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패션브랜드에서 ‘새드스마일’ 프로젝트 및 팝업스토어를 전개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옷보다는 마스코트인 울고 있는 스마일 이모지가 눈에 들어왔다.
영원히 웃고만 있을 것 같던 스마일 이모지가 눈물을 흘리다니, 모순적인 모습이 신선했다. 샛노랗게 밝은 얼굴 위에 애매하게 진동하는 미소, 그리고 마스카라가 번져 떨어지는 듯 눈에서 주르륵 흘러내리는 검정 물. 괜찮아? 라고 묻고 싶어지다가도 그냥 혼자 내버려두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강렬한 이미지다.
새드 스마일은 “본격 전국민 눈물 장려 프로젝트”를 표방한 캐릭터이다. 눈물을 참거나 혼자 몰래 우는 이들에게 ‘당신의 건강한 눈물을 응원한다’라는 의미를 담아 기획했다.
[네이버 블로그 디자인프레스 - 성수동 ‘새드 스마일’ 집들이 오실래요?]
건강한 눈물이라는 게 틀린 말도 아닌 것이, 눈물을 쏟으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배출된다는 연구 결과는 이미 잘 알려졌다. 실제로 눈물을 잔뜩 게워내고 나면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윙윙 돌던 마음이 잠잠히 떠오르는 느낌을 받은 적이 많다.
내가 어렸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밥 좀 빨리 먹어’ 다음으로 ‘그만 좀 울어’였다. 무섭고 서러운 게 많았었던 것 같다. 아니, 태어날 때부터 울음이 타고난 것 같다. 갓난아기 때도 너무 울어서 솔직히 머리가 깨질 뻔했다는 말을 엄마가 지금까지도 종종 꺼내곤 하니까 말이다.
이렇듯 다른 사람보다 유서 깊은 울기의 역사를 통해서 울음이 터질 것 같을 때 하기 좋은 딴생각 모음, 눈물이 찔끔찔끔 날 때 안 운 척 눈으로 삼키는 법, 추하게 콧물 나오는 것 슥삭 해결하기 등의 퀘스트를 섭렵한 후 이제는 건강한 눈물의 의미를 알고 적절히 울면서 – 줄어든 눈물의 양만큼 무뎌진 감정과 함께 - 살아가고 있다.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울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우는 것이 힘들다.”, “마지막으로 운 것이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눈물이 안 난다.” 나와는 정반대의 모습에 신기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가장 먼저든 생각은 ‘울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유’였다. 가장 큰 이유는 ‘감정평가’ 때문인 것 같다. 감정을 행동으로 실행하지 않는 이상 개인의 감정은 생각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내가 울면서 들었던 말 중 가장 싫어하는 것이 ‘얘는 눈물로 해결하려고 하네.’라는 말이었다.
이런 말은 국민 앞에서 위선의 눈물방울을 살짝 떨구는 공인들에게나 적합하지, 몇 명 아는 사람도 없는 소시민에 갖다 붙일 말은 아니다. 눈물을 참으려고 온몸의 감각을 끌어들여 노력하는데도 비질비질 새어 나오는 울음을 일컬어 싸잡고 폄하하다니! 그땐 더 참기 힘든 억울함이라는 감정이 솟구친다.
현대사회에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조롱거리가 된다. 과거 눈물 셀카를 조롱하는 듯 놀림거리로 사용하는 밈도 유독 최근에 와서 생긴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눈물을 찍어 올린다는 행위가 조금 과하긴 했지만, 한 치의 빈틈을 허용하지 않는 요즘의 인터넷 문화를 살펴보다 보면 차라리 ‘싸이월드 감성’이 그리워질 때도 있다.
절대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는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그냥 눈물을 흘린다면 부끄럽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 것 같아. 눈물을 흘리지 않아서 지금 나에게 부정적인 감정이 쌓였는지 아니면 알아서 사라졌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자주 우는 것이 잘못이 아니듯, 절대 울지 않는 것도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절대 울지 않는 사람들이 원래부터 그랬던 것인지, 외부나 사회가 그들을 울지 않게 만든 것인지는 우는 사람, 울지 않는 사람 모두가 함께 알아보면 좋을 것 같다.
민트초코의 상쾌한 맛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 맛을 한 번쯤 권유하고 싶은 마음이 들 듯, 시원하게 눈물을 뱉어내고 진정된 가슴으로 내쉬는 가뿐한 한숨을 울지 않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