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린 날의 고민들 [문학]

글 입력 2020.08.1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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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소설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정확히 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끝까지 다 보여주지 않고 막 재밌어질 때 끊어버린다는 짜증스러움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는 나중에 도서관에 가서 빌리려는 생각으로 그런 작품을 꼭 노트 어딘가에 적어 두었다. 물론 진짜로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린 것은 몇 번 되지 않는다. 그때 나에게는 수업 시간에 스쳐 지나간 문학을 좇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많이 있었다. 쉬는 시간에는 물병에 물을 채우러 가야 한다는 이유로, 그러다 친구를 만나면 같이 복도도 한 바퀴 돌아야 한다는 이유로 나는 도서관에 가지 않았다.

 

어제는 그때의 내가 생각났다. 함께 독서실에 다니던 친구와 가로등 아래서 미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곤 했던 어린 내가 갑자기 떠올랐다. 친구가 겪는 아픔에 어쩔 줄을 모르고 막막하게 손만 쓰다듬었던 서툰 마음 역시 기억났다. 나는 어리고, 미성숙하고, 모든 면에서 어설프기만 했다.

 

하지만 그런 시절을 지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그 시기를 다룬 작품이 언제나 재미있는 것 같다. 십 대시절을 보내는 주인공의 세계가 커지고 정제되는 그 과정을 함께하는 것은 늘 가슴 쓰리게 즐겁다.

 

문학 교과서를 통해 만나고 나서, 도서관까지 찾아가 몇 번이고 다시 읽은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에 오정희의 ‘중국인 거리’가 있다. 막 인생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한 여학생을 주인공으로 하는 ‘중국인 거리’는 늘 서툴렀던 그때의 나를 떠오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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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전후의 어수선한 상황과 항구 도시에 위치한 중국인 거리를 시간적, 공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아버지의 취직과 함께 중국인 거리라고 불리는 해안 도시로 이사 온 주인공은 치옥이, 매기 언니와 제니, 그리고 묘한 중국인 남성을 만난다. 어수선하고, 초라하고, 탄가루가 희뿌옇게 밀려드는 중국인 거리에서 주인공은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며 정신적으로 성장한다. 친구인 치옥이, 치옥이네 집 위층에서 미국인 병사와 함께 사는 매기 언니와 그의 딸 제니, 주인공의 어머니, 할머니는 주인공에게 각각 다른 여성의 삶을 보여준다.

 

매기 언니, 치옥이, 그리고 매기 언니의 딸인 제니로 대표되는 여성의 삶은 ‘양공주’이다. 매기 언니는 미군 병사들에게 몸을 파는 양공주로, 치옥이의 집에 흑인 병사와 함께 살고 있다. 치옥이는 ‘나’에게 매기 언니의 화장품, 향수, 술 따위를 보여주며 ‘양갈보’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사춘기를 지나는 혼란스러운 ‘나’는 반짝이는 유리병, 화장품이나 페티코트 같은 물건을 보며 매기 언니의 삶이 지니는 화려함에 신기해한다. 매기 언니의 예쁘고 화려한 삶에 호기심을 가지던 ‘나’는 한밤중에 흑인 병사에게 매기 언니가 맞아 죽었음을 알게 되고, 그 이후로는 치옥이의 집에 놀러 가지 않는다.

 

그 무렵 주인공의 어머니는 임신 중이었다. 주인공은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는 어머니의 삶에 동정을 느낀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수채에 쭈그리고 앉아 으윽으윽 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임신의 징후였다. 이제 제발 동생을 그만 낳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처음으로 여자의 동물적인 삶에 대해 동정했다. 어머니의 구역질은 비통하고 처절했다.”

 

 

주인공은 결혼하고 끝없이 아이를 낳는 여성의 삶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한편 주인공의 할머니는 중풍으로 쓰러진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외도로 의붓딸인 ‘나’의 어머니의 집에 얹혀살며 평생 남편을 보지 않다가 중풍으로 쓰러지고 나서 남편이 있는 곳으로 보내진다.

 

주인공은 일곱 번째 아이를 가진 어머니의 입덧을 보고 ‘동물적인 여성의 삶’을 동정하지만, 그렇다고 평생 아이를 낳지 않은 할머니의 삶을 동경하지도 못한다. 가정 안에서의 어머니의 삶이나, 가정에서 벗어난 할머니의 삶이나 모두 주인공이 보기에는 비극적이기 때문이다. 결혼하면 어머니처럼 계속 아이를 낳으며 고통스럽게 살 것이었고, 결혼한 뒤 남편과 헤어져도 결국 아무도 자신을 부양해주지 않아 비참하게 말년을 보내게 될 것이었다.

 

치옥이와 ‘나’는 그래서 가정에서 아예 벗어나 자유로워 보이는 매기 언니의 삶을 부러워했다. 하지만 매기 언니는 자신을 외국으로 데려다줄 것이라고 믿었던 미군 병사의 폭력으로 죽었다. 그러니 주인공의 앞에 펼쳐진 삶이란 막막하고 혼란스러운 것임이 틀림없다. 소설은 주인공이 초조를 경험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양갈보가 되든 결혼을 하든, 고통만으로 가득한 삶의 굴레에서 ‘나’가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의미한다.

 

처음 읽었을 때는 주인공이 초조를 겪는 것으로 소설이 마무리된다는 게 무슨 뜻인지 전혀 몰랐던 것 같다. 물론 월경이란 키가 자라고, 언니의 가방을 들게 되었다는 대목과 함께 주인공의 신체적인 성장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동안 나는 주인공의 초조에 대해 단순히 그렇게만 생각했다.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읽어보고 나서야 나는 왜 주인공이 첫 월경을 ‘이해할 수 없는 절망감과 막막함’이라고 표현했는지 알 수 있었다. 정말로 ‘인생이란’ 하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이때의 나 역시 미래에 대해 막연하게 두려워했다. 내 눈앞에 놓인 선택지도 ‘중국인 거리’ 속 주인공의 것만큼이나 한없이 적었기 때문이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삶의 모습은 아주 한정적이었고, 그래서 나는 어른이 되는 것이 두려웠다. 이제는 세상이 꼭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누군가는 타협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똑같이 고통스럽고 막막한 게 맞는데, 그저 익숙해진 것뿐이라고 해도 맞는 말일지 모른다. 하지만 삶에 조금씩 무뎌지는 그 과정을 우리는 성장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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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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