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찬란하지 않지만 은은한 우리네들의 삶 - 연극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

찬란하지 않아도, 빛나지 않아도, 그래도 청춘
글 입력 2020.08.16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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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靑春)의 뜻이 푸르른 봄 이듯, 이 단어는 인생에서 가장 산뜻하고 푸르른 시기를 이른다. 그래서인지 청춘은 찬란하다고들 말한다. 청춘이라는 시기에 몸담고 있는 20대 나이의 사람들은 항상 빛이 나는, 인생에서 가장 눈부신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고들 한다. ‘청춘’ 하면, ‘찬란’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눈부시고, 아름답고 순수하고 깨끗한, 그러니까 어쩐지 어느 겨울날 수북이 쌓인 두꺼운 눈 위로 첫 발을 내딛는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청춘이라고 부르는 그 시기를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은 정작 내가 그러한 눈부시고 찬란한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아직 판단을 내리기에 이른 시기인 20대 초반을 살고 있지만서도, 나의 20대는 마냥 푸르고 산뜻하지 않았다. 처음 20살이라는 나이 아래, 갓 성인이 되어 그 찬란한 이름의 아래에서 살게 되었을 때, 오히려 나는 끝없는 혼란과 불안을 겪었다.

 

나의 20살은 변화와 격동의 시기였다. 말 잘 듣고 하라는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던, 특별히 이렇다할 나의 주관이 없어도 괜찮았던 시절을 지난 후 갑자기 20살이 된 나에게는 그보다 더욱 갑작스러운 변화들이 일어났던 것이다. 하루 아침에 ‘시키는 것만 잘하면 돼’ 에서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너가 알아서 해야지.’ 라는 말이 나를 둘러 쌌다. ‘알아서 잘’, 당시 세상에서 내게 가장 어려운 말이었다. 누군가 틀을 정해주지 않는 나의 삶은 불안정하고 완전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무작정 중고등학생 시절대로 굴기엔 세상은 더 이상 내게 아무것도 정해주지 않았고,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나의 주관에 따라 나의 힘으로 이루어야 했다. 대학교 첫 시간표를 짜는 일도, 여러 행사의 참석 유무를 결정하는 것도, 어떤 동아리에 들어갈지, 하다못해 몇 시에 무엇을 먹을지 결정하는 것까지도, 이전에는 내 결정권 밖의 일이었던 것들이 한순간에 나의 몫으로 남겨지게 되었다. 그 안에서 별다른 주관이 없던 나의 모습은 초라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의 청춘은 생각보다 초라하고, 산뜻한 푸르름의 색보다는 조금 더 짙은 색이 어울릴만큼 조금쯤 우울하고, 혼란스러웠다. 한참 후에 나이를 먹고 나서 돌아보는 지금의 청춘이 어쩌면 그 때의 나의 눈에는 찬란 했던 것으로 비춰질 수 있을 수도 있지만, 지금의 나의 삶이 찬란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숱한 고민과 불안 속에서 나 자신을 탓하며 지냈던 몇 몇 지난 날들은 도저히 찬란하다는 단어로는 표현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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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극의 주인공들의 청춘 또한 그렇다. 그들은 겉보기엔 어떨지 몰라도 각자 나름의 고민과 근심, 그리고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다. 주인공 이찬란은 평범한 외모, 평범한 욕심을 지닌 채 특별히 가난한 관계로 일주일 내내 하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일사불란한 삶을 살아간다. 계속해서 덮쳐오는 파도와 같은 삶은 그녀를 위협하고, 그 안에서 그녀는 우뚝 솟은 외딴 섬 같은 존재이다. 겉으로는 밝아 보이는 연극부 부원들도 그 안에 각자의 사정을 뭍어 두고 있다.

 

찬란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늘 친절하고 밝게 웃는 권유는 부모님의 잦은 싸움으로 속이 곪아 가고, 아무 근심 걱정 없이 그저 내일이 오니 사는 것만 같은 윤도래는 자신의 인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창작 활동의 슬럼프를 겪고 있다. 언제나 빈틈없는 계획을 짜며 미래를 척척 준비해 나가고 있는 것 같은 최시온은 취업난 앞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좌절한다. 늘 밝고 씩씩한 모습만 보이던 김혁진은 사실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하게 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버려가면서 까지 애쓰고 있었다.

 

찬란은 처음 윤도래로부터 연극부 입부 제안을 받았을 때만 해도 그것이 달갑지 않았다. 이미 충분히 바쁘고 피곤한, 아무리 애써도 빈틈 하나 보이지 않는 자신의 삶에 ‘연극’이라는, 어쩌면 시간낭비라고도 생각되는 것을 끼워 넣을 수 있는 자리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윤도래는 그런 찬란의 삶이 안쓰럽다. 마치 물속으로 가라앉으며 숨을 쉬기 힘들어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래서 찬란을 주인공으로한 연극을 만들고 싶다. 오랜 슬럼프를 겪은 그에게는 찬란처럼 영감을 주는 사람을 꼭 붙잡고자 하는 간절함이 있었고, 연극부원들은 찬란을 갖가지 방법으로 설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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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찬란을 포함한 연극부원들은 연극부를 통해 숨을 쉴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힘들고 지친, 막막하기만한 삶으로부터 떠나 완전히 다른 세계를 체험할 수 있는 ‘연극’을 만들어가며 그들은 지친 일상을, 지친 청춘을 잠시 쉬어 가고 있었다. 각본을 쓰고, 일정을 조율하고, 의상을 공수하고, 연습을 할 때 만큼은 어떤 고민과 걱정도 접어 둘 수 있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일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는 그 시간이 즐겁기 때문일 것이다. 연극부원들이 연극부 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면, 반짝 반짝 빛이 나는 것 같다. 어쩌면, 그 모습은 정말, 찬란한 청춘 같다.

 

어쩌면 그래서 청춘일지도 모른다. 매일이 즐겁고 산뜻하고, 즐거운 일만 있어서가 아니라, 힘들고 지치고 막막하지만, 그럼에도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체력과 시간이 있는 나이이고, 그러기 위한 시도를 하는 것을 아직은 두려워하기보다 즐길 수 있는 나이이기 때문에, 그래서 청춘이라고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저는 그렇게 한가하지 않습니다.”라는 말로 단호하게 연극부 입부를 거절했던 찬란도 극의 마지막에 가서는 연극부 활동을 통해 일상의 여유를 갖고 되었고, 무엇보다 웃을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이 함께 보내는 시간들은 물론 힘든 순간도 많지만 청춘이라고 부를 만했다.

 

결국 찬란하지는 않아도 은은하게 우리는 우리의 청춘을 살아가고 있다. 무대 위의 스포트 라이트처럼 인생이 항상 빛나지는 않아도, 가끔은 빛나고, 항상 웃지는 못해도 좋아하는 일을 하는 시간만큼은 진정으로 웃을 수 있는, 그런 청춘을 살아가고 있다.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다. 잔잔하지만 가끔씩 삶의 활력소를 통해 웃을 수 있는 그러한 삶을 통해 우리는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

 

물론, 자신이 삶을 바꾸어 나가고자 하는 의지와 지금의 삶에 만족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연극부원들의, 그리고 나의 삶은 지금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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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
- 청춘들의 아픔과 고민, 극복을 그린 연극 -


일자 : 2020.08.01 ~ 2020.08.23

시간
평일(화-금) 8시
토요일 3시, 7시
일요일 2시
(월 공연 없음)

장소 :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

티켓가격
전석 40,000원

주최
콘티(Con.T), 극단 신명

관람연령
중학생이상 관람가

공연시간

1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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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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