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생긴 일] 내가 미국에 온 이유

글 입력 2019.10.22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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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교환학생으로 온 지 어느덧 두 달이 다 되어 간다. 모든 일이 그렇듯, 시작은 두려움에 가득 차 있었지만, 이제는 다시 나의 생활 리듬을 되찾았다. 사실은 모든 것이 너무 한국에서의 생활과 비슷해져서 이럴 거면 왜 미국까지 왔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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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아하는 도서관

 

 

영어로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고, 책과 논문을 읽고 있기에 한글로 된 글을 읽을 일이 거의 없다. 한국에 있지 않으면서 한국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쓰자니 어쩐지 기억도 잘 나지 않고, 이야깃거리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신나서 울분을 토해냈던 한국에서의 글과 달리, 억지로 쥐어짜서 글을 쓴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적어도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은 한 달 주기로 연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3학년 2학기, 하필 이 시기에 하필 미국에 오기로 선택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전공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심리학의 철학적 근원은 유럽에 있지만, 심리학이 현재처럼 과학적인 학문의 특성을 갖게 된 데에는 미국의 영향이 가장 크다. 또 현실적으로 심리학이라는 전공을 살린 직업을 갖고자 한다면 대학원에 가는 것이 필수적이고, 특히나 심리 ‘학자’가 되려면 미국에서의 유학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더욱 다양한 분야의 심리학을 접해보고 싶기도 했다. 수많은 분과 학문이 있는 심리학의 특성상, 4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같은 학교에서 다양한 학문을 접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학교마다 교수진에 따라 주력하는 분과학문과 커리큘럼이 다르기도 하고, 수강신청 체계 역시도 문제가 있다. 나의 경우 범죄심리학 과목을 꼭 한번 들어보고 싶었는데, 그럴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은 미국의 법체계, 사회 안전망을 다루는 심리학 수업을 듣는 중이다.

 

당연히 영어 실력을 높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수능으로 훈련된 읽기보다는 일상적인 소통을 많이 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기대한 만큼 영어가 늘지는 않았다. 단순히 교수님의 강의와 친구들의 말을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대신 몰라도 당당하게 물어볼 용기는 얻었다. 이곳에서는 모르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처음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용감해질 수 있다. 사실은 이것이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 완전한 문장으로 말할 수 없어도, 몇 번씩 되물어도 괜찮다는 너그러움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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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를 찾고 지난주에 다녀온

시카고 다운타운

 

 

첫 한 달은 정신없이 지나갔다. 수강신청 문제, 아파트 집세 문제, 아르바이트하기 위한 각종 서류 작업과 그만두기 위한 절차까지 온전히 혼자 발로 뛰며 해결해야 했다. 나의 의사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까 두려워서 잠을 설친 적도 많았고, 부모님과 영상통화를 하다가 엉엉 울어버린 적도 있었다. 눈을 뜨면 다시 형광등이 있는 한국의 내 방 침대이기를 바랬다(이곳에는 방 천장에 형광등이 없다).


그래도 걱정한 만큼 외롭지는 않았다. 이곳에 와서 느낀 것은 내가 생각보다 혼자서 하는 것들을 무척 좋아한다는 것이다. 덕분에 외국인 친구를 많이 사귀겠다는 결심은 이미 흐려진 지 오래다. 혼자 있으면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할 수 있는지,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를 더 잘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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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자주 해먹는 파스타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간단한 요리들도 할 수 있다. 요리 한번 해 본 적 없다던 친구가 교환학생에서 돌아온 후 한식 요리사가 되었다던데, 왜 그런지 알 것 같다. 사실 오고 나서 한 달간 한식을 먹지 않았다. 원체 집에서도 늘 밥 대신 빵을 먹어서 그다지 한식이 그립다는 생각이 들지 않기도 했고, 한식 재료를 사려면 꽤 먼 거리를 가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끼 연속으로 느끼한 음식을 먹다 보니 결국 한계에 봉착해서, 고추장과 김치를 사 오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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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세팅한 뷔페 음식

 

 

아르바이트에도 도전했다. 한국에서는 많아야 일주일에 7시간 정도 과외만 했던 내가, 일주일에 10시간씩 뷔페 음식을 차린다. 검은 바지와 신발, 흰 셔츠에 나비넥타이까지 복장을 갖추고, 초대형 커피 추출기로 커피를 내리고, 음식을 쟁반에 옮겨 담는다. 남은 음식을 먹기도 하고, 커피도 마음껏 마실 수 있다는 것이 이 일의 가장 매력적인 점이다. 매일 다른 이벤트를 위해 준비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나를 소개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이곳에서 한국어를 강의하시는 교수님께 연락을 드려서, 한국어 초급 강의를 듣는 학생 2명을 멘토링해주고 있기도 하다. 나름대로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문법을 열심히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모국어가 한국어가 아닌 학생들에게 영어로 한국어로 가르치려다 보니 어려운 점이 많다. 나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발음이나 규칙까지 궁금해하는 학생들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의 계단 입구에는 세계지도가 붙어있었다. 두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아주 좁은 계단과는 어울리지 않게, ‘The world you desired can be won’이라는 용감한 문구가 쓰여 있었다. 늘 그 어색한 조합을 고등학생 특유의 비관적인 시선으로 비웃곤 했다. 아무리 ‘세계로 나간’ 잘난 선배들이 와서 이야기해도 고등학교 이후의 미래는 잘 상상이 되지를 않았다. 그랬던 내가 벌써 두 달 째 미국에서 살고 있다. 고작 한 학기, 다른 나라의 학교에 다니는 것뿐이지만 매일 조금씩 새로운 일에 도전하며 점점 나의 미래를 그려갈 것이라 기대해본다.

 

 

[김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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