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에게 소중한 기억 [사람]

지난 오스트리아 교환학생을 돌아보며
글 입력 2020.08.11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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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나는 오스트리아에서 6개월간 교환학생 생활을 했다. 내가 거주한 지역은 Krems로, 수도인 빈으로부터 1시간가량 떨어져 있다. 도시의 중심부에는 도나우강이 흐르고, 포도밭이 아주 유명하다. 대도시보다는 소도시에 가깝다. 그만큼 한국인을 찾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당시 영어가 짧았던 탓에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한정적이었다. 기숙사 공용 주방에서 시끄러운 노랫소리를 낮춰달라는 얘기도 못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서는 잘 느끼지 못했던 무기력한 기분이 나를 삼킬 때가 많았다.

 

주변에 좋은 외국인 친구들도 사귀었지만, 속 깊은 얘기를 하기엔 나의 영어가 발목을 잡았다. 물론 친구들은 나를 배려하며 관계를 이어나갔지만, 내 속 안의 이야기를 밖으로 끄집어내지 못해서였는지 나는 속앓이를 꽤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오스트리아에서 지낸 지 두 달쯤 지났을 때, 친했던 친구가 빈에 온다고 연락했다. 그래서 혼자 기차를 타고 빈에 갔었다.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 회포를 풀고, 집에 가기 위해 나는 다시 기차역으로 돌아갔다.

 

저녁 7시가 넘었던 시간이라, 기차역 내의 직원들은 모두 퇴근한 상태였다. 기차역을 사기 위해 매표기계를 찾았고, 나는 한 노부부가 매표기계를 사용하지 못해 쩔쩔매는 것을 보게 되었다.

 

내가 노부부 뒤에 줄을 서니 노부부는 순서를 양보했다. 그들은 독일어를 썼고, 나는 그들이 독일인 내지 오스트리아인이라 생각했다. 나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매표기계이니 노부부가 어렵지 않게 그 기계를 쓸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래서 내 표만 결제하고 떠나려는 찰나에, 할아버지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매표기계를 어떻게 쓰는지 모르겠다며 말이다. 기분이 묘했다. 여기는 독일어를 쓰는 외국이니, 여태껏 내가 늘 도움을 받는 처지였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못했다.

 

물론, 이때도 문제는 언어였다. 그 노부부는 영어를, 나는 독일어를 못했다. 더 안타까웠던 것은 기차역 내 데이터가 터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짧은 영어와 영어보다 더 짧은 독일어를 섞어가며 노부부에게 기계를 쓰는 법을 가르쳐줬다.

 

그렇게 노부부는 기차표를 결제했다. 그때 할머니가 내 손을 잡으며 길게 독일어를 했었는데, 무슨 말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가르쳐줘서 고맙다는 얘기를 한 것 같았다. 타국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늘 짐이 되는 것만 같았는데, 그날 처음으로 나도 현지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언어에 대한 두려움도 한층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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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을 계기로 내가 무기력함에 잠식되었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이유는 나 자신이었다. 오스트리아에 도착하고 난 후부터 지난 두 달간, 나는 자신을 스스로 옭아맸었다. ‘언어가 부족하니 친구들과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해.’, ‘외국인들은 나보다 더 영어를 잘하는데, 내가 어떻게 수업을 따라갈 수 있겠어’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며 말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다시 한번 열정을 불태웠다. 영어 공부를 다시 열심히 시작했다. 언어로 인한 두려움으로 외국인 친구들과 더 친해지지 않는다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영어 공부를 가르쳐주는 유튜버를 구독했고, 하루에 한 문장씩 외국인 친구들에게 써먹었다. 친구들에게 내가 이상하게 말하면 고쳐달라는 부탁과 함께 말이다. 그렇게 남은 4개월 동안 나는 친구들과 잊지 못할 추억들을 쌓았고, 우리는 지금도 SNS를 통해 연락하고 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당시의 나는 ‘나의 쓸모’에 대한 강박감이 있었던 것 같다. 외국에서 늘 도움을 청하는 처지이었고, 또 누군가를 괴롭힌다는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생각의 결론은 늘 언어의 문제로 끝이 났다.

 

‘내 영어가 완벽했더라면, 이렇게 짐처럼 도움을 청하진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지금이야 “언어가 부족하면 영어 공부해”라고 나 자신에게 얘기했겠지만, 그 당시에는 뭘 하든 나는 못 할 것 같았다. 아무래도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던 것 같다.

 

요즘에도 한 번씩 나의 자존감이 무너질 때가 있다. 한 번씩 불안해서 잠이 안 올 때면 늘 노부부에 관한 일기를 쓴 부분을 펼치고 몇 번씩이나 읽는다. 3년이나 지난 일인데도, 그날의 기분을 떠올리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그때도 했는데, 지금이야 뭐 다르겠어’라고 되뇐다.

 

그러고는 일기장을 펼친다. 언젠가 이 일기를 보고 기운을 차릴 나를 위해 내 얘기를 적는다. 앞으로도 살아가면서 꽤 많은 자책을 할 것 같다. 하지만 노부부에게서 받은 기분을 잊지 않는다면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나는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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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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