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화장실 순례기 [사람]

나에게 화장실이 가진 의미를 되새겨보다.
글 입력 2020.08.26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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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때문에 밖으로 나가기가 꺼려지는 답답한 요즘 나의 마음을 풀어줄 한 권의 책을 샀다. 집안에서의 생활이 늘어서인지 요새 실내 공간 인테리어나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늘어서인지 직접 방문해보고 체험하며 안목을 높이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여서 아쉽기만 한 마음 대신에 고른 책은 심미안 수업의 저자이기도 한 유광준 작가의 <내가 사랑한 공간들>이라는 책이다.

 

책은 작가가 지금껏 국내에서 방문했던 곳들 중에서 아름다움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주관적으로 선정하여 소개하고 있다. 새로 알게 된 곳은 물론 이미 방문했던 곳이라도 작가의 시선을 따라 다시 한번 방문해보고 싶은 마음이 물씬 드는 아주 매력적인 책이다.

 

그리고 책 속 삶의 안목을 높여주는 공간 큐레이션 20선으로 소개된 장소 중에 나의 경험을 되새기고 싶은 챕터가 남아 글을 써 본다. 바로 <나의 화장실 순례기>라는 챕터이다. 다른 챕터와는 다르게 한 장소를 소개한 것이 아니라 화장실이 갖는 의미와 작가가 방문했던 화장실 중에 디자인적으로 아름다움을 느꼈던 화장실을 소개해 준 챕터였는데 꽤 공감이 되는 내용이 많았다.

 

나에게 화장실은 배설하는 장소 이상의 공간이다. 누구나 그렇듯 확실히 화장실은 위생이 첫 번 째로 중요한 장소이다. 개인적으론 술집을 방문할 땐 화장실이 깨끗한지가 정말 중요하다. 더러우면 절대 다시 방문하지 않는다. 반대로 화장실이 깨끗해서 일부러 그 가게를 찾아간 적이 있을 정도이다.

 

사실 집 밖의 화장실은 남들도 공용으로 배설을 하는 곳이기에 당연히 깨끗해야만 하지만 화장실을 볼 일을 보기위해서만 방문하지는 않는다. 화장실은 나를 환기시키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나 역시 화장실의 디자인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화장실 공간 디자인이 감각적이라면 그 이유만으로 그 곳을 다시 방문할 충분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나에게 화장실은 정말 의미 있는 장소다. 회사 신입 시절엔 혼자 있고 싶어서 화장실을 자주 방문하고는 했다. 잠시나마 외부의 시선과 완전히 차단되어 숨쉴 수 있던 유일한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작은 한 칸의 공간에서 이어폰 꽂고 시끄러운 음악 들으면서 잠시나마 숨통을 터놓기도 했고 상사로부터 혼나고 상처받은 마음을 혼자 다독이던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화장실의 큰 거울은 다시 밖으로 나서기 전에 나를 가다듬는데 도움을 준다. 거울속의 나를 들여다보며 화장을 고치고 어깨도 피고 잠시나마 나를 재정비하는 공간인 것이다. 이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화장실이 세련된 디자인으로 무장한 장소라면 당연히 그 곳에 들어서는 순간 기분이 환기될 수 될 수밖에 없다. 여자들이 호텔 화장실을 괜히 좋아하는 게 아니다. 감각적이고 세련된 호텔 화장실에 들어서면 기분도 상쾌해지고 내 모습도 더 세련되게 비춰 보여 셀카 한 장 찍고 나오기도 한다.

 

책에 성공한 CEO의 화장실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변기에 앉아 있는 동안 서울 시내를 다 내려 볼 수 있는 정말 멋진 곳이었다고 한다. 나에게도 화장실이야 말로 평소 풀리지 않는 문제들도 번뜩 해결이 된다는 마법같은 장소이기도 한데 그 분은 매일 하루의 시작과 마감을 신선한 자극과 영감으로 채우고자 일부러 화장실 내부를 개조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그 부분이 너무나 부러웠다.


 

이제 화장실은 중요한 생활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악취와 대응되는 향의 선택으로 어쩔 수 없는 일상의 시간조차 특별하게 만들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나에게도 화장실에 대한 큰 로망이 있다. 펜트하우스 급은 아니더라도 안방 만한 크기에 다 벌거벗고 걸어 다닐 정도의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고 큰 통유리로 햇빛을 받을 수 있고 밖도 내다볼 수 있는 곳이었으면 상상한다. 변기 옆에는 작은 책장을 구비해 놓고 짧은 시간이 나마 편안하게 앉아 시간을 보낼 수 있고 넓은 욕조에서 편안히 반신욕을 즐기며 좋아하는 책이나 영상을 즐기는 시간을 일상에서 가지고 싶다.

 

이런 환상이 크기 때문에 가끔씩 여행을 가면 욕조가 넓고 개방적인 화장실이 있는 숙소를 일부러 찾아본다. 코로나가 잠잠해진다면 우선 책에 소개된 씨마크 호텔의 바다가 보이는 방에 묵어보고 싶다. 저자가 화장실 때문에 같은 방을 세 번이나 찾았다고 하니 정말이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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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보니 나도 올 초 방문했던 장소 중에 인상에 남는 화장실이 있어 소개해본다. 강릉 하슬라아트호텔의 화장실이다. 사실 화장실만 아니라 전체 공간 모두가 정말 매력적인 곳이다. 그래도 화장실만 소개해 보자면 우선 세면대가 곡선 디자인이라 화장실이라는 느낌이 잘 들기 않았다. 샤워부스가 따로 있고 변기는 일반 내장 바닥에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바다가 보이는 쪽으로 아주 개방적인 크고 넓은 (거의 침대만한) 욕조가 있어 눈으로 자연을 담고 바람을 느끼며 반신욕을 누릴 수가 있었다.

 

이런 화장실을 지금 당장 일상에서 누리기에 현실적인 제약이 많기에 이렇게 가끔 여행을 가고 싶은 충동이 돋는가 보다. 오늘은 그 대신 화장실 방향제 향이라도 바꿔봐야겠다. 어서 코로나가 종식되어 맘껏 책 속의 공간들을 모두 담아보고 싶다.


 

[최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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