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생긴 일] 학교에서 일하다

글 입력 2020.08.18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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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학하고 전무후무한 전염병으로 아르바이트 자리가 귀해져 고민이 많았다. 휴학의 목표는 정말 쉬는 데에도 있기는 했지만, 목돈을 마련하기 위한 장기 아르바이트에 있기도 했다.

 

다행히도 학교 홈페이지에서 근로장학생 공고를 보고, 비교적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많은 이들이 대학 생활 중 꼭 해봐야 할 것으로 꼽는 만큼, 새로운 경험을 할 생각에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차 출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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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시간은 책을 읽으며 보내기는 했다.

 

 

학생이 아닌 노동자로 다른 학생들을 대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특히 외국인 학생들을 대하는 일이다 보니, 소통이 어려운 경우가 왕왕 있었다.

 

주된 업무는 전화 응대와 이메일 답장, 그리고 학생들과 관련된 행정 업무였다. 찾아오는 학생들에게 같은 것을 반복해서 설명해야 하는 것에는 생각보다 거부감이 없었지만, 문제는 무례한 사람들이었다.


다짜고짜 전화로 소리를 질러대는 이들이나, 젊은 학생이 전화를 받는다고 반말부터 하고 보는 사람들이나,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화를 내는 이들 때문에 힘이 쪽 빠져 퇴근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첫 3개월은 이른바 ‘진상 고객’이 있어도, 잠시 불쾌해 한 후 떨쳐버리면 그만이었지만, 점점 일이 늘어나면서부터 나를 잃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저 시스템의 대변인에 불과하고, 누구도 나를 사람으로 대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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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의사결정과정을 가까이서 보고 답답하다고 느낄 때도 있었다.

 

코로나 19의 전 세계적 확산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도 원칙을 고수하며 학생들의 편의를 봐주지 않는 학교의 입장이 지독하게 싫었다그 원칙을 설명하고 온갖 욕을 들어야 하는 것은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아니라 나였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개인 시간을 충분히 가지며 일해도 이 정도인데, 직장 생활을 하는 이들은 훨씬 더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처음 생각했던 여유로운 휴학과는 거리가 먼 6개월을 보냈지만, 그래도 분명 배울 점도 있었다. 우선 나의 업무 스타일이나 타인을 대하는 태도를 객관화하여 관찰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일찌감치 ‘외국인 학생들이 모든 설명을 한 번에 이해할 것’이라는 기대를 포기하고, 마치 초등학생을 가르치듯 학생들을 상대했던 동료와는 달리, 나는 늘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정보를 이해하고 수집하기를 바랐다. 내가 하는 일이 옳고 당연하다 여기는 성격이 드러난 부분이라 볼 수 있다.


또한, 처음에는 일상과 일을 분리하는 것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막상 일이나 통근 과정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일상에까지 꽤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을 느꼈다. 2030 젊은 직장인들이 부르짖는 ‘워라밸(Work Life Balance)’이 무엇인지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갔을 때도 영어 실력을 더 키워보고 싶어 교내 케이터링 아르바이트에 지원했다. 물론 합법적으로 사회보장번호(미국의 주민등록번호 같은 것)를 받고 세금도 내는 일자리였다. 국내에서는 경력이 없으면 뽑히기도 어렵고, 과외를 줄곧 해오던 나에게는 노동 강도보다 시급이 너무 낮다고 생각해서 요식업 아르바이트를 피해 왔다. 물가도, 인건비도 우리나라에 비해 비싼 미국에서 스스로 용돈 벌이를 해보기에 이보다 좋은 기회는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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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 셔츠와 검은 바지,

검은 운동화를 신고 일해야 했다.

 

 

지난 에세이에서 잠시 언급한 것과 같이, 케이터링은 학교 내의 각종 행사를 진행하는 강당 및 회의실에 뷔페나 간단한 간식을 준비해주는 아르바이트였다.

 

작게는 10인 미만의 워크숍부터 크게는 200명이 넘는 풋볼팀 졸업반 파티까지, 뷔페 음식을 세팅하고 치우는 일을 했다. 수업시간에 따라, 행사 일시에 따라 매주 시간도 달랐고, 함께 일하는 팀원도 달랐다.


>>지난 에세이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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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뷔페를 준비하는 날은

이렇게 새벽에 출근하기도 했다.

 

 

교내에서의 아르바이트는 중서부 사람들의 친절함을 가장 많이 느낄 수 있었던 기회기도 했다. 큰 실수를 했을 때도 진심으로 괜찮다며 위로해주는 학생들과 스태프들의 넓은 마음을 닮기 위해 노력했다. 아르바이트생에 불과한 내게 정중하게 이런저런 것을 부탁하고 고마워하던 고객들을 볼 때는 피로가 가시는 기분이었다.


또 학교 내의 다양한 행사와 미국의 문화를 체험해볼 좋은 기회였다. 뷔페 음식을 준비할 때마다 비건 옵션, 락토 프리 옵션, 글루텐 프리 옵션 등 세심하게 식성을 배려하는 것도 신기했고, 행사의 콘셉트에 맞게 음식을 배치하고 서빙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행사는 아메리카 원주민 출신 작가의 출판기념 행사였는데, 그 덕분에 참새고기, 물소 미트볼, 푸른 옥수수빵 등 특이한 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4개월, 6개월 정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분명 내 힘으로 돈을 버는 일은 새로운 세계를 체험하게 했다. 특히 학생이 아닌 노동자로 학교에 다녀보니 새삼 학교 내 노동자의 고충을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이제 학생 신분을 가지고 살아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학생으로서 일하는 경험은 더욱 소중한 경험이 된 것 같다.

 

 

[김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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