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코로나 시대에서의 선택; 우리는 계속해서 나아갈 필요가 있다 [문화 전반]

글 입력 2020.08.22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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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선택을 마주한다.

 

일어날 시간을 선택해서 알람을 맞췄고 수 만개의 단어들 중에 하나를 선택해 누군가에게 첫마디를 건넸다. 작은 선택들이 모여 하루를 이뤘고 큰 선택들은 나의 지난 10년을 결정했다.

 

과거를 돌아보며 어떤 선택은 옳았고 어떤 선택은 틀렸다는 이분법적 판단을 쉽게 내리곤 하지만 과연 그것이 타당할까? 우리는 선택 하나하나에 대한 점수를 매길 수 있을까?

 

 

 

1. 우리에게 선택이란


 

수많은 경우의 수 안에서 결정해야 하는 사람들은 더 적게 가지고 살던 과거보다 더 큰 불안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다. 선택지가 많다는 사실은 자신을 질책할 이유 또한 훨씬 다양해졌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방법이 많은데, 왜 나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을까"하며 의지에 대한 책임을 쉽게 묻는다. 방법이 많다고 그 험난함이 사라지거나 길이 짧아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선택에 관한 한 미국 심리학 연구를 본 적이 있다. 첫 번째 그룹은 6개의 잼과 초콜릿 중 하나를 골랐고, 두 번째 그룹은 30개의 잼과 초콜릿 중 하나를 골랐는데, 전자가 본인들이 고른 잼과 초콜릿에 훨씬 만족했다고 한다. 다양한 분야에 적용해도 결과는 같았다. 이 연구가 시사하는 바는 사람들은 선택지가 적을 수록 더 큰 만족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반대로 말해, 많은 선택지가 더 큰 만족감과 행복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30개의 선택지에서 1개를 골랐다는 것은 남은 29개를 포기했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남은 29개를 알고 있는 첫 번째 그룹의 사람들은 5개의 선택지를 포기한 이들보다 후회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수백만 가지의 효과적인 공부법,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 살 빼는 법 등 키워드만 검색해도 쏟아지는 정보들. 이 선택지 앞에 선 우리는 만족감보다는 후회에 더 집중하게 될지 모른다.

 

넘쳐나는 선택지들은 곧 짐으로, 그리고 두려움으로 변모한다.

 

 

 

2. 코로나 시대의 선택


 

모든 것이 멈춰버렸던 지난 3월, 어떤 미래도 계획할 수 없었던 때 대체 무엇이 옳고 그른 선택인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전 지구적 상황 앞에서 오랫동안 투자해온 선택지들이 하루아침에 실패로 판명 나는 경험을 했고 이는 오로지 나의 의지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정부의 결정이 일상에 즉각적인 영향을 끼쳤고 누군가의 왜곡된 신념이 우리의 계획과 기대를 단숨에 무너뜨렸다. 후기 없이 살아가기 힘든 현대인을 위한 선행하는 케이스, 샘플, 코로나 리뷰 따위 없었다. 이때까지 해 온 대로란 철저하게 불가능해진 시점에서 이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스스로의 선택에 다시 기대를 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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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무엇이 옳은 선택인가?


 

사람이라면 평생 마주할 질문이다.

 

대부분의 선택은 그 순간엔 옳다. 어떤 선택이든 나의 삶과 행복을 위한 최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달 뒤, 1년 뒤에도 여전히 그 가치가 유효한지 떠올려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우리의 선택과 의지는 생각보다 취약해 외부 상황에 의해 좌절되기 쉽다. 그럴 때마다 선택에 대한 책임을 묻고 '실패'라는 미시적 낙인을 찍어버리면 앞으로의 선택에 대한 기대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We need to accept that we won’t always make the right decisions, that we’ll screw up royally sometimes – understanding that failure is not the opposite of success, it’s part of success.” - Arianna Huffington

 

우리는 우리가 항상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가끔은 아주 훌륭하게 실패할 수도 있지만 그 실패가 성공의 반대는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실패 또한 성공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도 말이다. - 아리아나 허핑턴

 

 

여기서 에픽테토스의 윤리학의 ‘prohairesis’라는 개념에 대해 언급하고 싶다. ‘prohairesis(선택)’는 인간의 정신적 능력, 의식, 성격, 판단, 목적, 욕구 등의 견지에서 '인간'이 어떠한가를 말하는 것으로서 우리의 본질적 자아를 뜻한다.

 

사람들은 종종 이러한 본질적 자아와 다른 외적인 것들을 혼동한다. 관계, 물건, 정치적 권력 등 내가 잠시 소유하는 것들과 '나' 자신을 동일시하고 이것이 온전한 나의 선택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믿는 것이다. 이렇게 수립된 자존은 외부의 자극에 의해 흔들리는 전적으로 상대적인 가치이기에 언제나 불안과 실망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기 위해선 개인적 의지 바깥에 놓이는 것들로부터 탈피해야 한다고 말한다.

 

선택과 결과는 완벽한 인과관계가 아니기에 둘의 영역을 잘 구별할 필요가 있다. 의식적, 무의식적 선택은 곧 나의 가치관을 대변하지만, 손에 쥐어지는 것은 결과기에 과정은 아쉽지 않은 과거로 여겨지기 쉽다. 어느 날 과정은 통째로 삭제시키는 '결국'이라는 말이 섬뜩하게 느껴진 적이 있다. 나이 혹은 현실을 핑계로 '결국', '어차피'와 같은 말 하나 대충 던지면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리는 건 어렵지 않다는 거지. 이러한 부사들은 나와 남의 삶에 마구 휘두르기 전에 잠시 망설여야 할만큼 잔인한 결과 중심적 잣대라고 생각한다.

 

결과는 남에게 관심 없는 현대인들을 설득할 좋은 수단이자 인생에 있어 다음으로 나아가는 문이기에 분명히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결과보단 과정을 사랑하라는 말이 지루한 도덕 교과서같이 느껴질 수 있지만 선택의 과정 속에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4. 선택은 과정이다.


 

선택은 맞고 틀린 한 장의 시험지가 아니라 하나의 선으로 이루어진 흐름이다. 시험지는 정답이 존재하기에 맞고 틀림이 불변하지만, 실은 유연하게 탄력을 받아 올라갈지, 조금 내려갔다 다시 올라갈지 그건 아무도 모른다.

 

점수 매김으로 끝나는 숙제가 아니기에 결과에 심취하지 말고 계속해서 선택해나갈 필요가 있다. 선택이 이 모든 것을 결정해나가는 파노라마의 한 컷이라고 생각해보자. 선택의 순간을 계속 마주하게 될 것이고 무엇이 나올지 모르지만 어쨌든 우리는 선택해야 하지 않는가.

 

코로나 이후 이전을 돌아볼 시간이 갑자기 불어나면서 무의미한 점수 매김을 반복했다. 하지만 곧 소처럼 되새김질하는 생각들은 아무 변화도 가져오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10을 간신히 만들어도 외부의 이기적인 행위로 인해 다시 0이 되어버리는 허무함 속에서 직접 개척한 몇 개 되지 않는 선택지에서 가장 큰 만족감을 취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불확실함이 때로는 새로운 시도를 의미한다. 이 예측할 수 없는 세상을 어떻게 써먹을지 생각해보자. 비온 뒤에 땅이 굳듯이 더 단단해질 미래를 기대해봐도 되지 않을까?

 

 

[정다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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