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성장통을 담은 노트 [사람]

나는 나를 위해, 나를 보고 힘냈으면 좋겠을 당신을 위해, 이 글을 쓴다.
글 입력 2020.09.18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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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동생인 N과 잠시 거리를 두기로 했다.

 

요새 지친다고 해서, 조금 더 자신을 돌아봐줄 시간이 필요해서, 그래서 N과 잠시 거리를 두게 되었다. 행복을 찾고 싶다고 말하는 N을 나는 잡을 수 없었다. 옆에 사람이 있으면 그들에게만 집중되기 때문에 스스로를 돌봐줄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모습이 단호해서.

 

그래서 옆에 있는 사람을 하나씩 떠나보내는 N에게 과연 나는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생각하다가, 내가 겪은 일들을 묶어 한 권의 책으로 선물 보내고 싶어졌다. 그때를 지나면서 내가 겪은 이야기, 내가 깨달은 것들, 돌이켜봤을 때 다른 의미를 찾아 새로 바뀌게 된 생각들. 그것들을 담기 위해 나는 지금까지 끄적이던 글들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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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13년도, 그러니까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부터 시작됐다. 처음 써져있는 글을 보자마자 나는 대놓고 미간을 찌푸렸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 그건 정말 마음에 없는 소리일까? 그렇게 생각은 했는데, 밖으로 내뱉지 않고 꾹꾹 참아 잊어버린 후에, 어느 날 무심코 내뱉게 된 진심이 아닐까.


13.10.03

 

 

내가 이런 글을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곧 그 생각은 내가 이렇게나 아팠구나, 하는 생각으로 변화되었고 그 순간 덜컥 겁이 났다. N을 위해 내가 겪은 성장통을 써서 주자고 했던 결심은 또 다른 말로 하자면 '나'를 돌이켜 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와 마주하는 건 무섭다. 흔히 자아성찰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것은 나의 추악한 면까지 들여다봐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 글을 읽자마자 고민했다. 나는 '나'를 마주할 자신이 되었는가? 그러나 답을 내리지 못하고서 나는 두 번째 글을 읽었다.

 

스스로를 마주할 자신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N을 위하고 싶다는 건 확신이고 결심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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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익어가는 과정은 아름답다. 그것은 나무 한 그루만 봐도 알 수 있다. 분홍색의 꽃잎만 담아내던 나무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어느새 점점 푸른 잎 또한 담아가고 있는 것. 그것은 봄이 깊숙이 다가왔다는 얘기였고, 봄 또한 우리와 같이 익어간다는 소리였다. 같이 익어가자. 지금보다 더 익어서 열정 가득한 여름이 되자. 모든 것을 열정의 강렬함으로 덮어낼 수 있는, 그런 여름이 되자. 너는 익어서 여름으로, 나는 익어서 더 나다운 나로. 우리 그렇게 익어가자.

 

 

13년도부터 20년도까지 짤막하게 쓰여있는 글들을 읽어보니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한 해가 갈수록 변해가는 생각들이 날것 그대로 적혀있어서, 내가 쓴 것임에도 읽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계속 읽어갈 수 있던 건 지금의 나를 믿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13년도 때처럼 남을 적대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15, 16년도 때처럼 미치도록 누군가를 그리워해 아프지 않으며, 쉽게 사랑을 운운하지 않는다는 걸 믿기 때문이다.

 

아무리 내가 남을 적대했고, 울지도 못할 만큼 누군가가 그리워 힘들어했고, 그 때문에 쉽게 사랑을 말하는 사람이었더라도 지금의 나는 그러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남을 더 포용할 줄 알고, 그리움을 간직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갈 줄 알며, 사랑이라는 말을 내뱉는 것조차 신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성장했다. 그걸 알기에 통증 가득한 글을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N을 위해 시작한 일이 결국 나를 위하게 된 일이 된 것 같아 참 아이러니하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는 건 알지만, 우연히라도 이런 시간을 만들어준 N에게 고맙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니 이 고마운 마음까지도 담아 N에게 나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다. 내 이야기를 보고, 지금의 나를 보며 N 또한 변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성장하고 싶다고 말하는 N에게,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확신에 찬 어조로 대답해 주고 싶다.

 

당신도 마찬가지이다. 당신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영원할 줄만 알았던 그리움에서 빠져나올 수 있으며, 절대 친해지지 않을 거 같은 사람을 포용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코로나로 집에만 있어야 하는 시간이 늘게 된 지금, 당신도 한 번 나처럼 예전에 끄적인 일기를 끌어모아 스스로를 마주 보는 시간을 가져봤으면 좋겠다.

 

일기를 써놓은 게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그날 느낀 생각을 짤막하게 써봤으면 좋겠다. 왜냐면 후에 남겨진 것을 읽을 때 거침없이 쓴 글에 가슴이 미어질 수도 있지만, 끝내 성장한 모습을 마주할 때면 뿌듯해지기도 반성하는 시간이 되기도 하니까.

 

그러니 당신도, 당신을 위해, 당신을 보고 힘냈으면 좋겠을 누군가를 위해, 한 번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김승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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