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되새김질 해보는 여름의 흔적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영화]

느껴보지도 못한 채 지나가버린 아쉬운 2020의 여름, 그 자리를 대신할 영화 한 편.
글 입력 2020.09.0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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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레 여름이 가버렸다. 바다는커녕 휴가 한 번 못 떠났는데. 뜨겁게 작열하는 햇살 한 번 못 쬐어 봤는데. 입에 넣고 씹으며 음미하기도 전에 여름은 휙 하고 사라졌다.

 

여름을 잃어버린 기분이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이 올해의 여름을 느끼지도 못하고 아쉽게 보냈을 것이다. 떠나간 2020의 여름을 기리기 위해 나는 뜨거운 여름 그 자체인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다시 한 번 꺼내보는 나만의 2020 여름 추모 시간을 가졌다.

 

처음 이 영화를 보고 나는 며칠 내내 사춘기 열에 들뜬 소년처럼 뜨거운 감정에 몸을 맡기는 나날들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 열의 여파로 나는 사랑했던 이들에 대해 반추해보고 심지어 하고 팠던 말들을 기나긴 편지로 보내는 짓까지 하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또 며칠간 열병을 앓아야 했다. 영화의 힘이란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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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나에게 말하고 싶다... No....

 
어쨌든 이 영화가 내 현실세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이 영화가 잘 만들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마 나 말고도 많은 이들이 영화를 보고 함께 사랑의 열병을 앓았으리라.
 
 
*
아래 내용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인공들과 함께 앓는 사랑의 열병

 
이 영화가 그토록 많은 이들에게 열감(熱感)을 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사랑에 빠진 이들의 감정선을 아주 섬세하게 화면에 담았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진 두 남자는 청량한 여름날의 화면에 아름다운 수채화처럼 그려졌다. 뜨거운 여름날의 햇살은 그들의 강렬한 감정과도 맥을 같이 했다.
 
특히나 그 모든 이색적인 감정들이 처음이었을 '알리오'가 겪는 성장통은, 다 큰 어른이들의 마음을 뻐근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올리버'에게 정체모를 묘한 감정을 느끼며 그것을 마구 휘갈겨 적는 알리오의 모습, 또 올리버에게 멋져 보이기 위해 여자친구와 할 뻔했다는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떠드는 미숙함, 바흐의 곡을 멋대로 편곡해서 반항하듯 연주하는 모습들은 사랑이라는 열에 들떠 어찌할 바 모르는 -관객들도 아마 한 번쯤 겪어 봤을- 서투른 경험들을 상기시켜 그를 보는 내내 미소 짓게 한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뜨거운 감정의 소용돌이에 맞추어 추는 춤을 보는 것 같았다. -물론 서투른 과거의 모습에 공감성 수치심을 느끼는 게 아니라 미소를 띠게 되는 데에는 소년미 철철 흐르는 티모시 샬라메의 미모가 8할 이상 한다.-
 
올리버는 알리오와 달리 이제 알만한 건 다 아는 제법 무르익은(?) 청년이다. 영화 초반부엔 있는 허세 없는 허세 다 부리는 올리버가 눈꼴셔서 영화를 관람하는 내내 꽤 괴로웠지만(그래도 잘생겨서 괜찮았다.) 그런 그도 거부할 수 없는 강렬한 사랑 앞에선 어쩌면 알리오보다도 더 어린아이 같아지고 만다.
 
내내 겁내고 고민하고 흔들리며 어쩔 줄 모르다 그는 결국 현실에 못 이겨 알리오를 떠나버리는 비겁한 선택을 하고 말지만 그럼에도 그를 미워할 수 없는 이유는 알리오를 향한 그의 사랑이 진심이었다는 것을 관객들이 함께 느꼈기 때문이리라.
 
 
 
어떠한 방해도 없는 순수하고 완전무결한 사랑의 묘사

 

또 그들 사랑의 과정이 더없이 강렬하게 와 닿을 수 있도록 묘사된 데에는 딱히 그들의 사랑을 가로막는 외부적인 갈등의 요소가 없었기 때문인데, 그것은 순수하게 둘의 감정과 사랑만을 조명할 수 있게 만드는 배경적인 요소인 동시에 이 영화가 가지는 한계라고도 생각되었다.

 

일반적인 성소수자의 이야기와는 다르게 이 영화는 내가 퀴어영화를 보고 있는 건지 아닌지 구별이 안 갈 만큼 주위 인물들 중 태클을 거는 자가 없다. 알리오의 부모는 거의 상상 속에나 존재하는 유니콘 같은 부모이며 약간은 촌스러울 만큼 후반부엔 둘의 사랑을 중계하고 해설하는 '진행자'모드로 영화를 정리해주기도 한다. 어떠한 현실적인 장애물도 없는 알리오와 올리버의 사랑이 너무 사치스럽고 귀족적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다 할 방해 요소가 없어진 덕분에 관람객들은 순도 100%의 감정만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마지막 올리버의 변심도 -그는 외적 요인을 들었으나- 상황적인 것에 기인했다기보다 그의 내면적인 회피 본능이 일궈낸 선택으로 해석되었다.
 
알리오는 덕분에(?) 벽난로 앞에서 쓰디쓴 성장의 눈물을 흘린다. 감독이 속편을 기획하고 있다고 하니 어쩌면 올리버도 회피하며 도망치는 중에 성장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만일 그렇다면 영화는 순도 100%의 사랑이 빚어내는 성장 스토리라고 볼 수 있겠다.
 
 

 

나를 너의 이름으로 불러줘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어느 포인트에서 저들이 사랑에 빠졌나 내내 찾으려 애썼는데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그만큼 사랑이라는 것은 이유 없이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의미일까?(<-꿈보다 해몽!)라며 포기하려던 찰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영화에서는 주인공들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나서 내내 서로를 서로의 이름으로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자꾸 알리오, 올리버 하는데 이 결정적인 순간에 알리오 올리오가 떠올라서 웃겨 죽는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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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요?
 
 
연약한 사춘기 알리오와 그와 정반대의 건장하고 호탕한 청년 올리버. 그들은 서로에게서 각각 '닮고 싶은' 모습과 '닮은' 모습을 찾아낸 것이 아니었을까?
 
알리오는 성장한 것처럼 보이는 올리버에게 동경과 사랑을, 또 호탕한 척 하지만 마음속에 연약함을 숨기고 있는 올리버는 자신의 순수함을 닮은 알리오에게서 동질감과 사랑을 느꼈으리라.
 
제목에 대한 또 다른 해석으로는 이 제목 자체가 사랑의 본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서로의 눈에 비친 서로가 좋은 사람이었다고 얘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들이 서로를 자신의 이름으로 부른 이유는, 바로 상대의 눈동자에 비친 자기 자신까지도 사랑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진정한 사랑이 이루어짐을 이야기하고파서가 아니었을까?
 
또한 영화 초반에 올리버와 알리오의 아버지가 '살구'를 어떻게 부를지에 대한 논쟁을 벌이게 되는데 그 역시 중요한 대목이다. 똑같은 살구이지만 상황과 대상에 따라 다르게 불리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우리의 두 살구들(알리오와 올리버)은 사랑을 통해 자신들의 진실된 이름을 찾고자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살구'하니까 생각난 충격적인 살구 자위씬. 해석을 찾아보니 알리오의 곪은 마음을 확인시켜주고 올리버와 진정한 의미의 화해를 하게 되는 소재 어쩌고... 라는데 다 떠나서 대체 어떤 변태가 이런 생각을 하는 걸까 그들의 변태력에 감탄했던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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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들과 함께 들뜨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사랑하고 성장하다 보니 영화가 끝나 있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 찐한 사랑 한 번 하고 온 듯한 기억 조작으로 영화를 본 지 몇 달이 지난 아직도 꿈결처럼 그때를 그리워하곤 한다. 2020년의 잃어버린 여름을 느끼고 싶다면,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이강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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