되리라 믿었다. 나 또한 믿는다.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후세를 위해 반대 의견서를 쓴다고 밝혔던 루스 긴즈버그에게 젊은 세대가 열광하는 건 무리가 아니다. 그가 시대의 아이콘인 것이 전혀 놀랍지 않다. 바다 건너편에 사는 나조차도 루스 긴즈버그를 보면 가슴이 벅차오르니 말이다.

 

 

 

긴즈버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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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길을 갈 때 발자국을 남겨라. 나를 위해 길을 닦은 사람들이 있었듯이 내 뒤를 따라온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 후세의 건강과 안녕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사회가 나아갈 수 있도록 자신에게 주어진 몫을 다하라." - 2002년 5월 26일, 브라운대학교 졸업식 연설
 


만약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을 보고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에게 일말의 관심이 생겼다면, 꼭 다큐멘터리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 나는 반대한다>를 보길 바란다. 그리고 다큐멘터리를 보고 그의 가치에 동의한다면, <긴즈버그의 말>이라는 책을 살펴봤으면 좋겠다. 책에 담긴 긴즈버그의 말은 그가 걸어온 궤적은 물론 평생에 걸쳐 대변해온 태도와 가치를 뚜렷이 보여준다.


<긴즈버그의 말>은 긴즈버그 대법관의 법정 의견서, 언론매체, 강연, 포럼 등에서 했던 말과 연보 및 주요 사건을 자세히 담고 있다. 불꽃같은 용기가 필요할 때, 단단한 마음이 필요할 때, 내가 세상에서 찾고 있는 가치가 무언지 헷갈릴 때마다 찾아보면 힘이 될 언어들이 빼곡히 녹아있다.

 

당연함에 의문을 제기하고, 반대하고, 소수 의견을 냈던 루스 긴즈버그의 행보는 미국 현대사에 크고 꾸준한 발자취를 남기며 오늘날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선택의 폭이 넓어진 시대 말이다. 물론, 지금이 이상적인 시대는 아니다. 여전히 차별과 불평등은 곳곳에서 자행된다.

 

중요한 건 우리가 불평등에서 평등으로 나아가는 궤적 위에 서 있으며, 선택권이 넓어지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은 당연한 것들이 아니었다. 지금의 어떤 것들도, 아마 시간이 지나면 빛바랜 가치가 되어있을 거다. 변화란 그런 거다. 초역사적 진실로 여겨져 왔던 것들을 깨부수는 작업.

 

루스 긴즈버그는 법정 안 밖에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냈고, 긴 여정 속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싸웠다. 이제 그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루스 긴즈버그가 남긴 유산은 여전히 여기저기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우리가 기억하고, 이어나가야 할 가치다. 그의 정신은 많은 사람들 안에서 더 밝고 환하게 타오르고 있다. 우리가 평등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나아가는 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우리 안에서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이다. 부디 그러길, 간절히 바란다.

 

RIP RB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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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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