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는 악질이야 나는 내 이야기를 쓸거야, 도서 - 체리

글 입력 2020.08.27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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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더워 죽을 것 같다.

동생이 내 방에서 선풍기를 가져갔다.

나는 동생을 등을 후려치고 나쁜 새끼라고 소리 질렀다.

나는 쓰레기다.

 

위는 오늘 오전 목동의 한 자택에서 실제로 일어난 것처럼 쓴 글이다. 만약 당신에게 이 네 문장을 읽고, 저자가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본다면 어떨 것 같은가? 어떤 답을 했는가? 불친절하다? 현실적이다? 더운데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모르겠다? 이 내용을 쓰는 이유가 뭐냐고? 그야 나는 일반적으로 이런 서술자를 정말 못 견디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감정적으로나 그 표현력으로써나 근시안적이고 자기 혐오적이라 뻣뻣해 보이는 서술자 말이다.

 

소설 <체리>의 서술자가 딱 이런 서술자다. 짤막짤막한 단어들을 다다다 쏘아 놓지만, 그 어떤 것도 독자의 가슴을 치고 나가지 않는다. 이는 근본적으로 서술하는 방식과 관계되어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자기혐오적인 생각 외에는 정교한 생각을 하지도 않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소설 내내 생생하게 표현되는 것은 약물과 냉정하게 기술해나가도 참혹한 전쟁 묘사뿐이다. 심지어 그가 가장 사랑하는 에밀리마저도 `나의 천사`, `우리는 서로를 망치는 관계` 수준에서 더는 전개되지 않는다. 물론 수많은 단어 속에 저 단어들이 꽃피는 것이 아니라, 연계 없이 둥둥 떠다닌다.

 

사실 이런 표현이야말로 이 서술자를 잘 표현한다. 주인공은 무언가 강렬한 중독이나 열망으로써 에밀리를 그리워한다. 하지만 소설의 어느 구석에서도 정작 그녀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전혀 기술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왜 그가 에밀리에 이토록 열망하는지 모른다. 심지어, 에밀리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른다. 이 정도면 주인공을 거부하면서 떠나지 못하는 에밀리가 불쌍할 정도다. 왜냐면 존중이 없는 사랑은 자기애가 얹어진 자기파괴에 가깝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서술자는 다분히 편파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다.주인공이 여성을 바라보는 방식은 성에 관심이 많지만, 사회적 공감능력과 기술이 터무니없이 형편없는 중학교 2학년 남학생과 같다. 주인공은 여자를 보면 종소리를 들은 강아지처럼 가슴이 어떻고, 항문이 어쩌자는 소문이 있고 하는 상상을 할 것만 같다. 게다가 어떤 부분은 인종차별적이기까지 했다.

 

굳이 작품을 해석하는 데 윤리적 코드를 들먹여야 하는가? 사실 나는 문화 예술 애호가로서 좀 불량한 기질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정치적 올바름이나, 윤리적 태도에 집착하는 작품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예술적 담론이라기보다 사회적 담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서술자는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해 없이 건설되는 사랑이 없는 것처럼, 주인공이 터무니없이 몰입이 안 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작품으로부터 소외되는 느낌이었다. 내가 집중력이 거지 같다고는 해도, 중간중간 몇 번이나 책을 덮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이만큼이나 실존적인 소설이 있나 싶기도 하다. 우리도 자기혐오적로 가득찬 자아 외에 대부분의 것에 관심이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나한테 이 책은 정말 새로운 방식의 소설이다. 사랑도 혐오도 갈구하지 않는 소설, 감명을 주려는 의도조차 보이지 않는 소설, 나는 이런 식으로 기술된 책을 읽은 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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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에 사실 어떤 기대가 있었다. 소설의 주 소재가 비교적 최근에 일어난 전쟁이었기에, 나는 현대사회의 정치사회적 아이러니, 죽음과 거리 먼 삶을 살아간 현대인의 반응과 같은 이야기를 기대했다. 내가 읽은 <체리>에서는 전자는 맥없이 떨어져 나갔지만, 후자는 그 나름의 형식으로 꽤 적절하게 표현된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도 이 부분에 있었다. 근시안적이고 냉혹한 주인공은 현대인과 퍽 닮았을 뿐만 아니라 군대가 가진 우스운 모순을 간파해낸다.

 

별 특별한 목적도 없이 이라크에 파병된 주인공은 여드름이 나고 오합지졸인 병사들과 `진짜 사나이`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냉혹하고 근시안적인 시선의 주인공에게는 군대의 모든 구호가 맥없이 오다 부서진다. 주인공의 냉소적인 시선 앞에서 모든 것은 군사놀이와 같다. 이라크에서 그는 `의사`라고 불리며 대단한 구원자가 된 것처럼 하지 사람들을 돌보지만, 실상 그는 급하게 주입한 기초 의학지식을 가진 어설픈 사람일 뿐이다. 책의 이름이 <체리>가 된 것도 이 맥락에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인공의 마음이 절절하게 와 닿는 것은 아니다. 주인공은 늘 그렇듯이 이 모든 것을 건조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까 더욱 이 책을 어떻게 리뷰해야하는지 모르겠다. 초점을 맞춘 그에 관한 이야기도 다소 터무니없는 방식으로 다가왔다. 내가 읽은 주인공은 아래와 같이 말한다.

 

"나는 대학생 때부터 마약을 팔았고요. 딱히 가정폭력이 있었던 건 아니고, 지금까지 열렬하게 사랑하는 애인도 있었어요. 근데 전 채식주의자였고, 딱히 누굴 해치면서 살진 않았어요. 아 또 대학생 때부터 (신발가게 에피소드) 저 스스로가 실패자로 느껴졌어요. 전쟁에서 전 형편없었어요. 하여튼 전쟁이 끝나니까 또 마약에 손을 댔고요. 딱히 누굴 해치려던 건 아닌데, 마약 사려고 은행을 털었어요."

 

머리가 하얗게 된다. 내가 무언가 놓친 게 있었을까? 이 허무주의적인 결론에 대해서 난 대체 무엇을 써야 할까? 특이한 소설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래도 난 이렇게 말할 거다. "살려줘! 난 여기서 나가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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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

CHERRY

 

 

지은이

니코 워커(Nico Walker)

 

옮긴이 : 정윤희

 

출판사 : 도서출판 잔

 

분야

영미소설

 

규격

130×195(mm) / 페이퍼백

 

쪽 수 : 432쪽

 

발행일

2020년 07월 27일

 

정가 : 14,800원



 

[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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