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성괴물 억압과 위반 사이, 진정한 공포의 대상은? [도서]

공포의 대상은 무엇인가
글 입력 2020.09.10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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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이연에서 2017년 나온 <<여성괴물 억압과 위반 사이>>는 페미니즘 영화 비평서로, 페미니스트 영화 이론가인 바바라 크리드가 쓴 책이다. 페미니즘에 대해 들어는 봤지만 82년생 김지영도 마음 아파 못 읽은 나였다. 이런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다른 책 때문이었다.

 

출판 키워드를 소개하는 책에서 2017년 키워드가 82년생 김지영을 앞세운 페미니즘이었고 그 키워드에서 언급된 책이 바바라 크리드의 여성괴물이었다. 한국 출판의 키워드인데 외국 저자의 책이 거론되어 흥미로웠고 그 중 영화 브루드의 비평이 주목할 만하다고 적혀있어 호기심이 동했다. 들어본적도, 읽어본적도 없는 제대로 된 영화 비평과 페미니즘의 만남이라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주목해야 할, 영화 <브루드> 비평 부분은 여성의 출산과 자궁을 다루고 있었다. 여러 공포 영화에서 자궁은 위험하고 어둡고 축축한 곳이며 그곳에서 태어나는 것은 남성/인간을 죽인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영화 브루드에서는 여성의 분노가 몸에 주렁주렁 달린 주머니들과 그 속 난쟁이들을 창조해내는데, 남성이 바라볼 때 그곳에서 태어난 것들은 여성의 분노를 표출하고자하는 욕망의 이미지가 투사된 것이었다.

 

자궁에서 태어난 아이들에 대입해보면 그들에게도 여성의 욕망의 이미지가 반영될 수 있다. 자궁과 출산이 등장하는 영화 중 에일리언을 본 적 있는데 에일리언이 왜 그렇게 출산을 하려고 하는지가 연관 있는 것 같았다. 후손을 태어나게 해서 유전물질을 후대까지 퍼뜨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출산 그 자체였다. 공포 영화에서 출산이 문제시 되는 이유는 출산은 경계가 허물어지는 지점이고 아브젝션이라는 주류가 아닌 배설물을 토해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읽고 나니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 같았다.

 

이 책에서는 외국 영화만 예를 들었지만 나는 자궁으로 흉가가 등장하는 어떤 한국 공포 영화에서 그 집에서 귀신이 들렸던 여자가 남자만을 계속 공격하는 것도 주류가 자궁이나 출산에 대한 공포를 타자화하는 형식이라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여자는 자궁인 흉가로 인해 재출산된 것이다. 이렇게 내가 직접 적용해 볼 만큼 공포 영화라는 주제가 친숙해서 크리스테바를 인용한 것이나 비체, 아브젝션 같은 어려운 부분도 쉽게 읽어내려 갈 수 있었다.

 

2부에서는 주로 프로이트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그 중 영화 <사이코>를 비평한 글에 가장 공감할 수 있었다. 다른 글에서는 그 글에서 언급한 영화를 보지 않았거나 프로이트에 친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이코는 책으로 읽은 적이 있어 나름의 시각을 갖고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에서는 사이코에 이빨 달린 질의 이론을 적용하지는 않았다. 나는 사이코를 그 이전의 글인 이빨 달린 질, 바기나 덴타타를 서술한 글과 관련지어 분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바기나 덴타타는 거세하는 여성을 뜻하는 말인데, 여성 성기가 입과 같이 생기고 정기적으로 출혈하기 때문에 남성을 거세하는 것처럼 보인다. 프로이트는 여성이 거세되었다고 했지만 거세하는 쪽이 여성이라는 페미니즘적인 바바라의 이론을 따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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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에서는 어머니의 환상이 노만 베이츠를 지배하는데, 그는 어머니/여성의 모습을 한 채로, 목욕하며 쾌락을 느끼고 있는 다른 여성을 살해한다. 어머니는 생전에 자신이 다른 남자와 사귀는 것은 묵인하면서 아들인 노만에게는 남자의 성욕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며 그를 닦달한다.

 

어머니가 남자의 성욕을 통제하려 들기 때문에 이빨 달린 질 이론에서처럼 노만은 그녀가 자신을 거세하려고 한다고 생각한다. 어머니의 모습을 한 채로 성욕을 느낄 수 있는 존재인 샤워 중인 여성을 죽이는 것은 자신이 어머니가 되어 자신을 거세하는 일종의 거세로 보인다. 그래서 그는 여성을 죽이기 전에는 거세되기 전이므로 성욕을 관음증의 행태로 배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장면에서 여성 관객들은 억압된다고 바바라는 말한다. 이빨 달린 질 즉 여성을 응징하기 위해 노만을 이성애자, 주류로 설정한 것은 아닐까? 공포 영화에서 본질적으로 자궁, 출산, 이빨 달린 질에 대한 공포를 해소하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면 여성에게만 공포를 유발하는 것이 아닌가? 차라리 여성 관객은 이 공포에 대한 포르노를 보고 해방감을 느끼는 주류의 권력에 대해 공포를 느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페미니즘 이론을 영화에 적용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페미니즘을 영화에 접목시키도록 유도했다. 또한 프로이트의 남성 중심적 이론을 비판하면서 영화나 정신분석학의 여러 가지 사례를 활용하고 있어 접근하기 쉬웠다는 평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김수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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