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대안은 없다 - 21세기 반자본주의자를 위한 안내서

글 입력 2020.08.31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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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명성 있는 사회학자 에릭 올린 라이트가 2019년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향년 71세. 한국에 대중적으로 알려진 사람은 아니지만, 계급을 파고든 그의 지적 연구는 사회학계에 한 획을 그었다. 라이트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선 계급이 마르크스의 예측처럼 자본자와 노동자 사이의 착취과 대립의 구조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대부분의 피고용인들은 자본가적 특성과 노동자적 특성을 함께 지닌 모순적 계급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관리직, 임원직 등은 피고용인이지만 자본을 대리해 노동자들의 착취를 수행한다. 소련 등 거대한 사회주의 실험이 실패하고, 자본주의 사회가 심화하면서 다른 세계를 향하는 길은 마르크스의 예측보다 더 험난하다는 것이 라이트가 계급 이론을 연구하며 얻은 결론이었다.

 

하지만 라이트가 마르크스 계급 이론의 한계를 연구한 건 사회주의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더 정확한 시선으로 지금 이 사회를 다르게 이끌어 갈 방향을 바라보기 위해서였다. 그는 자본주의를 개혁할 여지는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으며,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입장 아래 라이트가 쓴 책이 <리얼 유토피아>(2012)다. 이 책이 세계적으로 열정적인 반응을 일으키자 라이트는 일반 대중들을 위해 <리얼 유토피아>를 좀더 간결하고 쉽게 정리한 새로운 판본을 새로 썼다. 그 책이 바로 <21세기 반자본주의자를 위한 안내서>다. 자본주의의 반대는 사회주의가 아닌 '반자본주의'라고 말하며, 새로운 사회의 가능성을 논리적이고 치밀하게 설파한다.

 

오래 학문계에 몸담고 있던 사람의 글인 만큼, 아주 쉽게 읽히지는 않지만 라이트의 문제의식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감명깊게 다가올 주옥같은 문장과 통찰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1. 평등, 민주주의, 연대 - 반자본주의의 토대들


 

자본주의가 품고 있는 다양한 사회 문제는 반자본주의를 낳는 토대가 된다. 사람들이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동기에는 크게 계급적 이해관계가 도덕적 가치가 있다. 우리는 자본주의가 우리의 물질적 이해관계를 해치기 때문에 자본주의에 반대하기도 하고, 우리에게 중요한 도덕적 가치를 거스르기 때문에 반대하기도 한다. 노예제에 저항했던 노예들은 전자의 동기에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노예제에 반대핬던 노예주들은 후자에 더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해관계를 넘어서 노예제가 우리의 도덕적 가치를 훼손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노예 소유자들도 노예제에 반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라이트의 모순적 계급 이론은 '계급적 이해관계'만으로 자본주의를 반대하기엔 충분하지 않아도 보았다. 그에게는 사람들이 삶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여러 가치를 중심으로 연합을 형성하는게 관건이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는 삶의 어떤 가치들을 위험하게 만드는 걸까? 라이트는 세 가지 가치군을 제시한다. 평등/공정, 민주주의/자유, 공동체/연대다.

 

라이트는 '무엇이 평등인가?'라는 질문에 간결하고 울림 있는 한 문장을 제시한다.

 

 
"정의로운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행복한 삶을 누리는 데 필요한 물질적 수단과 사회적 수단에 관련해 대체로 동등한 접근권을 지녀야 한다."
 

 

이 '대체로 동등한 접근권'은 '동등한 출발점'이라는 말과는 다르다. 동등한 접근권은 사람들이 어느 순간 일을 망치거나, 어리석은 결정을 내릴 수 있으며, 개인이 정말로 책임 있는 일과 책임 없는 일을 무 자르듯 분명히 구분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시선을 내포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의로운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전 생애에 걸쳐 최대한 많이 행복한 삶을 위한 조건에 다가갈 수 있는 접근권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행복하지 못한 사람도 자기가 속한 사회 제도와 사회 구조 때문에 행복에 필요한 조건에 접근할 기회가 가로막혔다고 불평할 수 없다. 라이트는 또한 민주주의/자유에 대한 가치에서도 민주적인 사회가 무엇인지 정의하고 넘어가는 걸 잊지 않는다. 그에게 민주적인 사회란 이런 것이다.

 

 
"완전히 민주적인 사회에서 모든 사람은 자기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일들에 관한 결정에 충분히 의미 있게 참여하는 데 필요한 수단에 관련해 대체로 동등한 접근권을 누린다."
 


하지만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이런 가치를 최대한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대신 자본주의 경제는 불공정한 제도와 불평등한 분배로 분명 제거할 수 있는 형태의 인간 고통(동등한 접근권을 얻지 못해 생기는 고통)을 영속시킨다. 경제 수단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의 권력 불균형이 필연적으로 경제적 불평등, 착취를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착취가 존재하는 경우에 단순히 몇몇 사람이 더 잘살고 다른 이들은 못 산다는 말이 아니다. 착취란 이런 상태 사이에 인과관계가 존재한다는 현실을 함축한다. 곧 부자가 부유한 이유는 어느 정도 빈자가 가난하기 때문이다. 자본 소유자의 소득은 어느 정도 노동자의 노동을 착취한 결과다."
 

 

자본주의 문화는 또한 '공동체/연대'라는 가치 대신 다른 두 가치군을 지지한다. 라이트에게 그건 경쟁적 개인주와 사유화된 소비주의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서로 공존하는 구성원으로 연결되려기 보다는 서로 경쟁하면서 남보다 앞서려는 노력이 바람직한 삶이라는 사고, 남의 도움에 의존하기보다는 개인으로 자기 운명에 책임지는 것이 도덕적이라는 사고, 남을 희생시키더라도 성공을 위해 경쟁하고 노력하는 게 옳다는 믿음을 내재하게 된다.

 

 
"시장 사회에서 (...) 타인은 가능한 부의 원천으로 여겨지며, (공포 속에서는) 자기의 성공을 위협하는 존재로 여겨진다. 여러 세기 동안 자본주의 문명의 결과로 우리가 아무리 여기에 익숙해지고 단련된다고 하더라도 이런 시각은 타인을 바라보는 끔찍한 방식이다."
 

 

우리에게 단정적인 계급적 이해관계가 없을지라도, 이런 가치들이 희미해질수록 사람들의 도덕적 이성은 지금 사회가 옳지 않으며 변화가 필요하다는 반자본주의적 운동을 촉발시킨다.

 

 

 

2. 반자본주의의 갈래들 _ 분쇄하고 해체하고 길들이고 저항하고 벗어나기


 

라이트는 반자본주의로 사회주의를 제시하지 않는다. 과거의 혁명적인 사회 변혁은 평등/민주주의/공동체라는 가치를 실현하기에 분명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점진적인, 다각도의 자본주의 투쟁을 제시한다. 바로 '자본주의 분쇄하기, 자본주의 해체하기, 자본주의 길들이기, 자본주의 저항하기, 자본주의 벗어나기'다. 각기 다른 방식인 이 다섯 가지 전략은 국가적 차원의 움직임이 필요한 것도 있고 (해체하기, 길들이기) 시민들이 직접 조직할 수 있는 저항 방식도 있다. (저항하기, 벗어나기)

 

저자는 자본주의를 잠식할 수 있는 장기 전략은, 경제 활동을 민주적으로 조직하는 다양한 방식을 확대하면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민주적인 경제 활동이란 무엇일까?

 

라이트가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있다고 본 민주사회주의의 구성 요소에는 '조건 없는 기본 소득'이 있다.

 

 
"조건 없는 기본 소득이 존재하는 세상이 되면, 사람들이 새로운 형태의 경제적 관계와 사회적 관계를 건설하려는 기획에 참여하기가 한층 더 쉬워진다. 자본주의의 전형적인 특징은 대부분의 성인이 생활필수품을 획득하기 위해 유급 고용에 참여해야 한다는 점이다. (...) 대부분의 사람이 자본주의 노동 시장을 거부하기란 쉽지 않다. 조건 없는 기본 소득은 이런 거부를 한결 하기 쉽게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폭넓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준다."
 

 

이 조건 없는 기본 소득과 함께 협동적 시장 경제 역시 민주적 경제 활동의 기본 요소이다. 이 외에도 민주주의적 사회는 자본주의 기업의 민주화, 협동조합을 지원하는 공익사업적 은행, 도서관, 돌봄 시설, 지역 문화 센터 등 공적 재화와 비시장적 서비스의 공급,  독점을 막는 지식 공유재, 접근권의 확대 등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

 

마지막 장에서 라이트는 시민 중심으로 시도할 수 있는 민주적 방식 말고도 국가적 차원의 개입, 공생적 변혁을 추구하는 개혁들이 필수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그 과정에서 구조 자체가 친-자본주의로 설계된 정치 구조 안에서 반자본주의적 운동을 추진하는 일의 어려움, 그럼에도 시도해야 할 이유와, 해법을 제시한다. 라이트는 마르크스 주의 사회학자로서 사회주의적 시선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민주주의를 민주화'하는 것, 평등과 연대라는 민주주의의 가치가 최대한 실현되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사회를 가로막는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종언은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 위기, 정보 혁명과 기술 발전으로 생기는 고용 변화로 인해 촉발될 거라 예측했다.

 


 

3. 대안은 없다.


 

마거릿 대처는 1980년 영국 복지 예산을 축소하고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대안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라고 말했다. 우파 정치인들의 단골 레퍼토리인 이 문구는 자본주의, 신자유주의의 불가피성을 주장할 때면 자주 등장한다. 많은 지식인들 또한 이 문구를 패러디하며 얼마나 '대안이 있는'지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파고 들었다. 이 책의 저자인 에릭 올런 라이트 또한 그런 지식인 중 하나다.

 

1980년에서 40년이 지난 지금, 내게는 저 문구가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이제 "대안은 없다"라는 말은 자본주의의 필연성을 말한다기보다, 지금 이 순간 변화하지 않으면 파멸만이 존재한다는 말처럼 들린다. 코로나19의 판데믹은 지금까지 우리가 지구 사회를 굴려오던 방식이 심각한 문제가 있었음을 냉혹하게 보여주었고, 괴이할 정도로 오래 가는 장마와, 이상 기후, 판데믹으로 인해 절망스러운 경제, 전 세계적인 재난 상황은 우리가 경고등이 깜빡거리는 수준을 넘어갔음을 암시하는 목소리로 들린다. 이제 세계는 더 이상 자본주의와, 혹은 그 대안이라는 선택지로 나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을까? 지금까지와 같은 불평등과 착취 구조를 유지한다면 자본주의에 미래는 없다.

 

우리에게 이것 또는 저것이라는 선택지가 있다는 생각 또한 지나간 이야기다. 사느냐 죽느냐, 라이트는 낙관적인 희망을 품고 새로운 세계를 탐구했지만, 그걸 읽는 나는 좀 더 절박했다.

 

대안은 없다. 낭떠러지를 향해 질주하는 차가 할 수 있는 일은 엑셀에서 발을 떼고 핸들을 트는 일뿐인 것처럼.

 

창 밖 하늘은 황사처럼 누렇고, 비가 며칠 째 추적추적 내린다. 나는 그 빗소리를 들으며 라이트가 말한 유토피아를 간절히 상상한다.

 

 

[김나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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