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성숙한 아이를 보는 아버지의 심경 – 고요한 인생
나이에 맞는 성숙함은 소중하다.
글 입력 2020.09.13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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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고요한 인생>을 고른 이유는 단순했다. 첫째도 표지였고, 둘째도 표지였다. 정갈한 글씨체에 푸른 숲속을 걸어가는 빨간 원피스의 여성과 까만 고양이가 평화로워 보였다.
책을 펼치고, 단숨에 한 권을 비워내기란 쉽지 않았다. 한 번씩 글을 읽을 때 손이 아려왔다. 책 표지에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책의 내용은 잔잔하게 우울했다. 다만 중간중간 불쾌함이 밀려오는 작품도 있었다.고요한 인생
책은 총 7가지의 단편 소설로 구성되어있다. 글에서 주체로 다뤄지는 대상은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다양하다. 그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가족을 흔한 ‘화목’의 명대사로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그들은 가족에게서 버림을, 소외를, 그리고 죄책감을 느낀다. 한 집에서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부정적인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폭력적이다. 이 느낌은 두 번째 이야기인 ‘아들’을 읽으며 더 심화하였다.‘아들’은 가족에 대한 죄책감을 다룬 얘기다. 글 ‘아들’에게서의 화자는 어린 아들(이하 소년)이다. 그리고 글은 소년이 다 큰 청년으로 장성할 때까지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서술했다. 주로 소년의 죄책감에 초점을 맞추며 말이다.소년의 가족은 공중그네 묘기를 했다. 소년이 아버지의 손을 잡고, 어머니가 아버지의 발을 잡아 완성하는 식이었다. 즉, 한 과정이라도 무너지면 전체가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소년은 아버지의 손을 놓치고 말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땅으로 떨어졌고,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렇게 소년과 아버지는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한 판잣집을 구하게 되었고, 아버지는 집을 떠나고 말았다. 아코디언을 두고 말이다.
아들은 찐빵을 한 봉지 산다. 이십년 전 전해주지 못한 찐빵이 오늘은 주인의 손에 들어가면 좋겠다고 염원해 본다. (중략) 머리칼이 허연 노인이 벽에 기대어 앉아있다. 깊은 침잠의 세계에 빠져있는 눈동자는 아들을 넘어 저 먼 곳을 향해 있다. 어쩌면 곧 도래할 운명을 담담하게 기다리는 것처럼 보인다. 아들의 가슴이 쩡 소리 내며 갈라진다.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는 기쁨보다 다가올 이별의 예감에 슬픔이 앞서간다. (중략) “아직도 이걸 가지고 있었느냐? 이제 네게 아코디언 켜는 법을 가르쳐주마.”
글을 소년의 시선으로 전개되었지만, 왜인지 내 마음은 줄곧 아버지가 신경 쓰였다. 아버지는 어떤 심경이었을까. 자기 아들 손에 미끄러진 탓에 사랑하는 사람이 숨을 거두게 되었다. 어린 아들이 내내 신경 쓰이고, 애틋하겠지만, 마냥 사랑스럽진 않았을 듯하다. 그 심경을 다 헤아릴 순 없겠지만, 아들을 보면 아내가 생각나고, 그때의 사건이 계속 생각나지 않았을까.그래서인지 아버지는 판잣집에 거처를 마련해두고 그 집을 떠났다. 정확하게 말하면, 아들 곁을 떠났다. 최소한의 아버지 노릇을 한 셈이다.제삼자의 입장으로 읽었을 때는 아버지가 무책임하다는 생각과 아들이 계속 걱정되고 신경 쓰였다면 판잣집을 떠나지 말았어야 한다는 답답한 신경이 혼재되었었다.하지만, 만일 내가 아버지의 입장이었다면? 1년 365일 아내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아들과 한 공간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아들은 아버지를 볼 때마다 죄책감을 느끼는 표정을 짓고 있을 텐데, 아버지라고 그 아들을 진심으로 대할 수 있었을까? 어린아이처럼 행동하지 않고, 아버지 눈치를 살피며 행동하는 어린 아들의 행동에 마음이 미어지진 않았을까.
너를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 떠났으며, 또한 네 기다림을 종식시켜주기 위해 돌아왔다. 다 너를 위해 그랬다. 그런데 지금도 나는 몹시 겁이 난다. 알겠니?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란 걸.
아버지는 결국 돌아온 판잣집에서 숨을 거두고 만다.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소년에게 해준 것은 소년의 몸에 맞는 양복 한 벌과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법이었다. 떠난 아버지라고 자기 아들이 걱정되지 않았겠는가. 하루에도 수백 번씩 집으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과 아들의 죄책감을 끊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늘 상충하였을 것이다. 아버지는 떠난 20여 년을, 그 곱절로 보냈을 것이다.책을 덮고 생각해본다. 내가 속한 우리 가족이 정말 평범한 가족일까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어쩌면 단순히 태어날 때 운이 좋아서 만날 수 있었던 가족이 아니었을까. 만약 소년이 소위 말하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면, 그리고 그때 아버지의 손을 꼭 잡았더라면, 소년은 지금쯤 어떻게 성장했을까. 어른 같지 않은, 어린아이 같은 어린 소년을 한 번 그려본다.*고요한 인생분류
문학〉 한국소설
지은이
신중선
펴낸 곳
내일의문학
쪽수
204쪽
가격
15,000원
규격
134*200
ISBN
978-89-98204-76-1 (03810)
출간일
2020. 07. 27.
[한유빈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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