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롤랑 바르트라는 이름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하릴없이 도서관 안을 돌아다니다가 책장에 꽂힌 책의 이름을 봤다던가, 아니면 수업 중에 선생님의 언급으로 말이다. 잘 모른다 해도 괜찮다. 이번에 언급할 책은 그가 말한 철학이나 기호학을 몰라도, ‘상실’을 겪었으면 가슴 깊이 와닿는 책이기 때문이다.
롤랑 바르트(1915~1980) : 애도일기를 쓴 이유
그에 대해 간단히 말하자면 이렇다. 그는 프랑스 사상가이자 문하학자이며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였다. 그는 문학 및 사회의 여러 현상에 숨어 있는 기호(의미) 작용을 분석하는 구조주의 기호학의 개척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글쓰기의 영도』(1953)과 『신화론』(1957)을 발표하면서 프랑스 지성계에서 주목을 받았고, 『모드의 체계』(1967), 『텍스트의 즐거움』(1973)으로 구조주의자로서 이름을 확고히 다졌다.
그리고 1977년에 출간한 『사랑의 단상』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등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이런 그가 『애도 일기』를 쓰기 시작한 건 1977년 10월 25일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 날부터였다.
롤랑 바르트는 애도 일기를 쓸 때 일반 노트를 사등분해서 쪽지를 만들어 잉크나 연필로 썼다. 그리고 책상 위에는 이 쪽지들을 담은 케이스가 항상 놓여 있었다고 한다. 일기를 써나가는 동안에도 롤랑 바르트는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중립’에 관한 강의를 했다. 그리고 여러 신문과 잡지에 많은 글을 발표했으며 1979년 4월과 6월 사이에 『밝은 방』을 집필했다.
어머니의 죽음 후에도 계속된 이 작업들은 사실상 모두가 어머니의 죽음을 기호로 지니는 것들이며, 그 출발점에는 다름 아닌 『애도 일기』의 쪽지들이 존재했다.
누군가의 일기와 나의 일기
고등학생 때와 대학생 때 한 번씩 이 책을 읽고, 바르트의 일기 밑에 내 생각을 썼다. 고작 몇 년 사이니, 생각의 변화가 그리 크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나는 많이 변해 있었다. 고등학생 때 바르트의 일기를 읽고 공감하지 못한 걸 대학생 때 읽고 공감되어 그 밑에 내 생각을 적은 것들이 수두룩했다.
생각의 폭이 넓어졌다기보단, 고작 몇 년 사이에 내가 많은 상실을 경험했구나 싶어 슬퍼진다. 반면 고등학생 땐 이해했던 걸 대학생 땐 이해하지 못한 글도 있었다. 어떤 생각이 옳다 그르다 할 순 없지만 확실한 건 내가 변했다는 것이다. 물론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몇 년이 지나도 그대로인 생각이 있다. 변하지 않았다 해서 내가 성장하지 못했구나 싶은 기분은 들지 않는다. 그저, 아직도 그대로인 내 감정을 보듬고 싶어질 뿐이다.
고등학생 때 바르트의 일기를 읽고 공감하지 못했던 걸, 대학생이 되고 나서 공감되었다 한 일기는 다음과 같다.
내 주변의 사람들은 아마도 곰곰이 생각하는 것 같다(어쩐지 그런 것 같다), 나의 슬픔이 얼마나 깊은 것인지를. 하지만 한 사람이 직접 당한 슬픔의 타격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측정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이 우습고도 말도 안 되는 시도).
한편으로는 별 어려움 없이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이런저런 일에 관여를 하고, 그런 내 모습을 관찰하면서 전처럼 살아가는 나. 다른 한편으로는 갑자기 아프게 찌르고 들어오는 슬픔. 이 둘 사이의 고통스러운(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 같아서 더 고통스러운) 파열 속에 나는 늘 머물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지는 또 하나의 괴로움이 있다 : 나는 아직도 “더 많이 망가져 있지 못하다”라는 사실이 가져다주는 괴로움. 나의 괴로움은 그러니까 이 편견에서 오는 것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