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완벽한 사랑'이라는 이름의 비극 - 루비 스팍스 [영화]

글 입력 2020.09.01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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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프롬은 자신의 저서 ‘사랑의 기술’에서, 진정한 사랑의 성공이란 자기도취를 극복하고 객관성을 가지게 될 때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이는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능력이며, 자신의 욕망과 두려움에 의해 만들어진 상으로부터 그 대상을 분리해낼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어느 날, 상상 속에서만 그리던 이상형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불현듯 앞에 나타난다면 당신은 어떻겠는가? 게다가 그 이상형이 당신을 보자마자 마치 오래된 연인이었던 것처럼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면? 영화 ‘루비 스팍스’는 바로 이러한 상상에서부터 출발한다.

 

자신의 욕망과 두려움이 합쳐져 만들어진 완벽한 존재, ‘이상형’과의 사랑은 과연 행복할 것인지. 진정한 사랑은 비로소 어떻게 완성되는지에 대해 꽤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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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베스트셀러 작가인 캘빈은 오랫동안 상상 속에 그려오던 완벽한 이상형을 차기 작품의 주인공인 ‘루비 스팍스’로 설정한 뒤, 글을 써 나가기 시작한다. 그 이후 캘빈은 날마다 루비와 만나고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꿈을 꾸게 된다.

 

캘빈은 곧 꿈과 현실을 구분 지을 수 없을 정도로 루비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고, 꿈속의 인물을 사랑하게 된 자신의 한심함을 정신과 주치의와 가족들에게 토로하기도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잠에서 깬 캘빈의 앞에 마법처럼 루비가 실재하게 된다. 그녀는 마치 오래 전부터 캘빈과 함께 지냈다는 듯 익숙한 모습으로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믿기지 않는 집안 풍경에 캘빈은 루비를 귀신 보듯 피해 다니지만, 곧이어 현실임을 깨닫고 행복감에 젖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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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빈은 자신이 글쓰기로 루비의 모습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이미 루비가 그 자체로 완벽하고 사랑스럽다며 글쓰기를 멈춘다. 그렇게 그들의 사랑은 영원한 행복을 향해 순항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루비의 단점이 캘빈의 눈에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하고, 루비가 예상 밖의 행동을 하기 시작하자 캘빈은 처음의 다짐과는 달리 다시 타자기 앞에 앉는다. 그리고 글쓰기를 통해, 루비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다시 바꾸기 시작한다.

 

처음엔 그녀의 아주 사소한 단점을 고쳐 나가던 캘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비의 단점들이 계속해서 눈에 보이자 점점 극단적으로 루비를 바꾸기에 이른다. 시시각각 바뀌는 자신의 감정과 행동들에 혼란스러움을 느낀 루비는 결국 캘빈의 능력을 알게 되고, 루비를 놓아주기로 결심한 캘빈은 마침내 그녀를 자유롭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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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그려지는, 루비에 대한 캘빈의 사랑은 어쩐지 비정상적이고 극단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 ‘소설 속 주인공’이 아닌 현실의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우리들도 결국 캘빈과 같은 실수를 범하게 되곤 한다. 즉, 캘빈이 보여주는 ‘가장 연약한’ 사랑의 방식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바꾸려 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스크린으로 옮긴 것뿐인 것이다.

 

사랑의 놀라운 세계로 빠지게 될 때, 우리는 흔히 상대방과 나를 동일시하고자 하는 무의식적 욕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나는 너, 너는 나’라는 말의 달콤한 허울을 특히 경계해야 한다. 이 말이 어느 순간에 이르러 나와 상대방 사이의 다름, 그리고 경계에 대한 이해를 무너뜨리는 무서운 한마디로 변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 에리히 프롬이 그토록 강조했던 진정한 사랑의 완성조건으로 돌아가보자. 이 글의 첫부분에서 소개했던 ‘사랑의 기술’의 구절에 조금 더 덧붙이자면, 프롬은 사랑을 ‘둘이 하나가 되면서, 동시에 둘로 남아있는 역설적인 현상’이라고 정의했다. 즉,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뿐이며 나의 소원이나 두려움과 같은 것들 때문에 그를 바꾸려 하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 이 영화를 봤거나, 보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꼭 스스로 자문해보기를 바란다. 캘빈의 모습 속에 자신이 투영되어 보이지는 않는지. 나도 모르게 지금껏 가장 연약한 방식으로 누군가를 사랑해오지는 않았는지. 결국 이 세계 그 어디에도 완벽한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깨닫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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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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