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쉽게 쓰여진 일기 (08.03 - 08.08) [사람]

글 입력 2020.08.0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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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03. 쏟아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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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쯤, 두 시간 뒤 고교 친구들과 반 년 만의 만남이 계획되어 있는 것을 떠올리며 느지막이 눈을 떴다. 반쯤 감긴 눈으로 휴대폰을 켜 해가 중천에 떴을 시각임을 확인했고, 블라인드를 내리고 있긴 했어도 햇빛 한 줄기 들지 않는 방 안을 어리둥절한 눈초리로 두리번거린 것도 기억한다.

 

비가 오나 보다 하며 가만히 눈을 감고서 잠에서 벗어나는 중인데, 밖이 소란스럽다. 대로를 앞에 두고 있으니 조용하지 않은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소리가 도로보다도 훨씬 가까운 곳에서 아니 창문 바로 앞의 공기로부터 들리는 것 같다는 생각에, 곧 벌떡 일어나 창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시선이 닿은 유리창 표면 위로는 작은 틈도 허용하지 않으면서 무한하게 서로를 껴안는 중인 물방울들이 매달려 있었고 바로 너머의 난간으로부터는 끝없이 지상으로 낙하 중인 또 다른 물방울들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를 온 신경을 다해 뚫어지게 들여다보고나서야 저 멀리 공기를 가르는 세찬 물줄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엄청난 양과 속도의 빗줄기가 말 그대로 '퍼부어지는' 중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잠깐 쏟아지다 곧 그칠 비라 여기며, 오랜만의 비 소식을 반가워했던 것 같다. 거실의 소파에 여유롭게 앉아 비 내리는 풍경을 감상했고 짧은 동영상을 찍어 SNS 스토리에 게시했다. 비 오는 날과 어울리는 음악 추천은 덤.


 

가온은 무엇이든 조심하는 사람이다. 소리치거나 호탕하게 웃는 것이 조심스러운 사람이다. 화장실에서 양동이에 물을 가득 담아 교실로 옮기면서도 양동이를 놓쳐서 물을 쏟는 것이 무서워서 바닥에 양동이를 두고 밀며 가던 사람이다. 마음이 넘쳐 쏟아질까 함부로 채우지도 않으며, 함부로 감정에 잠기지도 않는다.

 

하지만 무엇이든 조심해도, 쉽게 마음을 쌓지 않으려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것들은 피할 새도 없이 가온의 곳곳에 쌓였다. 가온은 그걸 함부로 씻어내는 것마저 두려웠다. 그래서 넘쳐나는 감정을 안으로 더 안으로 깊숙이 욱여넣었다. 퍽퍽한 흰 반죽을 작은 락앤락 통에 욱여넣듯 꾹꾹 눌러 담았다.

 

그런 가온에게 종일 비가 쏟아지는 장마나, 도시의 밤이 쏟아지는 서울의 옥탑방은 마음에 쏟아지는 작은 폭포였고, 그 차가운 물줄기는 가온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 2018년 가을, 창작 노트 중에서

 

 

종종 ‘쏟아지다’라는 동사에 대해 생각한다. ‘쏟다’와 ‘쏟아지다’, ‘쏟아붓다’와 ‘쏟아지다’, 비슷한 표현들을 여럿 골라내봐도 마음을 건드리는 쪽은 아무래도 ‘쏟아지는’ 편이었다. 쏟아지는 그 순간보다도 쏟아지기까지의 과정을 애틋하게 여긴다. 그 과정으로부터, 쏟아지지 않기 위해 견디는 누군가의 꼭 쥔 주먹을 본다. 그리하여 쏟아지는 일이란, 오래 애써 참고 견디다가도 아주 사소하고 우연한 계기로 무너지는 일, 손 쓸 새도 없이 터져 나오는 일.

 

그래서 하늘로부터 무언가 쏟아지는 날엔 대개 이 동사를 떠올린다. 아니, 떠오른다고 표현하는 쪽이 더 정확하겠다. 어느 날엔 괜히 눈물이 났고 눈물이 찔끔찔끔 나다가도 어느 날엔 펑펑 울고 싶어졌다. 쏟아지는 비와 눈에게, 무엇을 또 얼마나 견뎠길래 이따금씩 감당 못할 양의 것들을 쏟아낼 수 있는 것인지 묻곤 했다. 그리고 질문에 대한 대답의 몫은 언제나 내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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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제일가는 폭우라는 생각에 다다랐다. 그렇게 30분 정도가 지났지만, 빗발치는 물줄기는 예상과는 다르게 멎을 기미도 없이 여전히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는 중이었고, 그제야 휴대폰을 켜고 시간대별 예측 강수량을 확인했다. 두 시간 뒤엔 비가 조금 잠잠해질 거라는 예보를 확인하곤 친구들과의 만남을 두 시간 미뤘고 아무렇게나 점심을 먹었고 어제저녁 뉴스에서 본 다른 지역의 침수 피해를 떠올리며 다시 창밖을 내다보았다.

 

창밖 너머의 8차선 도로 뒤로는 작은 하천이 흐른다. 하천 바로 옆으로는 산책로가 늘어져 있고 바이러스로 사람을 만나지 못했던 올해 겨울 끝자락과 봄 즈음엔 아무도 없는 그 산책로를 자주 거닐었다. 그리고 바이러스와 최대 장마가 겹쳐버린 2020년의 8월, 이젠 거닐 수 없게 된 산책로는 그 위에 놓인 벤치의 머리 부분만 위태롭게 고개를 내민 채 잠겨갔고 비는 설상가상 천둥과 번개를 동반하여 더 세게 쏟아지는 중이었다.

 

빗방울은 일자로 곧게 낙하하지도 못하고 거센 바람에 갈려 공기 방울의 형태로 흩뿌려지는 중이었다. 예보를 다시 확인하니 그새 예보는 바뀌어있었고, 그 순간엔 창밖으로 사이렌 소리가 들렸던 것도 기억한다. 친구들과의 약속은 다음 주로 미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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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에 한 번 울리던 재난문자 알림은 더욱 잦아졌다. 큰 피해가 없기를 바랐지만, 오늘 저녁 뉴스에서 보게 될 헤드라인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문득 지나치게 평화롭기만 한 여기에 죄책감이 들었다.

 

그래서 수건과 양말, 그리고 우산을 챙겨 슬리퍼 차림으로 무작정 나왔다. 무얼 해야 할지 몰라 잡히는 대로 바리바리 싸 들고나온 것 중 한 가지가 노트북인 것이 무력하게 느껴지던 찰나 찰박거리며 슬리퍼 안으로 들어오는 빗물에 잠시 기분이 나아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옆을 지나쳐 다급히 어디론가 달려가는 소방차 한 대에 다시 마음이 죄어왔다.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15분 거리의 카페로 걸어가는 중엔, 노래 한 곡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재난문자가 줄지어 도착하는 바람에 제대로 완곡을 들을 수 없었다. 지역 외곽부터 시내까지 지하도가 침수되어 통행이 불가하다는 알림과 하천 범람 위험으로 인근 주민들은 안전에 유의하라는 알림, 모 마을 주민들은 고지대나 근처 초등학교로 대피해달라는 문자가 연이어 도착했다.

 

매초를 불안과 공포로 보내는 중일 곳곳을 생각했고, 그때 나는 ‘오수’라고 적힌 맨홀 뚜껑이 열린 채 흙탕물이 솟아나는 중인 인도를 피하기 위한 다른 길을 두리번거리는 중이었다. 뒤로 매고 있던 가방을 앞으로 꼭 안았고 슬리퍼를 신은 발가락엔 주름이 지기 시작했다.

 

 

 

2020.08.08. 애쓰다



 

건강하시기를.

오랫동안 이 말을 마지막 인사로 써왔다. 불완전하고 모호하고 순진한 데다 공평하지 않고 가끔은 모욕적일 수 있는 인사말이라는 것을 알지만 늘 마음을 담아 썼다. 당신이 내내 건강하기를 바랐다. 지금도 당신의 건강, 그걸 바라고 있습니다. 건강하십시오. 우리가 각자 건강해서, 또 봅시다. 언제고 어디에서든 다시.

 

- 황정은, 「일기(日記)」 중에서


 

서두에 말했다시피 내 책상 앞에 앉으면 경의중앙선이 보인다. 미래를 생각하고 사람을 생각하는 일에 지쳐 그만 다 그만두고 싶을 무렵인 5시 20분, 지평행 첫차가 지나간다. (중략) 달도 아직 지지 않은 새벽에 경의중앙선을 타고 내려오는 열차를 생각하는 일은 어쩐지 우주를 생각하는 일과 닮았다. 하지만 그건 우주의 일이라기보다는 사람의 일이다. 사람이 애쓴다. 저 바깥에 애쓰는 사람이 있다. 그가 지금 지나간다. 5시 20분 열차가 제시간에 선로를 달려 역에 당도할 수 있게하는 사람들. 각자의 자리에서 그런 일을 해온 사람들.

오늘은 4월 25일이고 해는 아직 뜨지 않았고 밖은 어둡다. 책상 앞에 앉아 두 번째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검은 새벽.

다음 역을 향해 가는 열차의 조그맣고 밝은 창들에 바란다.

건강하시기를.

부디.

 

- 황정은, 「일기(日記)」 중에서

 

 

어제는 황정은 소설가의 산문 「일기(日記)」를 읽었다. 코로나19 시기의 일상에 대한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기록. 위의 인용문은 차례로 첫 대목과 마지막 대목이다.

 

이 글의 끝자락을 써내는 오늘은 8월 8일이다. 수도권과 중부 지방에 집중되던 비는 잠잠해질 새 없이 어제부터는 남부 지방으로까지 확산됐고, 추가적인 침수·산사태 피해와 인명 피해를 발생시키는 중이다. “이재민은 전국 12개 시·도 3101가구 4860명으로 늘어났고, 시설 피해는 9000여건이 접수됐다. 침수 유실된 농경지 면적은 여의도의 29배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늘뚫린 폭우·산사태에 29명 사망 13명 실종…이재민 4860명(종합)」, 조선비즈 2020.08.08.) 어제는 중부 지방의 우리 지역이 집중호우 피해 특별재난지역으로 공식 선포됐는데, 오늘 저녁부터 중부 지방엔 돌풍과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다시 쏟아질 것으로 예보되어 있다.

 

그리고 닷새 전의 그 날도 그랬듯, 오늘도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노트북을 펼치고 앉아 있다. 무력하게 글을 쓴다. 그래서 이 글은 쉽게 쓰여진 일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윤동주 시인의 시 「쉽게 쓰여진 시」가 생각나는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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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황정은 소설가의 산문을 인용한 바 있다. 그리고 인용문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나는 지난 며칠간 황정은 소설가가 오랜 시간 되뇌었다는 고민 한 줄을 곱씹어왔다. ‘타인의 애쓰는 삶은 나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그리하여 ‘쏟아지다’라는 동사를 생각하던 닷새 전의 일기를 지나 오늘 여기의 나는 ‘쏟아지다’ 대신에 ‘애쓰다’라는 동사에 대해 생각한다. 산사태 위험으로 대피할 예정이라는 동생의 군부대를 생각하고, 닷새 전 노트북을 싸 들고 카페로 가는 길에 옆을 지나간 소방차 안의 소방대원분들과 인터넷 뉴스의 짤막한 기사 속 구조대원분들의 뒷모습을 생각한다. 그리고 원래도 무거운 가방인데 우산까지 챙기면서 두 배로 번거로워진 일상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으로 살아가는 중인 사람들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애쓰는 사람과 삶에 대하여 생각하는 오늘이다.

 

마지막으로 노트북 앞에 앉은 나에 대하여 생각한다.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 글이라면, 나는 할 수 있는 한 번거롭고 불편한 마음가짐으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타인을 위해 내가 애쓸 수 있는 삶이 글이라면, 이 글이 누군가에게는 꼭 닿을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서. 얄팍한 지식과 머리가 아닌 몸을 함께하며 쓰는 글. 글을 쓰는 그 순간만이 아니라 매순간, 말뿐이 아닌 행동하는 글. 그렇게 쓰고 싶은 오늘이다.

 

이 글의 마지막 문단에 대해 고민한다. 마지막 문단에 대한 질문을 매 글 스스로에게 던지지만, 나는 어째 이 글의 적절한 마지막 문단을 써낼 수가 없을 것만 같다. 쉽게 쓰기 시작했지만 쉽게 쓰였기에 더욱이.

 

오늘도 창밖의 잠자리떼는 하늘을 낮게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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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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