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와이파이 찾는 좀비 [영화]

짐 자무시의 좀비 영화 <데드 돈 다이>
글 입력 2020.08.07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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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버스를 타야 할 때면 영화 <패터슨>을 떠올리곤 한다. 소도시 ‘패터슨’에서 일하는 버스 기사 ‘패터슨’의 일상을 느릿한 리듬으로 담아낸 영화는 자칫 무료해질 수 있는 반복되는 일상을 아름답고 섬세하게 보여준다.

 

다 외워버릴 정도로 지겹게 본 도시의 풍경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흐린 눈으로 보다가도 <패터슨>이 떠오르면 자세를 고쳐 앉고 매일 달라지는 풍경에 집중하게 된다. 패터슨이 일상에서 영감을 얻어 시를 썼던 것처럼 쓸 만한 영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그의 영화는 <천국보다 낯선>,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그리고 <패터슨> 세 편밖에 보지 않았지만, 짐 자무시 감독에 대해서는 ‘느리게 말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데드 돈 다이>가 그의 좀비 영화라는 사실을 알고 흥미가 생겼다.

 

좀비 영화라고 하면 <부산행>이나 <월드워Z>처럼 긴장감을 자아내는 빠른 템포의 블록버스터 영화가 연상되는데, 과연 짐 자무시 감독은 좀비와의 대결을 어떻게 연출할지 호기심이 생겼다.

 

장르 문법을 따르는 영화는 아닐 것 같았고, 그렇다면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에서 그랬던 것처럼 인간이 아닌 존재를 통해 삶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영화일 거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었던 것은, 과연 ‘좀비’라는, 지성이 결여된 존재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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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의 답은 <데드 돈 다이>의 좀비들이 가진, 기존의 좀비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설정에 있다.

 

영화에서는 지구의 자전 주기가 변하면서 센터빌 공동묘지에 묻혀 있던 시체들이 깨어난다. 그게 진짜 원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대개의 좀비 영화에서 문제의 시발점이 특정 바이러스로 설정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무덤에서 기어 나온 시체들은 아주 느리게 걷고, 사람을 봐도 바로 이를 드러내고 달려들지는 않는다.

 

가장 특이한 점은 좀비, 언데드 등으로 불리는 ‘죽지 않는 자’들이 ‘커피’나 ‘와이파이’, ‘초코바’ 등 생전에 즐겼던 것들을 갈망한다는 것이다. 경찰서 유치장에 보관(?)되어 있던 여자의 시체가 깨어나 경찰들과 대치하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샤르도네’를 중얼거리는 장면은 웃음을 자아낸다.

 

죽어서도 욕망을 버리지 못하는 좀비들의 모습은 물질만능주의와 소비주의를 비판하는 블랙코미디로 읽을 수 있는데, 엔딩 시퀀스에서 방랑자의 내레이션이 아주 직접적으로 감독의 의도를 설명한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자세히 언급하기로 하고, 먼저 이 영화의 ‘이상한’ 캐릭터 이야기를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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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 돈 다이>가 묘하게 서정적이고, 시적인 분위기를 내는 것은 로니 피터슨 역을 맡은 아담 드라이버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도시의 버스 운전기사 패터슨을 연기했던 그는 이 영화에서 소도시의 경찰을 연기하는데, 시종일관 침착하고 차분한 태도를 유지한다는 점이 패터슨과 닮았다.

 

그런데 <패터슨>에서는 시체들이 깨어나서 사람들이 물어뜯는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다 쳐도, <데드 돈 다이>에서 몇 안 되는 마을의 경찰 중 하나인 로니(아마도 어깨가 무거울)가 지나치게 차분하다는 점은 조금 이상하다. 로니는 유치장에 있던 시체가 깨어난 것을 보고도 패닉에 빠지지 않고 침착하게 목을 자른다.

 

영화의 초반부터 끔찍한 살인 사건의 범인이 좀비일 거라고 말하고, 스터질 심슨의 ‘the dead don’t die’를 흥얼거리며 감정의 동요 없이 좀비를 처리하는 로니의 모습은 영 께름칙하다.

 

이쯤 되니 ‘뭔가 께름칙하지만 딱히 설명할 필요는 없는 것’이 이 영화의 주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로니라는 캐릭터의 ‘이상함’에 대한 비밀은 영화 후반부에서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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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니라는 캐릭터와 대척점에 있는 듯한 캐릭터가 마을에 새로 온 장의사 젤다 윈스턴(틸다 스윈튼)이다. 젤다는 센터빌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마을 사람들은 외지인을 대하듯이 그녀를 대한다. 로니가 좀비 영화의 주인공 치고 지나치게 차분했다면 젤다는 지나치게 튄다.

 

행동도 어딘가 수상하다. 작업실에서는 시체들에게 화려한 화장을 해주고, 작업실 바로 옆의 수행 공간(?)에서는 도복을 입고 사무라이 검을 휘두르며 불상에 기도를 한다. 좀비가 나타났을 때도 그녀는 놀라지 않고 장검을 휘둘러 두 마리의 좀비를 단박에 처치한다.

 

센터빌의 유일한 경찰인 로니와 클리프(빌 머레이), 민디(클로에 세비슨)가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화려한 칼솜씨를 뽐내며 나타난 젤다는 이 사태를 해결해줄 열쇠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로니와 클리프가 탄 경찰차가 좀비들에게 에워싸여 있는 막막한 상황에서 젤다는 홀로 우주선을 타고 사라진다. 좀비와 맞서 싸워서 이 난관을 헤쳐나가야 할 인물이 사실은 외계인이었다니? 이 시점에서는 영화의 장르마저 헷갈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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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이 좀비 영화에 대해 기대하는 액션 신은 영화의 엔딩 시퀀스에 나온다. 그러니까 로니와 클리프의 뜨뜻미지근한 액션 신이 이 영화의 처음이자 마지막 액션 신인 셈이다. 젤다가 떠나고 둘만 남은 로니와 클리프는 끝이 안 좋을 걸 알지만 무기를 들고 좀비를 상대하러 간다. 그리고 산속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은둔자 밥(톰 웨이츠)의 목소리로 내레이션이 깔린다. “좀비들, 물질주의에 빠진 인간들의 잔해. 수많은 인간의 형언 못 할 고통. 먼지에서 먼지로, 흙에서 흙으로.”

 

<데드 돈 다이>는 좀비의 잔인함이나 감염의 공포에 방점을 찍지 않는다. 여기서 좀비는 물질을 갈망하는 습성만이 극대화된 인간의 한 종류에 가깝다. 이 말은 곧 물질을 향한 욕망을 제외한 나머지 습성 – 지성과 감정이 결여된 불행한 존재라는 의미이고, 그래서인지 좀비들을 처치하는 로니와 클리프의 얼굴에는 공포가 아닌 연민, 안타까움이 비친다.

 

바이러스의 공포도, 눈물 나는 희생도 없는 이 영화에는 께름칙한 인물들과 예상치 못한 포인트에서 불시에 튀어나오는 유머가 있다. 장르 문법을 따르지 않음으로써 코미디 영화가 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좀비물이라는 장르를 십분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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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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