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두웠던 구름 사이로 내리는 한 줄기 빛, 아시아프 2020 [시각예술]

국내 최대 청년 아트 페어, 뜨거운 열기의 현장.
글 입력 2020.08.12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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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한 마스크는 이제 얼굴의 일부가 되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하늘에선 폭우가 쏟아진다 .우산을 써도 가방이 젖고, 바지는 그라데이션으로 물드는 요즘. 그럼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 있다. 청년 예술인들의 열정을 느낄 수 있는 곳,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2020 ASYAAF(아시아프)다. 아시아프는 국내 최대 아트페어로, 올해로 13회째, 청년 작가의 등용문 역할을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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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인 모두에게 아쉬운 2020년 상반기가 지났다. (이제 이 문장도 너무 상투적이 되어버렸다.) 너 나 할거 없이 어려운 시국이었지만 노동에 대한 안정성을 보장받지 못하는 예술인들에겐 특히나 불안한 시기였음은 확실하다. 재난 상황에서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영역은 '쓸모없다'는 누명을 벗지 못하는 문화예술이기 때문이다.

 

작가들이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일 년의 기간 동안 내내 준비했던 작업들은 전시 기회마저 잃게 되면서 빛을 볼 기회를 잃었고, 언제 끝날 지 모르는 길고 어두운 불안의 터널은 안 그래도 각박한 청년 예술인들의 목을 죄여 왔다.

 

창작엔 돈이 든다. 창작의 과정은 고되지만, 이 노동은 형체가 없어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다. 예술을 노동과 돈으로 치환하는 사고는 자칫 예술을 시장논리에 종속시킬 수 있기 때문에 지양해야 하지만, 작가들이 예술의 가치를 생산하기 위해 들인 정신적, 육체적 노동에 대한 보상과 인정이 없다면 계속해서 작업을 이어나갈 수 없다. 때문에 작품을 전시하고, 작품 판매의 기회를 보장받는 것은 예술가의 생존과도 직결된 중요한 문제다.

 

그래서인지 올해 열리는 아시아프는 더욱 각별하다. 전시장을 찾아온 미술애호가 관객들에게도, 작품 전시와 판매 기회를 갖게 된 작가들에게도 더없이 소중하고 뜻깊다. 아시아프가 다른 아트페어나 전시와 차별화되는 건 35살 이하의 청년작가들을 집중 조명한다는 점, 전시장 곳곳에서 SAM(Student Art Manager)들이 작품 이해를 돕고 판매를 진행한다는 점이다. SAM은 도슨트와 아트딜러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이 자리 역시 대학생을 대상으로 모집한다는 점에서 아시아프가 청년예술인들의 기회를 창출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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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진행 중인 아시아프 2부의 작품들 중 몇 가지 기억에 남는, 공유하고 싶은 작품들을 소개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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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리, Bubble (상) / Gossip (하)

 

 

먼저 유주리 작가의 Bubble과 Gossip이다. 한 벽을 다 차지하는 크기와 화려한 컬러에서 흘러나오는 에너지 때문에 이 작품 앞에서 쉽사리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그림을 집중해서 보면 작고 투명한 달팽이들이 있는데 이는 사회 속의 개인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꾸물꾸물 느리게 움직이는 형상에서 알 수 없는 측은한 마음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유주리 작가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향을 담은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쉽게 모른 척할 수 있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엔 끊임없이 충돌이 발생하는 '경계의 영역'이 있다. 정상과 비정상, 주류와 비주류를 구분짓고, 보이지 않는 폭력과 희생이 만연한 영역. 역설적으로 작가는 이곳에서 유토피아를 봤다. 충돌의 에너지가 발생하는 경계에 영역에서야 비로소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사람들의 숭고한 의지가 발현되고, 변화가 시작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가 재난상황에 처하고 감정이 궁핍해지면서 서로를 향한 비방과 폭력, 혐오가 만연했다. 화가 났고, 때로는 외면하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그곳에서 변화를 향한 물결이 시작되는 걸 봤다. 폭력에 대항하는 사람들이 큰 목소리를 내고, 저항의 움직임으로 파도를 만들었다. 이렇게 우리는 한 걸음씩 '이상향'이라고 하는 세상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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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미, 군중

 

 

처음에는 톡톡 튀는 색감과 아기자기하게 어우러지는 캐릭터들의 모습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 군중 시리즈는 각박한 현대 사회에서 모두가 쳇바퀴 굴리듯 살아가면서 각자의 개성이나 정체성을 잃어가는 현실을 회의적인 시선으로 담아낸 작업이라고 한다. 자세히 보면 사람들의 얼굴은 모두 가면을 쓴 듯 똑같은 표정인데다 어딘가 허무한 눈빛으로 보인다. 고유의 개성을 잃어가면서 모순적으로 겉으로 보이는 외향에 지나치게 치중한 사람들은 인스타그램에 부유하는 우리 모습과 닮았다.

 

요즘 사람들은 화려한 옷과 장식으로 자신을 과장되게 꾸미고, 인스타그래머블한 사진을 찍어 현실을 부풀려 담아내 SNS에 전시한다. 하지만 동시에 막상 남들이 다 하는 건 나도 따라 해야 한다는 은근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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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경, Self Portrait-LYCHEE/ Self Portrait-DURIAN

 

 

열대과일은 껍질을 열기 전엔 어떤 맛과 향을 지닐지 그 속을 알 수가 없다. 리치나 두리안은 뾰족뾰족한 데다 단단한 껍질이 감싸고 있어 안에 투명하고 여린 과육이 있을 거라곤 쉽게 예측할 수 없다. 작가는 이런 열대과일 그림에 Self-portrait라는 이름을 붙였다. 남에게 보이는 모습과 자신만이 알고 있는 내면의 모습이 괴리가 컸던 걸까.

 

나 또한 요즘 들어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우리는 모두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페르소나, 즉 외적 인격을 달고 살아가지만, 사이버 자아가 비대해지면서 남에게 보이는 내 모습은 더욱 현실과 괴리감이 큰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니까 말이다. 내 겉과 속은 달라! 라 외치는 이 묘한 자화상 앞에서, 작가를 알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청년작가들이 각자의 개성을 담아 전시한 작품들에서 우리 세대가 공유하고 있는 고민을 친근하게 마주할 수 있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예술인으로써, 학생으로써, 청년으로써 가장 가까이에서 활동하는 작가의 작품 앞에서 우리는 일종의 연대의식을 느끼며 스스로를 마주하고 더 넓은 시각으로 사회를 돌아볼 수 있다.

 

*

 

아시아프에선 청년작가의 평면 작업뿐 아니라 입체, 미디어 작품까지 만나볼 수 있으며 2층의 히든 아티스트 구역에선 36살 이상의 베테랑 작가들의 작품, 해외 아티스트 구역에선 아시아 지역 작가들의 작품까지 만날 수 있다. 작품에 대해 궁금한 게 생긴다면 주저하지 말고 SAM에게 다가가길 바란다.

 

아시아프는 그 취지가 전시공간이 아닌 대안공간을 활용하여 예술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있다. 올해는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을 중심으로, 원래 전시장이 아닌 건물의 로비 공간까지 전시공간으로 활용하여 전시장을 꾸렸다. 안전한 진행을 위해 현장 예매가 아닌 사전예약제로 운영되며, 입구에서 발열체크와 문진표 작성을 진행하고 있다. 관람객이 더욱 안심하고 즐길 수 있도록, 작품 옆에 작가의 설명을 볼 수 있는 OR코드를 마련해  대면접촉 없이도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방안까지 섬세하게 마련되어있다.

 

이번 아시아프는 전시 종료 후에도 온라인에서 상설  작품 판매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 참여작가들에게 보다 다양한 판매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다. 아시아프는 35살 이하의 작가들의 작품이 판매가 되면 100퍼센트 작가에게 수익이 돌아가는 구조로 운영된다. 국내 최대의 청년 작가 등용문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청년 예술인들의 작업 현실과 기회 창출을 최대한으로 보장하고 있는 셈이다.

 

아시아프에서 청년 작가의 작품을 구매한 관람객은 구매자에 그치는 게 아닌, 작가의 창작 활동에 에너지를 실어주는 후원자가 된다. 작품을 구매하지 않더라도 사진을 찍어 SNS에 짧은 감상평을 올리는 것 또한 작가를 알리고 후원하는 하나의 탁월한 방식일 것이다. 국내 청년 예술인을 응원하고, 그들의 나아감을 지켜볼 수 있는 자리, 2020 아시아프에서 장마에도 꺾이지 않는 열정을 느껴보길 바란다.

 

 

참고

[예술탄탄] 예술, 판타지를 걷어낸 삶

 

 



[송민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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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시아프
    •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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