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한바탕 마당놀음 - 연극, 잠깐만 [공연]

무언극의 의의에 대하여
글 입력 2020.08.06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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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알과핵 소극장에서 연극 ‘잠깐만’을 보고 왔다. 친동생과 함께한 첫 연극이었다. 혜화는 언제나 포근하지만, 가 앉을 극장을 가지고 거닐 때에 더욱 가깝다. 길 위에 선 나는 연극을 그리며 예상하는 한편으로, 객석에 앉는 순간을 고대하다. 그런 나를 보고 있자면, 아마 나는 객석 자체를 즐기게 되었는가 싶다. 아직 기다리는 중인 무대를 바라보며 앉아, 노트를 꺼내어두고 글을 쓸 준비를 하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동생은 멍하니 마냥 설레나 보다. 그럴 만도 하지, 인석께 연극은 처음인 까닭이다.

 

동생은 다른 쪽의 감각이나 감상은 어찌 되어도 좋다는 식인데, 유독 후각에 있어서만은 섬세한 감각이 자아내는 감상을 세세하게 풀어보곤 한다. 그의 후각 아래로, 이 소극장은 벌써 좋은 기분이 되어 갈무리 되었나 보다. “오빠야 그 있잖아, 탈의하고 수영장 내려갈 때 복도나 계단에서 나는 약간 콤콤하고 포근한 느낌. 그 느낌이다.”

 

극장 간판으로 미루어보건대, 꽤 오래 이 바닥을 지키고 있었던 태가 난다. 그런 멋모를 가정을 뒷받쳐주려는 듯, 극장이 있는 지하로 내려가면서 동생이 말한 바로 그 냄새가 풍기 온다. 그 냄새는 잘 청소된 오래 묵은 지하의 냄새, 뭐가 되었든 좋은 기분을 안고 넘실거리어 내게 오는 냄새이다. 잘 청소된 오래 묵은 극장, 그것은 좋은 극장이라는 뜻이 아닐까. 그리고 좋은 극장이란, 좋은 극을 상영해옴으로써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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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잠깐만’은 넌버벌 마임극이다. 대사 없이 몸짓과 마임으로만 이루어지는 극, 일찍이 접한 바 없기에 우리 남매는 신기해했다. 한 칸 떨어진 채로 말을 주고받는다. 자기가 이해를 못 하면 어쩌냐며 신나서 방정을 떠는 동생의 말 위로, 암전이 떨어졌다.

 

조명이 다시 찾은 무대에는 여행용 가방 두 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고 세 명의 배우가 각자의 포즈로 정지해 있었다. 이윽고 Satie의 ‘Gymnopedie’가 틀린다. 느리고 우아한 음보, 여유로 가득 찬 햇살 밝은 톤의 음정. 그 노래가 날개를 펼쳐둔 아래로 두 명의 무용수가 춤을 춘다. 접할 일 적지만, 이렇듯 찬찬히 보니 무용은 참 아름답구나. 날 재울 듯 느린 음보에 맞추어, 두 무용수가 춤을 춘다.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기 시작했다.

 

 

 

 

단장으로 보이는 이는 줄곧 정지하여 무용을 바라보다간, 느닷 움직임을 시작한다. 고장 난 태엽 인형 같은 움직임을 선보였다. 그 갑작스런 몸짓에는 서툶과 생명, 동력과 활기의 숨이 삽시간에 불어 들어갔다. 그는 저편 무대 구석으로 전진해 마임을 선보이는 뒷모습으로 우리에게 닿았다. 그리곤 객석으로 돌아서서 마임을 계속한다. 말을 할 듯 말 듯, 표정을 일구는 근육들마저 통제해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의 제자리걸음에까지도 활기는 깃들어 있었다.

 

무언극이다. 말을 할 듯 말 듯, 정말로 자칫 소리가 와륵 쏟아질 것 같은 긴장을 유지하며 몸짓만이 계속되고 있었다. 여기, 말이 빈자리에는 오히려 더욱 느낌이 가득 들어 차 있었다. 소리와 몸짓과 서사를 동시에 해석하며 이해해야 했던 다른 보통의 극들관 달리, 충분히 비어 있는 이 무대 위의 모든 것은 빠짐없이 내게 닿을 수가 있다. 또 그곳에 가득한 온 몸짓이 드디어 내게 보인다. 몸의 쓰임이 낱낱이, 좀 더 자세하고 명확히 내게 보인다. 팔로부터 어깨로 이어진 저 선의 흐느적거림이 말이다. 그러니 아름답다는 생각은 자연스러웠다.

 

무대 위는 노래와 뭇 기물의 마찰이 내는 이따금 소음뿐이다. 언어가 없으니, 여기에 드디어 음악이 들어찰 수 있구나. 몸짓으로만 모든 표현을 해내야 하기 때문일까. 속도감이 충분히 여유롭다. 하늘로 쳐든 고개를 따라 눈으로 흘러내리려는 글썽임까지 모조리, 내게 닿았다.

 

초반 서사는 대략, 유랑극단의 이야기이다. 단장과 두 무용수는 유랑하며 마임공연을 선보이는 것으로 생계를 전전하는데, 아무래도 영 시원치 못해 배를 곯는다. 공연에 거듭 실패하다가 불현듯, 우리 익히 아는 명화들을 무대에 등장시키곤 모사를 시작한다. 첫 그림, 모네의 ‘양산을 쓴 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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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 한마디 말 없이 극은 진행되다간 이 부분에서 느닷 대사가 튀어나온다. “잠깐만요” 유랑단원의 실수를 수습하려는 단장의 다급한 소리, 그 소리는 참 이례적이었고, 그 이례적인 다급함이 단장의 얼굴 근육을 통해서도 잘 표출되고 있었다.

 

하나의 그림이 등장할 때마다 단장은 “잠깐만요”하곤 객석으로 뛰어들었다. 무작위로 관객을 초빙해 그림의 재구성에 한 몫을 부탁한다. 극의 메인인 여기부터는 하나의 명화가 제시되고, 그를 마임으로 재현한다. 어떤 특별한 서사와 이유는 없어 보인다. 그들은 그림 속의 소재를 차용해서 자유로운 상상을 펼친다. 그림 자체가 내포한 의미나 의도는 참작되지 않았다. 명화의 재현은 오로지 연출자와 연기자의 상상력. 그러나 그 덕에 외려 즐겁다. 연기를 다들 잘하신 덕분이다. 그들은 박제된 저 그림을 무대 위로 풀어낸 다음, 멋대로 움직인다. 캔버스에서 출발해 캔버스 너머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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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인 그림은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이다.

 

 

그림이 바뀌고, “잠깐만요”, 관객이 올라가고, 노래가 바뀐다. 다시 한 번, 그림의 주제는 별 상관이 없다. 소재만 차용해 자신들의 상상을 펼침으로써, 희극과 유머를 만들기 시작한다. 객석에 앉아있던 이름 모를 소녀를 무대 위로 데려와, 아무런 말도 지시도 지도도 없이 ‘이삭 줍는’ 아낙네의 대열에 합류시키었다. 그러자 우스운 해프닝이 발생한다. 멋모를 소녀가 자아내는, 즉흥의 유머가. 서투르고, 멋쩍고 겸연쩍어 뵈지만, 소녀는 극의 구성에 일조하기를 충실했다. 그러자 온 관객들은 그 소녀를 위하여 웃음과 박수를 아끼지 않는다. 연극의 내내, 우리의 웃음과 박수는 머뭇거림이 없었다.

 

극에 별다른 의미는 없다. 그저 즐거웠다. 그림은 소재로만 차용되었고, 그로써 저들이 그려낸 것은 즐거운 한바탕 마당놀음이다. 저 유랑단장이 오늘의 끼니를 위해 이름 모를 마을, 이름 모를 사람들의 앞에서 선보일 법한 바로 그런 무대. 우리는 연극을 보러 왔지만, 어느새 극 안의 세계에까지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바로 그 이름 모를 마을의 이름 모를 사람들이 되어, 극을 구성하는 하나의 단위가 되기도 하였고, 환호와 갈채를 보내는 그 관중이 되었고, 금화 한 닢과 빵을 사례하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 있었다. 비록 금화를 청하는 단장의 모자 안에는 한 장의 지폐도 얹히지 않았지만 말이다.

 

즐거운 한바탕 마당놀음, 연극 ‘잠깐만’이었다. 극의 종료는 예기치 않게 왔다. 즐거웠기 때문일 테다. 우리 남매는 즐거움으로 떠들썩한 무대를 뒤로하고 나왔다. 여운은 꽤 길 듯하여, 곧잘 낙산공원으로 올라갔다. 다시금, 그 오래된 극장의 ‘콤콤한 냄새’를 맡으며 긴 언덕을 올라갔다. 밑으로 보이는 야경의 앞에 서서, 그 극은 무엇을 의미하였을까 서로 질문해보다간, 에이, 어쨌건 참 즐거웠다고 막음하곤 귀갓길에 오른다.

 

동생은 뭘 ‘의미’하고자 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너무 즐거웠다며, 다음에 또 데려가 달라는 이야기를 한다. 우리는 무언극을 보았고, 배우들은 몸짓과 표정으로 무언가를 표현하였고, 관객은 객석과 무대에 각각 들어차서 극을 이루었다. 문득 그 연극이 무엇을 ‘의미’하고 ‘의도’하였는지가, 여기서 그렇게까지 중요한 것일까는 의문이 솟았다. 그들은 몸짓으로 나를 유혹했고, 나는 잘 몰입된 덕분에 저기 안, 상상의 광장에까지 이끌려 들어갔음에. 이것이 다만, 충실한 극 체험이 아니었을까. 도출한 의미와 그 해석을 통한 내적 즐거움도 극 예술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의 하나이겠지만, 그저 관람이라는 하나의 체험행위가 선사하는 본위적인 즐거움도 극 예술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의 하나가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뒤이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갈무리하는 나를 보며, 버스 바로 옆자리에 앉은 동생은 무엇 그리 심각한고 하는 표정을 던지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오늘 참 즐거웠구나 그렇지 않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동생은, 왜 두 번 말하게 하느냐는 표정으로 물론이라고 되풀었다. 우리는 그때 충실한 극 체험이 발하는, 고양된 시간 속을 걷고 있었던 듯싶다. 발걸음의 속도는 Gymnopedie 박자에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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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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