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살아있는 것들의 목소리 -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2020 [공연]

모두의 삶에 젊은 예술가들이 던지는 울림
글 입력 2020.08.25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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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가장 처음의 기억은 중학교 축제 때 연극 동아리에서 선보였던 동급생들의 무대였다. 어설프지만 열성을 다하며 대사를 읊고 과장된 표정과 몸짓을 선보이던 그 무대가 나에겐 무척 부담스럽고 어색하게 다가왔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잘 나서지 못했던 나의 콤플렉스 때문이었을까? 뻔뻔하게 무대 위에 올라 연기를 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반은 동경, 반은 질투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객석의 반응에도 연연하지 않던 어린 배우들의 모습에 도리어 무안해지기도 하면서 연극의 정서가 나와는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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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구 상암동 문화 비축기지에서 진행된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 2020>

 

 

시간이 흐르고 성인이 된 후 혜화 대학로에서 나름 인기 있던 연극을 관람하게 됐다. 약 2시간 동안의 무대를 보고 난 후  마치 직접 연기했던 배우들처럼 기진맥진해졌다.

 

몇 년 전 봤던 연극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다. 배우들의 대사와 연기에 공감 가기 시작했고, 그 순간이 만들어지기까지의 보이지 않는 땀들이 느껴져서 연극을 즐겼다기보다 오히려 고역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배우들이 전달하는 기쁨과 열정적인 에너지보다도 나는 커튼 뒤에 가려진 그들의 눈물과 현실을 보았다. 집에 돌아와 그 의미들을 곱씹어 보며 과장된 표정들과 자의식 과잉인 대사들이 부담스러웠다.

 

그렇게 또 한동안 연극의 세계를 외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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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날수록 감정이 점점 무뎌져갔다. 공감 받고 이해받고 싶지만 표현하는 방법을 몰라서 감추는 경우가 많다 보니 자아가 그만큼 축소되는 것만 같았다. 또 다른 나를 발견할만한 감정의 돌파구가 필요했다. 어색하고 과장되고 추해 보이더라도 감정을 감추는 것보다 어떻게든 표현하는 것이 나을 거라고 느껴졌다.

 

계속해서 피해왔던, 자유로운 예술가들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듣고 싶어졌다고 해야 하나. 지금이라면 연극의 풍경을 다르게 즐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새로운 감정의 확장을 위해 예술가들의 축제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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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들>을 연출했던

극단 갈피 배우분들과 제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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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각형 바퀴>에 출연한 배우분들

 

 

 

극단 갈피 - 남겨진 것들



두 남녀가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논쟁을 벌인다. 대화의 내용은 무척 진지하다. 한 쪽 천장에는 굵은 밧줄이 매달려 있고 그 밑에 의자가 놓여있다. '자살'을 주제로 인간이 왜 살아가야 하는지, 왜 누군가는 고통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던 극단 갈피의 <여관방>.

 

여관에 투숙 중이던 여자는 옆방에서 목을 매려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 여자는 매일 떠오르는 '해'를 그리기 위해 자신의 시력을 포기하고 남자는 인생의 의미를 되찾기 위한 방법으로 계속해서 자살을 시도한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결국엔 하나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인간이 '왜' 살아야만 하는가에 대한 문제. ‘나’라는 존재의 본질을 찾으려 애쓰는 청년들의 모습이 실감으로 와닿았다. 극단 갈피의 ‘남겨진 것들’이라는 무대를 통해 존재의 알아차림을 희망할 수 있었다.


뒤이어 이어진 연극 <다각형 바퀴>는 할아버지가 자전거 바퀴를 유산으로 남긴 후 집에 들이닥친 균열들을 그려낸다. 아버지는 유산을 지키려고 하지만 집 안에 알 수 없는 존재가 유령처럼 그를 위협하며 가족들에게 혼란을 안겨준다. 쓸모와 무 쓸모 사이의 경계 속 그가 끝끝내 지키려 했던 가치는 뭐였을까?

 

혼연한 가치들 사이에서 갈피를 잡고자 한다는 '극단 갈피'의 의미처럼 두 연극은 우리 삶의 일그러진 모습들을 통해서 잃어버린 가치를 질문한다. "당신의 인생이 오늘까지라면, 끝까지 지키고 싶은 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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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212 < 인곡: 종말 앞에서>

연극 시작 전의 퍼포먼스

 

 

 

스튜디오 212 - 인곡 : 종말 앞에서



천 개의 삶이 있다면, 천 개의 종말이 있다. 스튜디오 212의 <인곡: 종말 앞에서>는 6명의 인물이 각자의 종말을 앞두고 있다. 넓은 야외무대를 감싸는 음악을 배경으로 무대가 시작되었다.

 

시간이 멈춘 세상 속에서 마지막에 남은 인류인 A는 온몸을 다해 일그러지며 절규한다. 형태를 알 수 없는 방 안에 감옥처럼 갇혀있는 두 연인 K와 Y. 그들은 서로를 사랑했고 행복했지만 그 시간들이 쌓여 서로에 대한 원망, 인간에 대한 혐오로까지 변질된다. 사랑하는 B의 죽음을 앞두고 고통스러워하는 D의 몸짓. 그리고 홀로 전쟁에서 승리하고 혼자 남은 P. 그러나 그도 곧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모두가 병든 것처럼 보이는 세상, 그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가 무너지는 거대한 혼란에 자기만의 목소리로 화답한다. 그들이 고통받는 이유는 특별한 것들이 아니었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부딪혀야 할 그런 존재론적 아픔에 대한 절규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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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나는 이제껏 익숙하고 정해진 감정들만 허용하고 있던 걸지도 모른다. ‘나’라는 경계를 정해두고 그곳에서만 자아를 발견하려고 애쓰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모든 것들을 판단하고 예상하면서 자유로워질 거라고 믿었지만 사실은 무척 제한된 세상 속에서만 살고 있었다는 것을 예술가들의 목소리를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밉고 추해서 피하고 싶지만 결국엔 그것도 나의 모습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을 껴안기 시작할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을 긍정할 수 있다.

 

어색하더라도 자신의 감정을 받아들이고 낑낑대며 시행착오를 겪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닐까? 모든 불안과 고통 그리고 상실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나만의 목소리로 표현해내는 것, 그렇게 우리 모두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을 단련해나가야 한다고 믿는다.

 

자신의 영역을 펼쳐나가면서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이 시대의 젊은 예술가들을 동경하고 사랑하는 이유다.

 

 



[김지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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