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질서라는 '근원'을 무너뜨리는 방법 - 도서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

분석철학과 '비엄밀함'의 만남
글 입력 2020.08.25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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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로티의 사진.

 

 

 

1. 세계가 분해된다면



세계가 분해된다면, 분해된 세계에서도 윤리와 법규의 가치는 유효할까. 우리는 이 세계가 질서로 가득하다고 믿고, 그 질서가 우리를 사회라는 곳에 투입하기 위한 준비 단계라고 생각한다. 한 사회의 규범이나 공동체적 가치는 우리에게 너무 당연하게 주어진다. 그렇다면 우리가 더는 이 세계에 살아갈 수 없다면, 사회에서 벗어나게 된다면, 그때도 질서라 여겨졌었던 모든 것들이 ‘인간’인 우리를 통제할 기준으로 작용할 수 있겠는가. 이에 의문을 가진 사람들은 많았다. 주로 철학자들처럼 인간을 탐구하는 사람들이 그래왔다. 의문에 대한 답 역시 많았다. 답의 구체적인 형태들은 달랐지만, 공통점은 존재했다. “유효하지 않고, 오직 던져진 인간만이 남을 뿐이다.”

 

분해가 되지 않더라도 그들은 규율에 담긴 보편성을 의심한다. 근원이라는 가치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인다. 대체로 그것을 거부하기까지에 이른다. 대중에게 비교적 친숙한 철학자인 사르트르가 그 예시다. 그에게 인간은 자기로 존재하기 위해 끊임없이 싸우는 존재다. 세계의 모든 요소들과 ‘나’인 자아는 매번 경쟁과 대결을 벌인다. 나인 자아는 자아성을 유지하기 위해 내가 아닌 나머지와의 싸움에서 승리해야 한다.

 

사르트르가 유독 투쟁적인 편에 속하지만, 니체나 하이데거, 실존주의 지향의 철학자들이 대체로 비슷한 성격을 공유한다. 일단 내가 먼저다. 나를 인간답게 하는 요소들로 통제하려는 세계에서 거리를 확보하려고 한다.

 

 

 

2. 아이러니스트(Ironist): 전제된 보편성으로부터의 탈피


 

 
“자유주의 사회란 힘이 아니라 설득에 의해서, 혁명이 아니라 개혁에 의해서, 그리고 새로운 관행을 암시하는 제안들과 현재의 언어적 관행들 간의 자유롭고도 개방된 만남에 의해서 그 이념이 달성될 수 있는 사회이다. … 자신의 언어, 자신의 양심, 자신의 도덕성, 그리고 자신의 최고의 희망이 우연한 산물이라고 보며, 한때 우연하게 산출된 메타포가 문자화된 것이라고 보는 일이야말로 그러한 이상적인 자유주의 사회의 시민에게 적합한 자기정체성을 채용하는 일이다.” (3장, p142)
 

 

이런 철학자들의 결정적인 공통점은 ‘근원’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인간이라면 마땅히 준수해야 할 도덕법칙, 사회적 규율을 거부한다. 철학계에서 이들은 주로 근대 이후, 계몽주의나 이성주의를 거부하는 대륙철학자들이었다. 그 반대에는 분석철학으로 대표되는 분과 영역의 철학자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근원을 상정하고, 그것의 출발점과 존재 근거가 무엇인지 고민한다.

 

본 책의 저자 리처드 로티는 영미 분석철학계의 주류 인물이다. 그런데도 그는 보편성이라 일컬어지곤 하는, 인간과 세계에 ‘전제된 근원’을 인정하지 않는다. 언어적인 엄격함, 근원을 고수하는 엄격함에서 한 발 벗어난 저자는 인간과 세계를 묘사하는 과정에서 다소 문학적이고 모호한 서술을 택한다. 책의 핵심을 인간의 존재적 우연성을 역설하는 데에 둔 것이 그것이다. 또한, 우연한 존재로서 인간이 다른 인간과 연대를 형성하는 기제로 아이러니를 제시한다.

 

저자 리처드 로티는 사회적 목표, 규율의 틀 안에 개인을 빠뜨리려는 정치적 태도를 경계한다. 분석철학자인 그는 ‘시적 정신’에 주목한다. 이러한 정신은 개인을 고정된 존재성에서 해방시킨다. 주어진 원칙과 타당성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개념과 정의를 탄생하게 한다. 쉬운 말로 풀이하자면, 개인의 창조성을 발휘하게 한다. 그래서 문예(Literature) 영역에 적절한 정신이다. 리처드는 그러한 정신이 단지 예술계에 국한된 문예에서만 발휘되지 않는다고 본다. 인간이라면 삶을 살아가면서 ‘언제나’ 작동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문예적 인간으로 리처드가 제시하는 인간상은 ‘아이러니스트(Ironist)’다. 아이러니스트는 본질적인 것, 인간이라면 당연시해야 할 것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물려받은 마지막 어휘와 자신이 스스로 창안하려는 마지막 어휘 간의 대비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그렇게 무언가에 대해 반발하며, 의심해야 할 어떤 것, 꺼려하는 어떤 것을 매 순간 가지는 존재다.(4장, p190)

 

즉, 리처드 로티에게 아이러니스트란 전제된 보편성을 거부하는 사람이다. 이는 리처드가 생각하는 오늘날 현대인이자, 현대인들이 응당 “지향해야 한다”라는 말없이 받아들여야 할 ‘사실’이기도 하다. 그는 무언가를 목표로 설정하고, 설정의 근거를 인간의 본성이나 응당한 정언명령에서 가져오는 행위를 거부한다. 그것이야말로 인간답지 않은 행동이라 간주하는 듯하다. 그래서 리처드는 진정한 본질을 탐구하는 학문으로서 형이상학에 비판적으로 접근한다. 인간을 ‘자유로운’ 인간이도록 “규정”하는 본성, 특질을 찾는 행동 자체가 자유주의를 침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와 달리, 그가 제시하는 자유주의 아이러니스트들(Liberal Ironists)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할 법칙들을 “바탕으로” 무언가 목적을 만들고, 그것에 얽매이지 않는다. 보편적인 결과를 낳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내적으로 끊임없이 개인적인 투쟁을 지속할 뿐이다. 그들은 무언가를 선택하고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나가지만, 목적이나 목표의 형태로 인생을 고정시키지 않는다. 그렇기에 로티의 시선에서 자유주의 아이러니스트는 그들이 지닌 도덕적 숙고의 언어, 따라서 그들의 양심의 언어와 그들의 공동체의 언어가 우연하다는 감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3장, p143)

 

 

 

3. 우연한 인간, 그리고 아이러니


 

아이러니스트의 존재를 규명하며 저자가 동원하는 개념은 우연성과 아이러니다. 전자는 후자를 위한 선행조건에 해당한다. 리처드는 인간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것들이, 우연으로 매개돼 우연을 생산하는 순환 관계에 놓인다고 여긴다. 그에게 자유란 “우연성에 대한 인식”이다. 명료한 주장이다. 자연적으로 전제된 질서가 없다는 뜻이다. 자연적 질서는 리처드에게 습관화된 어휘에 해당한다. 이들에는 추가적인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검증이 이루어지더라도 전제적 지식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이뤄지기에, 실질적인 변화를 겪지 않는다.

 

인간 사회에서 이 어휘들은 곧 습관으로, ‘상식’으로 규정된다. 상식은 세계의 질서로 편입된다. 그리고 당위성이라는 성격을 부여받는다. 우연히 발견되거나 정립된 사실의 파편으로서가 아니라, 사회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따라야 할 당연한 규칙으로 탈바꿈한다. 그래서 아이러니는 상식의 반대편에 선다. 상식과 달리 아이러니는 대안적인 어휘여서다. 아이러니는 낡은 것과 결별하고 새로운 것과 유희하려는 시적 정신에서 나온다. 그래서 아이러니의 반대는 상식이다. 왜냐하면, 상식이야말로 중요한 모든 것을 아무런 자의식도 없이 자신과 주변 사람에게 습관화된 마지막 어휘로 서술하는 사람들의 표어이기 때문이다. (4장, p165)

 

저자의 주장은 유토피아적인 것에 가깝다. 그 자신도 자신의 말이 ‘자유주의적 유토피아’를 만들자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본문에서 인정한다. 우연성을 대두시키는 저자의 생각은, 생각 자체만으로는 그리 참신하지 않다. 서두에서 언급했던 대륙철학자들 역시 말의 형태만 다를 뿐, 인간을 규제하는 사회적 합의와 규약을 인간적 존재성 존립의 차원에서 거절했던 건 똑같다. 저자와 그들간의 차별점이 있다면, 저자는 그들과 달리 분석철학을 전공하면서도 문학성을 띤 대륙철학의 영역으로 지평을 넓혔다는 것 정도다. ‘분석철학자’로서 저자가 우연성을 매개로 살아가는 인간이, 상식에 대항하는 창조적 정신으로서 아이러니를 안고 내적 재정립을 반복한다는 서술에는 주목할 만하다. 바로 그 분석적 엄밀함을 일정 수준은 포기했다는 점이 드러나서다.

 

 

 

4. 최소한의 연대


 

 
“아이러니스트가 생각하기에 자신을 나머지 인류와 묶어주는 것은 공통의 언어가 단지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며, 특히 짐승들이 인간과 공유하지 못하는 특별한 종류의 고통인 굴욕에 대한 감수성이다. 아이러니스트의 개념에 의하면 인류의 연대는 공통의 진리나 공통의 목표를 공유하는 문제가 아니라 공통의 이기적인 희망, 즉 자신의 세계―그것을 둘러싸고 자신의 마지막 어휘를 직조해가는 사소한 것들의 세계―가 파괴되지 않을 거라는 희망을 공유하는 문제이다.” (4장, p199)
 

 

책에서 눈길을 끌었던 대목은 ‘연대’를 둘러싼 저자의 설명이다. 기본적으로 저자는 자유주의 아이러니스트를 옹호하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아이러니의 개념으로 인간 사회의 연대를 논한다. 리처드 로티에 따르면 아이러니스트는 ‘최대 연대’를 원하지 않는다. 개인에게 ‘보편적으로’ 제시되는 “인간적 연대”(Human Solidarity)는 내부에 본질적인 인간성이 다른 인간들 속에도 똑같이 현존함을 전제해야만 가능해서다. 다시 말해, 저런 차원의 연대는 우리가 인간이라면 ‘당연히’ 타인과의 공존에 힘써야 하기에 폭력이 최소화된 “연대”를 통한 평화를 이뤄 세계의 지속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논리를 공유해야만 가능하다. 인간성을 매개로 합리화되는 ‘최대한의 연대’인 셈이다.

 

리처드 로티가 말하는 연대감은 결국 최소한의 조건들이 빚어낸, 인간 사이의 연결로 귀결된다. 이는 필연적으로 어떤 유사성과 이질성이 우리에게 현저하게 느껴지느냐의 문제이고, 무엇이 현저하게 느껴지느냐는 역사적이고 우연적인 마지막 어휘의 기능 (9장, p390)이다. 미국인이라는 특성으로 그 이유를 논증하는 양상이 흥미롭다. 부당한 대우와 처벌에 시달리는 흑인들의 실상을 마주할 때, 여타의 미국인은 차별받는 흑인이 자신과 ‘인간’이라는 개체적인 특질을 공유한다고 해서 그들의 부당함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연대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연대를 외치는 진짜 이유는, 리처드의 설명에 따르면 그들이 자신과 같은 미국인이기 때문이다. 연대 표명의 대상이 “우리 중의 하나”라고 인식될 때, 사람들은 강력한 연대감을 느낀다. 그는 “인간이기 때문에”라는 설명이 단지 공허한 근원의식을 부추기기 위한 발언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이렇듯 인간성, 인간됨을 둘러싼 리처드 로티의 견해는 그리 독창적이지 않다. 하지만 마사 누스바움이 말했듯이 본 도서는 “철학과 문학 사이의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현재 영미계에서 각광받고 있는 분석철학은 말 그대로 지나치게 분석적이며, 문예비평을 필두로 발전하고 있는 대륙철학은 지나치게 난해하다. 리처드의 글은 그 가운데에 있다. 세계가 분해되지 않을 것이다, 혹은 분해될 가능성이 크다-라는 주장 사이에서, ‘분해된다면?’이라는 질문을 온건하게 던지고 있어서다.

 

 

[표지]우연성, 아이러니, 연대.jpg

 

 



[이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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