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성 서사의 재탄생, '화이트 호스' [도서]

강화길 작가의 '괜찮은 사람'과 비교해 본 '화이트 호스'
글 입력 2020.09.04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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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처음 책을 선물 받았다. 그것도 내가 요즘 제일 눈여겨보고 있던 작가의 신작. 지금까지 읽고 있던 책들을 하나하나 다 읽고서야 뒤늦게 책장을 폈기에 어연 두 달이 지난 지금에서야 서평을 적어본다.

 

강화길이라는 이름을 접한 건 2017년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에 수록된 <호수>를 통해서였다. 이는 대학 교양 수업에서 접했던 작품이었는데, 소설로 찝찝함을 느끼는 것이 처음이었기에 아직도 내게 인상적인 작품으로 남아있다.

 

더 인상적인 것은 그 후였다. <호수>를 읽고 다 같이 토론을 하는 자리에서, 어떤 여성분이 "이 소설을 읽고 무서웠던 여자분들 계신가요?"라고 물었을 때 과반수의 여학생들이 손을 들었다. 뒤이어, "이 소설을 읽고 무서웠던 남자분들 계신가요?"라고 물었을 땐 다섯 명도 채 거수하지 않았던 것을 기억난다.

 

거기서 받은 충격이 아직까지 내가 이 소설에 대한 애착을 갖게 해주는 것 같다. 내가 이 이야기를 저버리면 세상에 묻힌 많은 소리를 무시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내가 강화길 작가의 작품에 대해 계속해서 관심을 갖게 되는 이유도 그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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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올 초, <호수>를 다시 읽을 기회가 생겼다. 젊은 작가상 작품집 안에 수록된<호수> 만 보았기에 작가 자신만의 작품으로 채워진 작품들이 궁금했었고, 따라서 책 쇼핑을 하다가 '강화길'이라는 이름을 보고 홀리듯이 그의 소설집 <괜찮은 사람>을 구매했다.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들었던 생각은 다분히 복합적이고, 여전히 찝찝하다는 것.

 

소설은 불완전한 인간 군상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어떤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는다. 따라서 어떻게 이야기가 마무리됐을지도 아무도 모르고, 이해하지 못할 인물들의 행동을 설명해 주지도 않는다. 인물들의 작은 말과 행동도 하나의 병증으로 보이기에, 독자가 스스로 이 사람들이 <괜찮은 사람>인 것인지 묻는 것 같기도 했다. 당신이 느끼기에 이 사람들이 괜찮은 것인지, 혹은 이 사회에 발자취를 남겨도 괜찮을 사람인지.

 

그리고 반년 후, 그의 신작 <화이트 호스>를 접했다. <괜찮은 사람>과 <화이트 호스>는 여성 서사를 스릴러에 접목했다는 큰 틀에서 같지만, 묘사하고 있는 분위기가 꽤 다르다. <화이트 호스>는 <괜찮은 사람>에서 다뤘던 주제보다 더 일상적이고 더 평범하기에 일상 속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꺼림칙함을 끄집어내서 보여준다는 느낌이 강했다.

 

특히 여기에 실린 <음복>이 그렇다. 2020년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 및 현대문학상 당선 후보에도 올랐던 이 작품은 가족 간의 제사 현장에서 암암리에 존재하는 여성의 고정적인 역할을 담아냈다. 집 안의 가사 노동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노동까지 착취당해야 했던 여성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내서 주변에서도 좋은 반응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주 일상적이기에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던 것들. <화이트 호스>는 대개 이런 이야기를 한다. 따라서 일정한 양식을 지키는 것 같기도 하다. 일상을 과장해서 보여주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묘사하기 때문에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 해소하지 못한 그 찝찝함을 말로 풀어서 설명해준다.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강화길 작가가 써 내려가는 작품들의 특징은 대체로 이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괜찮은 사람>에서는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의 불안함을 이야기했다면, <화이트 호스>에서는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다룬다는 느낌을 크게 받았다.

 

정리하자면 살아가야 하는 의무를 부여받은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은 대개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소녀 가장이거나, 누군가를 부양해야 하는 의무를 지고 있는 사람이거나, 어느 한 곳에서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좀체 무너지지 않는다. 어떻게 해서든 그 자리에서 견고하게 자리를 지켜야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악착같이 괜찮아보이려고 한다.

 

 

그리하여 이번 소설집은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되리라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문을 열고 들어간 사람들의 이야기.

그 집에 머무는 사람들의 이야기.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고리를 끊고, 의미를 바꾸려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 모든 실패의 모순과 애착이 만드는 희미한 틈새에 대한 이야기.

 

그러니까 삶에 대한 이야기.

 

<화이트 호스> 中

 

 

<화이트 호스>는 괜찮아져야 하는 사람들을 위한 용기다. 왕자의 백마가 없어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용기로써 전해준다. 소수 인권 존중에 대한 목소리가 쏟아지면서도 혐오가 뿌리 박힌 사회는 한순간에 뒤엎어지지 않는다.

 

이 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변화의 지표에서 매일 다른  돌파구를 맞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일상에 도사리는 위험을 감내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희망 지침서. 변화를 감지하고 어떠한 책임으로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전한다. 당신의 화이트 호스는 바로 당신 자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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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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