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다시 한번 일어서기 - 체리 [도서]

하나씩 둘씩 죽어가는 동료들을 바라보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글 입력 2020.08.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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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 워커는 1985년 생으로, 이라크전에 참전하며 직접 겪었던 경험과 군인으로서의 삶을 아주 적나라하게 담아낸 자전소설 <체리>와 함께 작가로서의 성공적인 데뷔를 마쳤다. 2019년에는 가장 창조적인 인물(MOST CREATIVE PEOPLE 2019)에 선정되기도 하였으며 '문학의 기적'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체리(Cherry)'는 미국에서 전쟁에 처음 투입된 군인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그는 육군 의무병으로 활동하며 수많은 임무를 수행했지만, 전쟁 이후 외상성 스트레스와 우울증 등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주저앉게 된다. 그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마약이었는데, 마약을 구매하기 위해 절도까지 시도한 그는 결국 경찰에 체포되어 11년의 형을 받게 된다. 이 책은 수감되어 있는 도중에 집필하기 시작하였다.

 

절망적이고 허망한 나날들을 보내며 사회 반항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책의 마지막 부분까지 다 읽고 나면 그의 심리적, 정신적 아픔을 공유 받을 수 있어 안타까운 마음을 그려내기도 한다. 누군가에겐 범죄자의 변명으로 또 누군가에겐 희생자의 외침으로 다가갈지 모르는 내용들이 뒤섞여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누구보다도 현실적인 이야기를 담아낸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체리


 

 

"돌아오는 길에 다리에서 조약돌 소녀에게 전투식량을 주었다. 아이는 가슴에 식량을 꼭 쥐고 달려갔다. 그런데 맨발의 사내아이에게 붙잡히더니 머리를 흠씬 두들겨 맞고 급기야 식량까지 빼앗겨 버렸다. 우리가 차를 몰고 떠날 때 조약돌 소녀는 흙바닥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는 이슬람 명절 중 하나인 아슈라의 마지막 밤을 보내며 경찰서 뒷벽을 몰래 타고 넘어가려는 사람을 발견한다.

 

총알로 쏴버릴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동료인 바우티스타 병장이 신호탄으로 겁만 주고 만다. 그는 자기 자신을 '진정한' 군인으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굳이 나서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후, 돌아가는 길에 조약돌 소녀를 발견한다. 그 소녀가 안타까워 보였는지 전투식량을 건네주지만, 금세 한 사내아이에게 두들겨 맞고 식량을 빼앗겨 버리는 소녀의 모습을 보게 된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방관자의 태도로 아무런 반응과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충분히 상황을 파악하고, 또 해결할 수 있었을 텐데 가만히 지켜보기만 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을 무렵에야 우리 모두 살짝 얼이 빠졌다는 걸 알아챘다. 그 상태에서는 아무도 상류 사회에 편입될 수 없었다. 문을 발로 차고 집을 부수고 사람을 총으로 쏘다 보니 제정신이 아니었다. 우리는 마지막을 기다리고 있었다. 더는 흥미로울 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시간만 낭비했다. 우리는 패배했다."

 

 

미국에서 처음 전쟁에 투입된 군인 '체리'인 그는 애써 낯선 환경에 적응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결국 마음이 다 상해버리고 나서야 잔인한 현실과 마주하고 좌절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적인지 아군인지 모를 사람들이 끊임없이 죽어나가는 상황 속에서 허울만 좋은 허수아비같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멘탈이 붕괴된 상황에 이른 것이다.

 

전쟁이란 이름 하에 무분별한 공격과 싸움으로 서로를 갉아먹는 공간에 갇혀있던 그는 끝내 패배했다고 외치고 있다. 전쟁으로부터 진정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허망하고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지우려 다시 한 번 더 강한 마약을 찾아 나선다.

 

 

 

파멸


 

 

"은행을 털려는 사람 중에서 절망적인 상황에 부딪히지 않은 경우가 있을까?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는 상관이 없다. 그저 사악하기만 한 개자식들은 절대로 남의 것을 훔치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 절도를 저지른다는 건 일종의 굴욕감 문제였다. 혹시 누군가에게 멸시당한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조심해야 한다. 당신도 절도범이 될 수 있으니까."

 

 

고통과 마약의 무한 굴레에 빠져버렸던 그는 독자들을 향해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범죄가 정당화될 수는 없겠지만, 결국 자신을 감싸버린 고통으로부터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도피해버린 사실을 현실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는 다시 마약의 품에 안기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직면하고 트라우마를 벗어나려는 노력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강하고 또 올바른 존재가 아니다. 그가 보여준 연약함을 통해 더욱 인간적인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매 순간 각기 다른 이유로 절망하고 자기 자신을 포기해버리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순간의 선택이 결국 자신을 발전시킬 것인지, 혹은 파멸시킬 것인지에 대해서는 신중히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결코 이상적이지 않기에, 개인이 무뎌지고 또 강해져야 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환경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어둠의 잔상이 마음속에 오래 머무르게 되면, 결국 고통이 번지게 될 뿐이니 자신을 위해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

 

불완전한 인간과 선택의 구렁텅이에 빠진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체리>. 책을 펼친 순간부터 자극적이고 거친 표현과 대화를 찾아볼 수 있다. 독자로서 조금 당황할 순 있겠지만, 이야기를 읽어 나갈수록 그 표현들이 연약하고 아픈 인간을 대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을 통해 특정한 교훈이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보단, 독자가 스스로 자신의 고통과 갈등을 현실에 대입해보고 마주하며 헤쳐나가는 방법을 도출해내길 바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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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

- CHERRY -

 

 

지은이

니코 워커(Nico Walker)

 

옮긴이 : 정윤희

 

출판사 : 도서출판 잔

 

분야

영미소설

 

규격

130×195(mm) / 페이퍼백

 

쪽 수 : 432쪽

 

발행일

2020년 07월 27일

 

정가 : 14,800원

 

ISBN

979-11-90234-07-8 (03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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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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