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채로운 회색빛] 시선 끝에 있는 바다

3일간의 강릉바다
글 입력 2020.09.15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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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이유 없이 좋아하는 것이 하나쯤은 있길 마련인데, 나로서는 바다가 그러하다.

 

본인이 지각하지 못했을 뿐 어렸을 적 꽤 오래 수영을 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가족들과 계곡과 바다를 쏘다녔던 추억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재미 삼아 본 사주에서 내게 ‘물이 넘치는 사주’라고 말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유야 확실치 않아도 그냥 바다가 좋았다.


나이가 들며 바다를 좋아하는 행태는 달라졌다. 뜨거운 태양 아래 차가운 바닷속으로 성큼 들어가 몸이 잠겨가는 느낌을 좋아했었다. 급변하는 체온에 반사적으로 웃음은 튀어나오고 잠수를 할 때면 소란했던 주변이 절로 음소거 되는 게 신기했다.


튜브 안에 몸을 맡기고 둥둥 떠다니며 태양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약간의 잡생각은 곧바로 몸의 균형을 잃게 하니 생각은 쓸모없는 짐 덩어리였다. 아무래도 힘들 때마다 바다를 찾게 된 것은 이때 학습된 무의식인 것 같다. 뇌를 비워낼 수 있던 가장 강렬한 경험이었기에, ‘바다=무념무상’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어른이 된 어느 시점부터 공식은 성립되지 않았다. 여전히 지칠 때마다 바다를 보고 싶다는 충동은 들지만, 그렇게 찾은 바다는 오히려 내게 더 많은 상념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번에는 뒤틀려버린 공식을 꼭 바로잡아보겠다는 다짐으로 참 오랜만에 만나봤다. 한여름의 강릉 바다를.

 

 

1여름바다.jpg

 

 

지금까지도 생생한 감각을 되살려보면, 수채화 같은 구름과 함께 있는 대낮의 바다는 무척이나 예뻤다. 볕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모래알과 바다는 가만히 바라볼 수도 없는 표정을 만들어낸다.

 

분명 기분은 너무 좋은데 표정은 자꾸 찌푸려진다. 황홀히 바다를 감상하고 있으면 몇십 분이 채 안 돼 몸은 익어가고 바닷물로 더욱 습해진 공기에 절로 땀은 흘러내린다. 더는 그 땡볕 아래서 버틸 수가 없었다!


여행의 단 한 가지 목표였던 ‘바다 보기’의 포부는 이리도 쉽게 접어졌다. 몇 시간 동안 바다 앞에 앉아서 바라보고, 얘기하며 함께 하고 싶었는데 요동치는 멀미와 함께 금세 숙소로 들어오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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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광경으로 펼쳐진 숙소는 고요했다.

 

직전까지 내 귀를 따갑게 했던 파도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것 같고 여전히 파도가 일렁이는 게 눈에 보이는데… 들리는 건 에어컨 가동 소리뿐이다. 그리고 이제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무념무상을 실천하기 위해 왔는데, 파도가 거세게 치는 바다는 나를 전혀 도와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뭔 청개구리 같은 심보인가 싶지만 실내로 들어와 마주한 정적의 바다는 또 미웠다. 조용해진 바다는 내 안의 불안감을 끄집어냈고 청량한 바다는 지금의 내 처지와 비교됐다.

 

잠시라도 현실과 동떨어지고 싶어했던 노력은 이제 소용없나 싶어 울적한 기운만 남겼다.

 

 

3밤바다.jpg

 

 

그렇게 밤은 왔고 다시 바다를 찾아가 봤다. 낭만이 가득할 줄 알았던 밤바다는 생각보다 무서웠다. 까만 하늘과 바다의 경계는 무색했고 나도 모르게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이토록 어두웠던 밤바다를 본 적이 없어 그냥 모래 위에 털썩 앉아버렸다. 무얼 본다고 하기보단 시선을 그저 앞으로 내놓았다.


1년 만에 찾은 바다는 너무나 달랐다. 과거 바다와 얽힌 추억은 모두 거짓인 것처럼 죄다 예상과는 맞지 않았다. 오기만 하면 다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힘들다’의 대체어였던 ‘바다 보러 가자’는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 걸까.

 

모든 기대를 내려놓고 새롭게 바다를 느껴보려고 했다. 잔잔하지만 힘찬 파도는 적당한 소음을 선사했고 적당히 진지한 분위기를 제공했다. 그리고 평소와 별다를 것 없지만 조금은 특별한 이야기도 시작할 수 있었다.


무념(無念)이라는 것은 생각을 피하는 게 아니라 털고 비워내야 하는 것이었다. 공식이 맞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었다. 회피할 수 있는 어린 시절은 지나갔다. 당장 해결되는 게 없다 해도 어떻게든 내 안에서 무게를 덜고 정리해야 했다. 밤바다는 내게 그럴 수 있는 환경을 건네줬다. 울어도 괜찮았고, 헛소리를 해도 괜찮았다.

 

추한 흔적은 파도와 함께 금방 쓸려 내려가니 그때만큼은 모두 다 괜찮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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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의 바다는 흐릿했다. 부정적인 기운을 너무 많이 전가해버린 탓인가 싶었지만, 떠나려는 나를 더 붙잡지 않게 해주었던 나름의 작별인사라고 제멋대로 해석했다.


3일간의 시선 끝을 모두 강릉 바다로 마무리하고 온 지금 여전히 바다는 무념무상이라는 공식은 존재한다. 내게 와닿는 의미는 분명 달라졌지만, 누군가에게 바다를 보러 가자는 권유는 이제 단순한 힐링보다 네게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다는 고백을 내포한다. 올해가 가기 전에 한 번 더 바다를 보고 싶다.


 

* 삽입된 사진은 모두 직접 촬영하였습니다.

 

 

 

전문필진 박수정 tag.jpeg

 

 



[박수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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