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멋지게 인사하는 법 [사람]

글 입력 2020.09.08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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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은 게 작년 여름이었다. 길어봐야 1년 남았다고. 그 말을 들은 날, 해외에 있던 언니와 영상통화를 하며 한참을 울었다. 내가 외할머니께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들은 말씀이, 내가 졸업하는 것을 보고 살겠냐는 거였다. 연세보다 정정했던 외할머니의 약한 소리에 나는 나 결혼할 때까지는 계실 거라고 일부러 큰 소리로 말하곤 했다. 언젠가는 예정된 이별이 최대한 늦기를 바라면서.

 

그 때문에 1년도 안 남았다는 말에도 혹시나 하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그래도 우리 할머니는 더 살 거다. 요즘에는 시한부 판정을 받아도 10년 넘게 사는 사람도 많다던데. 할머니도 그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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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가 돌아가신 건, 정확히 일 년 뒤인 올해 여름이었다. 아침에 강남역 출구 계단을 비척비척 올라가면서, 제발 장마가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미적미적 계단 위를 걷다가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울음을 참는 목소리에 나는 본능적으로 무엇인가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전혀 죽음을 예상하지 못했다. 돌아가시기 전날까지 나랑 통화했고 첫 월급을 타면 할머니한테 처음 용돈을 드리겠다는 말까지 했다. 그러나 그다음 날 아침 할머니는 이제 없었다.

 

엄마는 할머니께 들려줄 테니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했다. 사람은 죽었을 때 청각이 마지막까지 살아있다는 말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나는 겨우 쥐어짜 하고 싶은 말을 했는데, 사실 아직도 내가 무슨 말을 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강남역 출구 앞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오늘 회사에 못 간다는 연락을 하고 그대로 터미널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사람들 사이에 끼여 나는 계속 울었다. 마스크를 끼고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필 경남에 있는 작은 시골 마을이라, 아침 일찍 버스를 탔어도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오후였다. 내내 울면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건 픽션의 과장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사실이었다.

 

할머니의 시신을 염하는데, 이모들과 외삼촌, 엄마, 그리고 외할머니가 가장 애지중지했던 외손녀인 언니와 내가 갔다. 큰이모는 외할머니의 귀에 대고 일어나라며 소리 질렀다. 언제는 곧 돌아가시겠다며 혀를 차던 이모들은 그게 현실이 되니 흐느껴 울었다. 염하는 걸 보면 처음에는 시신을 본다는 부담감에 충격받을 수 있다는데 나는 그저 할머니의 팔다리를 주무르고 얼굴을 쓰다듬었다. 사실 그때까지 실감 나지 않았다.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나는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일부러 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보낼 때는 눈물을 닦는 게 예의라고 했다. 언니와 나는 울음을 꾹 참고 마지막은 멋있게 인사하는 외손녀로 남자고 겨우 농담을 했으나, 우리 둘은 마지막까지 바보처럼 울었다. 작년 여름 처음 외할머니의 시한부 판정을 들었을 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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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외할머니댁에서 본 하늘

 

 

가장 소중했던 사람이 떠나가면 남아있는 사람은 후회한다는데, 솔직히 후회하지는 않는다. 정말 사랑했고 본가에 있을 때면 병원에 입원한 할머니를 보러 하루도 빠짐없이 병원에 갔다. 휴대폰에는 할머니께 전화하는 시간이 알람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내가 얼빠진 건, 이젠 알람이 울려도 전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할머니께 전화 드리기 알람을 지우면서야 나는 죽음에 관한 본능적인 공포를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이런 경험이 계속될 거라는 걸 느꼈다.

 

지난주에는 외할머니댁에 가서 짐을 정리했다. 홀로 살던 집이지만, 버릴 것을 모으니 쓰레기봉투 100L를 열 봉지를 써야 했다. 쓰레기를 버리면서 ‘지난 학기 창작 수업에서 유품정리사에 관한 소설을 썼었는데.’라는 실없는 생각을 했다. 어릴 때 내가 베고 자던 베개, 덥다고 걷어찬 이불을 봉투에 꾹꾹 눌러 담았다. 사람은 없는데 물건에는 여전히 기억이 담겨 있어 괴로웠다.

 

이주 뒤에는 49재가 끝난다. 일요일마다 절에서 제를 지내는데,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외할머니가 아시는지는 모르겠다. 여기서 절을 하는 건 남아있는 사람들의 자기만족일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외할머니의 영정사진을 똑바로 볼 자신이 없고 앞으로 다가올 무수한 이별들이 두렵다. 이주 뒤에는 웃으면서 보내줄 수 있을까. 여전히 나는 바보같이 울 것이고 수많은 이별에 서툴게 대응할 것이라는 건 알겠다.

 

 

[이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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