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호상이고 싶다 [문화 전반]

글 입력 2020.08.03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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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부랴부랴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학회 사무실을 들르긴 했는지, 그리고 학교에서 어떻게 장례식장까지 갔는지 그날의 기억이 군데군데 끊겨있었다. 그만큼 충격받았다.

 

한 번도 ‘죽음’이 가까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은 당연하게 언젠가 ‘죽음’을 접하건만 참 이상한 일이다. 그래서 아마, 두 손을 부여잡고 하나님께 “할머니를 왜 이리 빨리 데려가시나”하고 그리 빌었던 것 같다.

 

할머니 장례를 치르는데 여름의 장마처럼 내내 비가 왔었다. 세차게 내리는 비를 보며 처음으로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다. 죽음이란, 무척이나 비통하며 허무한 것을.

 

 


죽음의 새로운 관점, 가인 ‘Carnival’


 

예전에 브라운 아이드 걸스(Brown Eyed Girls)의 ‘어쩌다’를 즐겨 들었었다. 반복되는 단순한 가사와 발랄한 멜로디가 귀를 사로잡은 노래였다. 그러다 유튜브 알고리즘 때문에 가인의 솔로곡 ‘Carnival’을 듣게 됐다.

 

처음에는 놀이동산이나 서커스 공연을 연상케 하는 박자와 멜로디라, ‘죽음’을 다룬 곡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제목 그대로 ‘축제’를 다룬 노래라고 여겼다. 그런데 가사가 이상했다.

 

 

welcome to my carnival 열리면

난 그대를 떠나요

걱정 마 울지 마요

어제와 같은 밤일 뿐인데


-가인, Carnival(The Last Day) 中

 

 

축제가 열리는데, 왜 떠난단 말인가? 그리고 누가 운단 말인가? 아니, 가만 보니 가사만 이상한 게 아니다. 뮤직비디오도 이상했다. 뮤비는 장례식을 시작으로 노래가 시작한다.




가인, Carnival(The Last Day)

 

 

노래가 시작될 때, 주위에 가인을 제외한 인물 모두가 ‘검은색’ 옷을 입고 있다. 할머니 장례식장에서 보았던 복장이었다. 그러나 오직 ‘가인’만이 색 있는 옷을 입고 있다.

 

가인은 누군가의 ‘관’ 위에서 신나게 춤을 추지만, 아무도 그녀를 제지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가인’이 보이지 않나 보다. 그녀는 ‘죽은 자’, 곧 ‘관’의 주인이며 이 노래의 화자였다.

 

자신의 장례식인데 자기 죽음을 애도하는 이들에게 ‘슬퍼하지’말아라 말하고 있었다. 노래가 점점 절정에 치달으며, 뮤비 영상에는 ‘폭죽’이 등장했다. 보통 폭죽은 축하할 일이나 좋은 일에 쓰이는 장치이다. 그런데 ‘죽음’을 노래하는 노래에 등장했다. 죽음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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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죽은 자들의 날’ 축제

 

 

‘Carnival’ 노래를 듣고 있다 보니, 한 축제가 떠올랐다. 바로 멕시코에서 벌어지는 ‘죽은 자들의 날(Día de Muertos)’ 축제였다. 멕시코 원주민들의 ‘전통 장례 문화’와 16세기 스페인 사람들의 ‘가톨릭 종교’가 합쳐져 지금의 축제로 자리 잡았는데, 멕시코에서 10월 말~11월 초에 열린다.

 

‘죽은 자들의 날’이 되면, 멕시코 곳곳에는 독특한 향이 나는 금잔화(마리골드)가 등장한다. ‘죽은 망령’들이 금잔화 향기로 만나고 싶은 이를 찾는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 밖에도 해골 소품을 이곳저곳 비치하거나, 축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직접 해골로 분장하고 거리를 돌아다닌다.

 

멕시코 인들이 ‘죽음’에 대해 부정적인 것이 아닌, 긍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문화가 자리 잡게 되었다. 한편으로 멕시코 ‘죽은 자들의 날’ 축제를 반영한 영화 <코코>도 있다. <코코>는 멕시코의 ‘죽은 자들의 날’ 축제를 배경으로 ‘죽음’과 ‘사후세계’에 대해 다루고 있는 애니메이션 영화였다.

 

 

 

멕시코 인과 가인에게 배운 ‘죽음’


 

멕시코 축제를 알게 된 건 단순한 계기였다. 바로 축제에 쓰이는 ‘죽은 자들의 빵(Pan de Muerto)’때문이다. 워낙 먹는 것을 좋아하던 탓에 음식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다 이 빵을 보게 됐다. 설탕을 뿌렸기에, 도넛인 줄 알았는데 ‘죽은 자들의 날’이라는 이색적인 멕시코 축제에 쓰이는 음식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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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들의 날’ 축제에 쓰이는

‘죽은 자들의 빵’

 

 

'죽은 자들의 빵'은 밀가루 반죽에 오렌지 껍질과 아니스 씨를 넣어 구운 것으로, 빵 위에 달콤한 설탕을 뿌렸다. 축제 상징인 해골 모양으로 빵을 만들기도 한다. 옥수수 가루와 우유 혹은 물, 각종 향신료를 첨가한 '아톨레(Atole)'라는 전통 음료도 축제 음식 중 하나다.

 

당시에는 '특이한 축제구나' 하고 지나쳤다. 그러나 할머니 장례식 이후 다르게 보였다. 멕시코 인들의 ‘죽음’에 대한 가치관을 본받고 싶어졌다. 또 나의 죽음으로 인해 사람들이 비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흔히 장례식에서 ‘호상(好喪) 누리고 가셨다’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장례를 치르는 사람들에게 이 말은 무척 고깝다. 아무리 ‘호상’이라도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는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장례식에서 이 말이 거짓이 아니도록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며 가치 있는 삶을 살겠다.” 다짐했다.

 

사람의 인생은 100년도 안 되는 짧은 인생이다. 짧더라도 세상에 이왕 태어난 거 열심히 멋있는 삶을 살다 죽고 싶다. 그런 생을 살다, 훗날 ‘나는 행복했노라’고 할머니께 말씀드리고 싶다. 그래, 나는 호상(好喪)이 되고 싶다.

 

 

"나는 거기 있었고

충분히 아름다웠다"

 

-가인, Carnival(The Last Day) 中

 

  

 

박신영.jpg

 

 

[박신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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