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 '찰칵'을 보고 [딸 ver.]

무엇이 날아가야 할 새를 자꾸 딸로 만드는가
글 입력 2020.08.27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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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저와 저의 어머니 둘이 함께 관람하고,

각자 리뷰를 작성해 [엄마 ver.]과 [딸 ver.]으로 나뉩니다.

엄마의 리뷰가 궁금하신 분들은 해당 링크를 클릭하신 후

감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연극 <찰칵>을 보고 [딸 ver.]

무엇이 날아가야 할 새를 자꾸 딸로 만드는가

 


찰칵포스터_대표.jpg

 

 

코로나 19의 교회 발, 광화문 집회 발 확산이 시작되기 전 보기로 한 연극이어서 마스크를 꼼꼼히 눌러쓰고 집에서 출발했습니다. 고작 하루 이틀 사이에 대학로의 거리엔 사람이 확 줄었습니다. 일찍 출발한 김에 일찍 QR코드를 찍고 비 오는 마로니에 공원을 산책하며 시간을 죽였습니다.


연극 시간에 맞춰 화장실을 들르고, 극이 열릴 지하 2층으로 내려갔습니다. 자리를 찾는데, 정말 무시무시하고 안심되게도 거리를 둔 의자들이 눈에 띕니다. 극장은 늘 나를 완벽한 익명의 제삼자로 만들어주던 공간이었는데, 이렇게 떨어져 앉으니, 마치 시험장의 학생이 된 기분입니다. 안 그래도 연극을 보다 펑펑 울 것 같은 브로슈어였는데, 너무 잘 보일듯해 혹시 관객이 적으면 배우들이 저를 부담스러워할까 걱정도 됩니다.

 

무대는 단출 했습니다. 오래된 의자 두 개. 상상력을 마구 끌어올리기엔 충분한 소품들이었습니다. 극의 시작을 기다리며 브로슈어를 들여다보니 요즘 이곳저곳에서 쓰이는 동시대성이라는 단어가 보입니다. 갑자기 아 지루하려나 생각도 들고, 혹시 그저 세대 간의 갈등을 부추기고 마는 극이진 않을지 걱정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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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말심'역의 강애심 배우


 

극은 봉구(딸 역, 이진경배우)의 외국인 발음으로 시작됩니다. 처음엔 아, 조금 어색한가? 싶기도 합니다. 2인극인 만큼 둘의 조합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발음은 둘을 전혀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으로 보이게 만들었으니까요.

 

제가 둘이 모녀 관계임을 의심하는 만큼 극중의 서로도 당신들을 외계인 보듯 봅니다. 쟤는 내 딸이라면서 한국말도 제대로 못 하는 것 같고, 난 환장하는 홍어도 못 먹는다니. 말심의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듯 하는가 하면, 우리 엄마라면서 나를 반가워하는 것 같지도 않고, 대체 어디로 끌고 다니는 거야. 하는 봉구의 투덜거림도 들리는 듯합니다.

 

둘은 지하철에서, 식당에서, 단칸방에서, 사진을 찍고, 울고 웃고, 춤을 추고, 소리도 지르고, 뛰기도 하고, 노래도 부릅니다. 때론 격하게, 때론 우물쭈물하게, 끊어질 듯 말 듯한 소통들이 이어지고, 극의 마지막에 가선 그렇게 외계인 같던 봉구와 말심이 모녀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 극은 성장극입니다. 봉구와 말심, 저와 엄마, 수많은 생명체, 하늘과 바람, 우리 모두가 긴 선위에서 어떻게 해서든 균형 잡기 위해 꿈틀거리는 것이 보입니다. 떠들썩한 말소리와, 수많은 복음이 우리의 정신을 어지러이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하나의 선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합니다.

 

봉구는 락음악에 맞춰 춤을 춥니다. 녹슨 시간이 담긴 공을 던져버리고. 하나의 커다란 실감을 해내고, 알에서 새가 된 순간임을 선언하는 듯합니다. 가끔은 억울하기도 합니다. 날아가고 싶은데, 차마 발이 안 떼지는 순간들을 마주하기도 하니까요.


가끔 성장은 포기하기 직전에야 열리는 문 같습니다. 마치 봉구가 더 이상 못하겠다며 방을 나가려고 했던 것처럼요. 사람은 변한다기보단 성장합니다. 사람이 변화한다는 것은 마치 사과를 마신다는 문장처럼 어색히 느껴집니다. 그렇게 성장을 거듭하다 보면 자연과 합치됩니다.

 

‘찰칵’ 하는 순간 그 한 컷에는 찍는 이와, 찍히는 이, 배경, 모든 것이 입을 다물고 하나가 됩니다. 예술이 줄 수 있는 가장 빛나는 것 중 하나는 침묵이라고 생각합니다. 알아야 할 게 얼마나 많은지, 해내야 하는 기도가 얼마나 부담스러운지, 지켜야 할 법들은 또 매일 우리를 덮쳐옵니다. 어떤 성장은 언어로 정의할 수 없는 가장 자연스럽고, 귀중한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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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거 없이 시원스레 울다 나온 연극이었습니다. 커튼콜 때 배우들께 민망할 정도로요.

 

마스크와 안경을 쓰고 우니 눈앞은 뿌옇고 숨이 안 쉬어져 머리가 띵해 오지만 싫지 않았습니다. 두 배우의 연기가 정말 대단했습니다. 끝까지 의자와 일회용 카메라, 탱탱볼 빼고는 나오지 않았던 소품들도 오히려 극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조명을 이용해 공간을 연출한 것도 좋았고, 뒤의 작은 스크린도 눈에 전혀 거슬리지 않고 적당했습니다. 극 중 처음이자 마지막 환복인 환자복은 무슨 의미일지도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모녀의 이야기는 단순히 극이 아닌, 제 이야기이자 제 언니의 이야기이자, 엄마와 이모의 이야기입니다. 이 극을 엄마와 보기로 한 것은 처음엔 단순히 집에서 저와 엄마만 문화생활을 즐기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보고 나니 엄마와 저의 다를 수도 같을 수도 있는 감상이 궁금해졌고, 그래서 엄마에게도 리뷰 한 건 작성을 부탁했습니다.

 

우리의 리뷰는 비슷한 듯 다릅니다. 우린 다른 사람이니까요. 이 시대의 엄마로서, 딸로써 쓴 글은 아닙니다. 모든 딸과 엄마를 대변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죠. 그저 한 명의 개인들으로써 쓴 글입니다. 연극이 마무리되고 대학로를 걸어가면서도 저흰 별다른 감상을 나누진 않았습니다. 분명 같으면서도 다른 것을 느꼈겠지요.


하나의 새가 지고, 또 다른 새가 날개를 펼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임에도 애써야 하는 일입니다. 세상의 모든 새가 공평히 하늘을 나눌 수 있는 순간을 기대하게 됩니다.


 

[한승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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