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화려한 거리에 새겨진 흉터를 바라보다 - 툴루즈 로트렉 전시

글 입력 2020.07.29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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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람미술관에서 <툴루즈 로트렉 - 물랭 루즈의 작은 거인>의 앵콜전이 진행되고 있다. 저번 전시가 끝났을 때 굉장히 아쉬웠는데 다시 진행한다는 소식을 들어 무척 다행이었다.

 

본 전시 기간동안 관람했던 지인이 참 좋았다고 이야기를 남긴 적이 있었다. 작가의 이름은 낯설지만 그의 그림은 낯설지 않았다. 감각을 자극하는 간결한 색채와, 자유로우면서도 볼드하고 힘있게 퍼져나가는 직관적인 선의 활용. 요즘 유행하는 미국, 유럽식 레트로 스타일을 떠올려보니 힙하다는 카페 몇몇 곳에서 마주쳤을 법한 인상의 회화였다.


 

 

19세기 파리의 물랭 루즈를 재현한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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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루즈 로트렉은 현대 그래픽 아트의 선구자로 손꼽히는 작가다. 19세기 후반 예술의 거리였던 몽마르트와 밤 문화를 상징하던 물랭 루즈를 주 무대로 당대의 생활상을 거침없이 그려냈다.

 

거대한 밤의 거리 물랭 루즈를 담아낸 작은 거인, 툴루즈 로트렉. 그가 작은 거인이라고 불린 이유는 그의 가정사에 있다. 프랑스 남부의 백작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귀족의 혈통과 재산뿐 아니라 신체. 정신적 장애를 물려받아 기구한 생애를 이었다. 귀족 가문 사이에서 계속된 근친혼 때문에 유전적인 장애를 안고 태어난 것이다. 성장기 무렵 넘어지는 사고로 137cm 정도의 키에 하반신이 짧은 모습으로 지팡이에 의지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후 그림을 그리는 데에만 집중해 살아가던 그는 카바레의 댄서와 가수, 매춘부와 서커스 단원 등 거리의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그들의 삶을 다루기 시작했다. 아울러 상업 미술의 격을 높인 홍보용 포스터 작업이 유명하며, 수많은 그래픽과 풍자 일러스트 등을 잡지에 게재해 시대상과 라이프스타일, 사회 문제를 고스란히 투영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전시회는 포스터뿐 아니라 석판화, 드로잉, 스케치, 일러스트, 수채화 등 작가의 다양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도록 기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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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전시는 당대 파리의 거리를 거닐듯 몰입감을 고조하는 구성으로 관람객이 온전히 작품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로트렉의 드라마틱한 일생을 소개하는 영상과 미디어 아트를 함께 배치하고 실제 인쇄물의 아카이빙 전시를 기획하는 등 작가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다양한 콘텐츠를 마련했다. 또 그의 생애를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내거나 당시 활동했던 작가들을 간략히 정리해두는 등 섬세한 구성이 인상적이었다.

 

아울러 실제 거리 풍경을 디자인 부스로 재현해 풍부한 볼거리와 관람객이 추억을 남길 수 있는 포토존을 구현했다. 섹션을 직관적으로 구성하면서 각 구역의 디스플레이를 각기 다르게 연출하기도 했다. 파리의 가장 아름다웠던 시기인 벨 에포크 시대로 타임슬립을 한 듯한 감각을 전한다.


 

 

상업 미술과 순수 미술의 경계를 허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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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ulin Rouge, La Goulue

 

 

전시는 초반부와 후반부에 사진 촬영이 가능하고, 작품 보호를 위해 중간 섹션에서는 몇몇 작품들의 촬영이 금지된다. 뮤즈, 몽마르트, 잡지 등 로트렉에게 영감을 준 삶의 다양한 키워드에 맞춰 전시가 흘러간다. 도슨트 시간대에 맞춰 가면 더욱 심도 있게 설명을 들을 수 있으며, 오디오 가이드도 추천한다.

 

로트렉은 상업 미술과 순수 미술의 경계를 지워버린 최초의 작가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그림 중에는 밤 거리의 카페나 극장의 화려한 모습을 담아낸 작품이 많이 보이는데, 이와 같은 소재의 작업성을 인정받아 당시 유명한 살롱이나 극장이 그에게 포스터를 의뢰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목판화나 풍자 화가인 오노레 도미에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개성적인 화풍은 강렬한 인상을 심어줘야 하는 포스터 양식에서 빛을 발했다. 빛과 그림자의 역동적인 대조, 과감한 생략과 단순화를 바탕으로 이전에 볼 수 없던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한 것이다. 타이포가 얹어지기 전 한정판으로 공개한 원판은 고가로 순식간에 판매되는 등 대중뿐 아니라 예술가와 비평가들에게도 큰 호응을 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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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istide Bruant Dans Son Cabaret (위)

Ambassadeurs. Aristide Bruant Dans Son Cabaret (아래)

 

 

무엇보다 다채로운 삶을 꾸준히 관찰해온 로트렉에게는 인물을 날카롭게 파악하는 눈과 이를 실감나게 표현하는 손이 큰 강점이었다. 인물의 특징을 날카롭게 포착해서 표현하는 데 뛰어난 실력을 발휘한다. 이러한 재능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 있다. 바로 로트렉의 포스터 덕분에 유명해졌다고도 할 수 있는, 당대 싱어송라이터 브뤼앙을 다룬 작품이다.

 

추상적인 선과 형태로 브뤼앙의 개성을 임팩트 있게 표현했다. 음영 없이 과감하게 표현해 시선을 사로잡으며, 특히 의 경우 뒷모습을 단순하게 묘사하면서도 강약을 조절해 브뤼앙의 복잡한 성격을 암시한 점에 주목할 만하다. 이는 파리의 상징이 된 이미지이기도 하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작은 삶들을 읽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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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on de la rue des Moulins

 

 

댄서, 가수, 매춘부와 서커스 단원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따듯하고 기꺼운 시선으로 그려온 로트렉. 물론 이들을 주목한 것이 로트렉뿐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현대 프랑스 문학에서는 부도덕한 것으로 간주되는 주제와 등장인물은 예술이라는 이름을 입고 왜곡된 모습으로 재해석됐다.

 

화려한 퍼포먼스와 공연, 웃음짓는 사람들의 모습만을 묘사하던 작가들과 달리 로트렉은 아무런 과장과 미화 없이, 진지하게 그들의 일상을 다뤘다. 그가 이 같은 주제를 다루는 것은 단순히 흥미로워서가 아니라 이들의 이면을 드러내고 사회의 모습을 풍자하기 위해서였다.

 

나아가 어렸을 때부터 신체적 장애를 안고 자란 그는 거리의 사람들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며 그들의 삶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오직 쇼를 위해 강요된 관능과 유혹, 그리고 그 이면에 숨겨진 외로움과 더 나은 삶에 대한 간절함을 편견 없이 받아들이고 그림으로 표현했다. 화려한 밤 거리의 여자들도 그의 그림 속에서만큼은 무척 편안해보인다. 카드 놀이를 즐기거나, 민낯으로 앉아 있거나 하는 모습을 포착하며 로트렉은 그녀들과 함께했다.


 

 

위트 있는 상징으로 채운 화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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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를 소화하면서도 직관적인 인상을 남겨야 하는 포스터 작업 특성상, 로트렉은 한정된 화폭 안에 상징을 부여해 풍성한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특히 매거진 저널리즘의 황금기를 맞이해 곳곳에서 다양한 잡지가 쏟아져나온 19세기 말은 로트렉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였다. 포스터 작업에 이어 잡지에 게재될 풍자 일러스트, 책 표지 등을 진행하며 그는 자신의 세계를 심화했다.

 

위 사진 중 아래쪽의 <모던한 기술자>는 인테리어 숍의 홍보용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인테리어 숍인데 왜 여인이 침대에 누워 있고 의사로 추정되는 사람이 다가가고 있는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자세히 살펴보면 의사의 손에는 약품함이 아니라 도구함과 망치가 들려 있다. 집을 고쳐주는 브랜드를 의사와 환자의 관계에 빗대 흥미로운 상징을 부여한 것이다. 아울러 프랑스의 총리가 쓴 책 <시나이 아래에서>의 표지와 삽화를 로트렉이 담당한 것으로 유명한데, 이 작품은 유럽 전역에 흩어진 유태인 집단의 삶을 블랙 유머로 가감 없이 묘사한다. 프랑스의 정치 상황을 예리하게 풍자해 게재가 거부당한 작품이 있을 정도.

 

대중과 전문 예술인에게 모두 사랑받은 최초의 툴루즈 로트렉. 하지만 그는 불규칙한 생활과 과음, 매춘부들과의 교제로 건강이 심각하게 악화되었으며 말년에는 알코올 중독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결국 37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한 그였으나 캔버스 유화 737점, 수채화 275점, 판화와 포스터 369점, 드로잉은 4784점에 이르기까지, 삶에 담긴 열정은 수많은 작품으로 남겨졌다.

 

 

[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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