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의 선율은 무엇인가요? [도서]

사랑을 기침처럼 참아가는 사람들의 멜로디, <사랑하지 못하는 자들의 사랑>
글 입력 2020.09.15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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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과 자기혐오에 관한 선율


 

이야기는 스물 무렵의 '희'가 6살 여름날의 자신을 회상하며 시작된다. 그녀는 엄마와 난생처음 쇼팽의 음악을 들으러 함께 피아노 연주회에 간다. 어린 희는 엄마에게로부터 몇 번이고 기침을 참을 것을 당부받는다. 다른 이들의 감상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기침을 참지 못한 것은 희가 아니라 희 앞에 앉은 거대한 남자였다. 끊임없는 기침소리에 객석에 앉은 모든 이들은 잔인하도록 따가운 시선을 한꺼번에 그 남자에게 보냈고 남자는 연주회장을 박차고 나간다. 순수한 희의 눈에는 그토록 많은 미움을 한꺼번에 받은 남자가 살아남는다는 것은 불가능하게 보였다. 그날 연주회장에 울려 퍼진 쇼팽의 다단조 녹턴은 그 남자의 죽음을 장식하는 레퀴엠(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미사음악)으로 기억된다.

 

작품에선 매일 방에 틀어박혀 글에만 몰두하는 예민한 작가인 엄마 현정민에게 사랑받고 싶어 했으나 그러지 못했던 어린 희의 감정이 아주 세밀하게 묘사된다. 희의 시선과 심연은 너무도 순수해서 세상의 모든 자극들은 희에게 너무나 크고 아프게 다가온다.

 

커가며 마주하는 관계와 소통, 그 사이의 오해들은 독자들이 보기엔 작고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만 여리고 순수한 희의 마음엔 지독한 외로움과 자책, 자기혐오를 남긴다. 그러나 자기혐오로 범벅된 외로운 희의 모든 순간들에도 늘 함께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쇼팽의 선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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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웃집에 신이 산다>에서는 신의 딸 ‘에아’가 각 사람들의 테마가 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설정이 나온다. 만약 영화 속 ‘에아’가 희의 마음에 귀를 대고 그녀의 음악을 말할 수 있다면 틀림없이 쇼팽의 음악이라고 말할 것이다. 희의 삶의 주제곡은 그녀가 6살 무렵에 들었던 남자의 추도곡, 쇼팽의 다단조 녹턴이었다. 쇼팽의 음악들은 희가 한 해 한 해 성장해갈 때에도 항상 그녀를 맴돈다.

 

 

 

언어로 그린 쇼팽



쇼팽의 음악을 듣고 희고 검은 문으로 이루어진 미지의 피아노 세계에 입문한 희는 음악의 길을 꿈꾼다. 그러나 희는 생각보다 자신이 음악을 자유자재로 표현하진 못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대신 희는 선율을 언어로 잡아두는 데 엄청난 재능을 보인다.


  
루빈스타인이 누군가 긴박해 하면서도 몸의 균형을 유지한 채 계단을 내려오는 듯한 순간을 그렸다면, 앙제러는 서서히 육체가 파괴되다 끝내 고꾸라지는 경험을 묘사한 것 같았다. (207쪽)
 

 

책을 읽으며 ‘와, 이거 완전 '클래식 입문자들을 위한 필독서잖아!’라고 생각했음을 고백한다. 클래식 음악 들으면 대체 뭐가 떠오르지? 같은 질문에 대한 모범 답안 같았다. 분명 글을 읽고 있는데 선율이 들리는 기분이었다.


 

나는 음악에 완전히 빠져들지는 못하고 대신 이 녹턴에 제목을 붙이고픈 충동을 느꼈다. 쇼팽은 제목을 짓지 않았으니까, 우리에게는 Op. 48 No.2 라는 공허한 숫자만이 남아있으므로……. (92쪽)

나는 음악의 의미를 말속에 가두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과, 그래도 내게 선율을 내 멋대로 붙잡아둘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동시에 또는 번갈아가며 품고 있었다. (204쪽)

 

 

마치 언어와 음악의 대결을 보는 것 같았다. 제목을 붙이지 않는 쇼팽의 곡들에 희가 자신만의 제목을 붙이는 대담함이 마치 음악에 대한 도전 같아 보였다. 물론 희는 책의 앞부분에서 ‘언어에서와 달리 악기를 연주할 때는 어떤 음에도 정해진 의미의 영역이 대응되지 않는다(36쪽)’는 이유로 언어보다 음악을 더 매력적으로 생각했지만 내가 보기엔 물처럼 자유로운 음악을 정교한 병(언어)에 담아놓는 그녀의 재능은 가히 음악의 매력과 견줄만한 것이었다.

 

 

 

순수하다는 이유로 더 큰 아픔


 

외로운 희는 성(姓)마저 외로웠다. 독고희. 그러나 그에게 그렇게 고독한 성씨를 안겨준 아버지에 대해서 희는 아는 것이 하나 없다. 작품의 큰 틀은 성만 물려준 채 얼굴도 비치지 않은 아버지와 차가운 어머니(현정민)에 대해 희가 오해하고 이해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학창 시절에는, 부모님의 존재에서 벗어나 '주호'와 '소연'이라는 또 다른 큰 존재들을 마주한다. 처음 마주한 따뜻한 관계 속에서 희는 그만 서투른 실수들로 그들을 떠나보낸다.


  
아이의 의식은 어른의 의식보다 더 적은 수의 기억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그 하나하나의 힘은 상상 이상으로 거대하다. (48쪽)
 

 

사실 책 속 문장처럼 희와 주호와 소연이의 관계가 너무도 순백이었기에, 어른들의 시선으로는 별거 아닐 수 있는 그 작은 갈등들이 더욱 시커멓고 아프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죄라는 것은 과거, 즉 더 이상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시간에 속한다. (중략)’ 쓸데없이 조숙했던 나를 짓누른 것은 다시 말해 영원의 무게였다. (126쪽)

 

 

주호와 소연이에게 저지른 실수로 영원한 죄의식에 갇혀버린 희는 자기혐오를 넘어 자기파괴의 수단으로 ‘영도’와 관계를 맺는다. 영도는 매우 자유로운 연애관의 소유자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당당하게 여러 여자들과 사랑을 하는 동시에 희와도 연애를 하는 것이다. 희는 자신과 영도를 벌주기 위해 영도를 향한 사랑을 마치 기침처럼 참지만, 결국은 참지 못하게 되고 결국 소설 초반의 남자처럼 죽음 같은 이별을 한다.

 

 

 

기침을 하자, 젊은이여 사랑의 기침을 하자.


 

작품에서는 ‘기침’이 자주 등장한다. 어린 희가 갔던 음악회에서도 기침은 한 남자를 죽음으로 이르게 하기까지 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희와 영도가 나누는 대화에서도 기침의 비유가 드러난다.


 

“감정을 어떻게 통제해요? 기침 같은 거예요 그건.”
“음악을 위해 기침을 통제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결국엔 터져 나오지 않던가요?”

 

잔잔한 구간 한복판에서,라고 영도가 중얼거렸다. (194쪽)

 

 

희는 6살 여름날에서부터 끊임없이 엄마에게서 사랑을 찾으려 하나, 늘 실패했다. 그런 이유로 희는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다. 아니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표현에 따르면 희와 엄마는 사랑이 아니라 '사랑보다 강한 죄의식'으로 묶여있는 듯했다. 그러나 소설의 말미에 이르러 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누구를 사랑했든 간에 나는 내가 모르는 사이, 정신의 배경에서는 늘 현정민을 의식하고 또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274쪽)

 

 

그리고 희는 마침내 현정민 역시 희를 사랑하려 아주 많이 노력했음을 알게 된다. 사랑하려는 ‘노력’도 사랑의 일부라고 생각한다면, 희도, 엄마 현정민도, 터져 나오려는 기침 같은 사랑을 내내 억누르고 참고 있었던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김수영 시인의 시 <눈>의 일부가 떠올랐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詩人)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


김수영 <눈> 일부

 

 

물론 김수영의 시 속 기침이 상징하는 것은 따로 있겠지만 희와 현정민에게 기침은 사랑이었다. 작품 앞부분의 쇼팽의 곡에서 기침은 죽음으로 향하는 행위를 상징하지만 작품 마지막 챕터에서의 녹턴에서 희는 현정민에 대한 사랑을 깨닫는다. 사랑하지 못하도록 태어난 것 같은 존재였던 엄마를 사랑하기로 선택하면서 희는 마침내 김수영 시인의 시에서처럼 ‘마음 놓고’ 기침을, 사랑을 한다.

 

 

 

화해와 화해와 화해에 대한…


 

마침내 기침을 한 희는 소연에게 화해의 시도를 하며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이야기는 끝이 났지만 희는 아마 소연이를 시작으로 주호, 영도, 현정민 나아가 그토록 혐오하던 자기자신과도 화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낙관적인 추측을 해본다. 그러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모르지만 그간 참고 있던 기침을 직면했다는 것만으로도 화해에 화해에 화해를 거듭할 수 있는 힘이 희에게 생겼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선율은 무엇인가요?


 

 

희의 이야기는 제가 살면서 가장 많은 노력과 애정을 기울인 글입니다.

 

- 작가의 말 中

 

 
주인공 ‘희’를 따라 완주한 이야기의 다음 장에서 마주한 ‘작가의 말’의 첫 시작이다. ‘작가의 말’ 전문에는 작가가 얼마나 이 이야기를 아끼는지, 또 이 이야기에 도움을 준 사람들이 얼마나 이 이야기를 아끼는지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말들이 적혀 있었다. 아낄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나 역시 ‘희’를 따라 함께 전율하고 수줍어하고 외로워하며 걷는 단 몇 시간 만에, 희의 이야기에, 선율처럼 들리는 문장에 완전히 매료되어 이 책을 무척 아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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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쏟아지는 희의 슬픔과 기쁨, 아픔에 몇 번이고 소름이 돋았다. 쇼팽의 녹턴을 크게 들으며 희의 삶을 읽는 순간 동안에 나는 내가 아니라 희였다. 희의 삶에서 빠져나오고 한참을 멍해져 있다가 내 삶의 음악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또 내 삶의 음악을 발견한다면 마음껏 기침을 하며 들어야지, 결심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 삶에 마주할 존재들에게 이렇게 묻고 싶어졌다.

 

 

"당신의 선율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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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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