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유배된 시간의 의미를 찾아서, '여름날' [영화]

글 입력 2020.08.19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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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포스터.jpg

 



달라진 유배



영화 소개 글 중 단연 나를 사로잡았던 것은 '유배'라는 단어였다. 유배는 현대 사회와는 지극히 어울리지 않는 말인데 요즘에는 가능해졌다는 것이 영화가 전달하려는 메시지에 의도치 않게 시의성을 부여해준 것 같아서였다.


조선 시대의 유배는 반역이나 역모죄가 있는 죄인을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로 고립시키는 것이지만, 이는 때로 학자들에게 성찰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창작욕(?)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로 정약용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가 유배된 동안 실학의 산실이라 할 수 있는 책들을 500여 권이나 써내며 후학을 양성할 줄 누가 알았을까.

 

방식과 모습은 달라졌지만 현재의 유배도 이와 닮은 면이 있다. 정체되어 있는 시간 동안 조용히 흘러간다는 본질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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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점은 죄인이 유배되는 것이 아니므로, 스스로를 고립시킬만한 상황이나 본인의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상적인 공간을 벗어날 공간과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하고 외부와의 연락을 잠시 멈출 용기가 수반되어야 한다. (굳이 용기라 표현하는 것은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서 자신을 단절시키는 두려움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와 달리 기술이 너무 발달된 환경은 때로 개인을 옭아매는 경향이 있지만, 온라인 환경에서 로그아웃만 한다면 놀라우리만치 주변이 조용해져 오히려 단절이 더 쉬워진 면도 있는 듯 하다.

 

**

 

'누구에게나 유배된 시간이 있다'

견디기 힘든 순간 찾아온 그 계절,

마음 둘 곳 없는 이 시대의 모든 청춘을 위한

영화 <여름날> 8월 20일 개봉 확정!


‘승희'(배우 김유라)는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 거제도에 내려왔지만 남겨진 것은 엄마의 빈자리뿐이다. 짐을 정리하는 '승희'는 돌아가신 엄마의 스웨터를 만지며 그리움을 느낀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도 마음 둘 곳 없는 '승희'의 쓸쓸한 표정은 고독한 시간을 보냈던 모든 이들의 공감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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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익숙한 일상 속에서 새로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낚시를 하러 간 '승희'는 '거제 청년'을 만난다. '거제 청년'은 낚시를 도와주고 고려 왕 유배지였던 '폐왕성(둔덕기성)'을 승희에게 소개해주기도 한다.

 

그들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자신처럼 고립되어 있는 폐왕성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누구나 언젠가 지나쳐야만 하는 유배된 시간과 만난다. 그 시간을 견뎌낸 '승희'는 한 걸음 나아갈 힘을 얻는다.

 

메인 포스터는 서정적이면서도 푸르른 여름 비주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하얀 프레임 안에 거제도 풍경과 산책하는 승희의 일상을 담백하게 담아내었다. 다시 나아가기 위한 쉼표의 공간이 되어주는 거제의 푸른 밭길과 그 길을 따라 걸어가는 '승희'의 모습이 조화를 이루며 비록 지금은 고독한 유배된 시간을 맞이했지만, 더 나아갈 희망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유배된 시간이 있다'는 카피와 '견디기 힘든 순간 찾아온 여름날'이라는 태그 라인을 통해 승희가 맞이한 여름날을 기대하게 한다.

 

 

 

승희의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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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영화에서는 서울에 살다 고향 거제도로 돌아온 승희의 유배된 시간에 대해 다룬다. 유배라는 거창한 단어를 쓰지 않아도 여름날 속의 승희에게는 생각보다 쉽게 감정이입을 할 수가 있었다.

 

여름이라는 지금의 계절, 비슷한 또래의 승희가 겪을 감정이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 같았다. 상경 후 7년간의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는 아마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것 같은 방황의 감정, 시끄러운 속내를 타인에게 쉽게 내비칠 수 없는 복잡한 고독이 일상을 둘러쌌을 것이다.

 

엄마의 빈자리와 청춘의 불안 두 가지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심정은 영화의 조용한 분위기와 대비되어 더 두드러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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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기획안만을 가지고 배우와 감독의 상의를 통해 즉흥연기로 촬영되었다는 것은 그래서 별로 놀랍지 않았다. 대사로 중심이 되는 사건이 진행되는 작품이 아니라 배우가 인물을 연구한 시선이 그대로 장면에서 묻어났다.

 

뒤돌아 있는 장면이나 밤에 마을을 거니는 장면, 먼 거리에서 인물이 아주 작게 나타나는 롱 테이크에서도 앞서 말한 여러 감정들이 계속 보였다. 특별히 다음 단계로 눈에 띄게 발전하지 않고 나열되는 감정선이 조금 지루하긴 했지만 영화와 잘 어울렸다.




여름의 거제도, 유배된 시간



인물을 그저 관찰만 하는 듯한 구도의 장면들, 대사 없는 화면의 연속은 원래 취향은 아니지만 거제도의 아름다운 여름 풍경이 계속해서 영화를 보는 동력이 되었다.

 

필자의 고향과 비슷하게 농촌과 어촌이 공존하는 섬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들에 공감했고, 새로울 건 없지만 반가운 풍경들에 지나간 유년기가 자연스레 떠오르기도 했다. 왜인지 떠나간 다음에야 훨씬 더 그리워지는 여름이라는 계절의 기억을 붙잡고 싶다면, 한번쯤 보길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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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유배된 시간이 다르고 존재하는 공간과 처한 상황은 모두 다르겠지만 잠시 자신이 멈추고픈 공간에 주인공 승희를 대신 세워놓고 간접적 고립을 경험해보시길. 코로나 시국으로 단절된 시간이 많아진 요즘, 우리들의 유배가 지루함만이 아닌 조금 다른 감정과 성찰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유배'라는 독특한 감성으로 계절·공간·인물·감정을 섬세하게 엮어낸 <여름날>은 고려 왕 유배지 '폐왕성(둔덕기성)', '낚시' 등 거제도의 공간과 소재를 살려 어디에도 마음 둘 곳 없는 청춘들의 거쳐 가야만 하는 '유배된 시간'을 그려냈다. 청춘을 보내고 있는, 청춘을 지나온 모든 이가 공감할 수 있는 인생의 한 계절을 담아내어 공감과 희망을 선사할 예정이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의도치 않게 각자의 자리에 유배된 이 시대의 모든 이들에게, 더 나은 계절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전달하고자 한다.

 

- 영화 소개글 中

 

 

 

여름날

- Days in a summer -

  

 

감독/각본

오정석

 

 출연

김유라, 김록경

 

장르

드라마

 

개봉

2020년 08월 20일


등급 

전체관람가


상영시간

82분



[차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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