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서 가만히 앉아 수업을 듣는 날은 다 지나갔다. 내 신분이 학생에서 벗어난 후로 ‘수업’이란 단어가 낯설면서 괜한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학교와 수업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면서도 개인적인 생각이었지만 여전히 변함이 없던 건, ‘학교가 교과목 수업보다 실생활의 정보를 알려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중에 ‘감정 수업’도 포함이었다. 초, 중, 고 학생들을 잠시 관리하며 그들만의 울타리 안에 잠깐 몸담았던 그때에도 느꼈었다. 아이들은 마냥 어른들이 생각하는 개구쟁이 아이가 아니라고.
만만치 않게 많은 그들만의 걱정과 트러블, 친구들과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기에 자신의 감정에 대해 가만히 쳐다보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그저 부디 그 아이들이 덜 상처받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였고, 어린 나 역시 그런 시간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 때문도 있다.
어쨌든, 오늘은 어릴 적 못다 한 수업을 몰아 듣는 날이라고 생각하려 한다. 쉽고, 무난하게 읽히는 한 권으로 책으로.
가만히 들어주기, 조용히 끄덕여주기
내 옆에 있는 사람이 힘든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하면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때의 감정에 귀 기울여주세요. 판단이 일지 않습니다. 비판이 아닙니다. 동정이 아닙니다. 공감은 마음을 함께해주는 것입니다. /78p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이다. 그동안은 ‘잘’하는 행동인지 몰랐다. 이 책을 읽기 전, 친구에게 어떤 말을 듣기 전까진 말이다.
흔히 말하는, ‘말발’이란 게 없던 나에겐, ‘가만히 들어주기’란 ‘말하기를 회피하는 방법’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몇 마디보다는 한마디의 말, 한마디의 말보다는 한 마디의 한숨이 더 위로된다.”는 문장을 오피니언에 기고한 적이 있다. 써놓긴 했지만, <한 마디의 숨으로 위로받았던> 경험이 적었기에, 써놓고 흘린 문장이었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위로받았다기보다는 위로해줬던 방법이었기에 문장으로 쓰게 된 건지도 모른다. (앞서 말했듯, 말하기를 회피하는 방법이었긴 하지만 말이다)
슬퍼하는 친구를 향해 어떤 말을 해야 위로가 될까 고민하느라, 친구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해 할 줄 아는 말이 없어서 생겼던 <그 조용한 공백>을, 내 친구는 ‘넌 그냥 듣고 있어 줘서 좋아, 편해.’라고 말해준 순간, 이 책의 문장이, 내 오피니언 속 문장이, 그동안의 내 행동이 아예 의미가 없진 않았구나,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 수도 있구나 하는 걸 느끼고 깨닫게 되었다.
사소한 말이었지만, 그 말을 듣고 며칠 동안 꽤 행복했다. 책 <그림책으로 읽는 감정 수업>에는 그 친구처럼 감정의 설명에 솔직할 것도 함께 고한다. 고맙다, 사랑한다, 미안하다는 말. 나 역시 그 친구가 좋은 이유가 감정 표현에 거리낌이 없기 때문이다. 고마움을 느끼고, 제대로 된 사과를 하는 사람이 멋있다고 느낄 수 있었던 것도 그 친구 덕분이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을 한 때 “내 친한 친구”라는 범주 안에 들이고, 혼자 속 썩이고 보니 더욱더.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내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나는 어떤 모습일까?’ 246p
친구와의 일화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까지 이끌었다. 질문을 먼저 생각한 건 아니지만, 그냥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들의 행복을 빌고 서로 응원해주는 삶, 그 당사자가 나라는 게, 나를 통해서 누군가가 그냥 좋다면, 그것만으로도 괜찮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거 하나만이래도, 인생 참 잘 살았다 어디 가서 자랑해도 괜찮을 것이라는, 뭐 그런 생각 말이다.
마지막 순간에 무엇이 되었든, “좋은 사람들과 잘~ 놀다 갑니다.” 생각할 것 같다. 도서 <그림으로 읽는 감정 수업>은 나를 위해, 너를 위해, 모든 이들의 ‘자기 사랑’을 응원한다. 개개인의 삶을 응원한다. 동화에서 감정이라는 요소를 끄집어내서 우리에게 적용해나가는, 쉽고, 순하게, 토닥여주는 도서였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세요.
당신은 그 자체만으로 가치 있는 존재입니다. /28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