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의미없음의 의미 [도서]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의미없는
글 입력 2020.07.21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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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고도를 계속 기다려. 그러다 끝나더라고.


 

'고도를 기다리며' (이하 '고도')를 읽어야지, 하고 다짐한 건 무려 3년 전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국어 선생님의 한줄평이 참 뇌리에 깊게 박혔다. “도대체 무슨 내용이라는 거야? 내내 '고도는 언제 오지?'만 반복하다가 끝난다고?” 어떻게 사람 찾는 질문 하나로 책의 분량이 채워질 수가 있다는 것인지.

 

우리는 대개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며 모든 문학 작품을 해석하고, 뜻을 부여하는 방법밖엔 배우지 못한다. 하다못해 황순원 작가의 ‘소나기’에서는 꽃의 보라색에서까지 (작가조차 생각지 못한) 의미를 찾으라고 하니까. 그래서일까? ‘에이 설마, 진짜 내내 사람 한 명 기다리다 끝나는 작품이 있겠어? 다 의미가 있으니까 고전이겠지’ 싶었다.

 

내가 꼭 읽고 멋들어진 의미를 찾아내리라! 쓸데없는 도전의식이 불타올랐던 것 같기도 하다. 그만큼 무의미한 내용으로 가득 찬 책이란 내게 생소하고, 낯설었고, 그래서 신선한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대체 뭘 어쨌다는 건데?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이하 디디와 고고)은 처음부터 일부러 그렇게 짠 만담처럼 아무 의미도 없고, 전혀 이어지지도 않는 말을 주고받는다. 구두를 벗으려고 낑낑대는 고고 옆에서 혼자 중얼대는 디디, 고통스러워하며 구두를 벗으려다 갑자기 디디의 단추를 지적하는 고고. 대화의 주제는 순식간에 구두에서 단추, 단추에서 삶의 '마지막 순간'으로 옮겨 간다. 그러다 다시 구두로 돌아오고, 성서에서 도둑놈들이 어쨌는지 얘기하다가는 돌연 고도가 언제 오는지, 고고의 악몽이 어쨌는지… 맥락 없는 대화로 채워진 페이지들이 이어진다. '뭐야 그래서 대체 뭐가 어쨌다는 거야' 싶을 때쯤 포조와 럭키가 등장한다.

 

채찍 소리와 함께 나타난 포조와 그의 노예인 럭키가 등장하면서부터, 사건(이라고 할 것도 없긴 하지만)을 이끌어가는 인물은 디디와 고고가 아닌 포조와 럭키로 옮겨 온다. 포조도 디디, 고고와 다를 바 없이 남의 말은 그다지 귀담아듣지 않는 인물인데,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가 말할 땐 반드시 모두가 경청해야 한다는 점이다. 디디와 고고의 무의미한 대화로 채워지던 페이지는 포조가 주절주절 읊어대는 말들로 채워진다. 하늘이 어쨌고 니코틴이 어쨌느니 하는 이야기들, 아무도 궁금해하거나 질문한 적 없는 것들 말이다.

 

그러다 럭키의 강렬한 대사(네 페이지에 걸친 한 문장)로 작품 속 난해성의 절정을 찍곤 다시 무대 위에는 디디와 고고가 남는다. 남겨진 그들에게 한 소년이 찾아와 전하는 말, ‘고도는 오늘 오지 못한다’. 그렇게 고도를 기다리며 보낸 하루는 고도 없이 마무리된다. 아무런 의미도 찾지 못하고, 목적도 이루지 못한 하루 말이다.

 

2막은 1막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같은 장소에 같은 인물, 같은 시간이다. 바뀐 것은 날이 하루 지났다는 것뿐. 날이 밝았고, 고고는 어제와 같이 밤에 얻어맞았다며 푸념하고, 디디는 그걸 들으며 ‘넌 나 없이 어떻게 살래?’ 하며 타박한다. 그리고 등장하는 포조와 럭키. 포조는 장님이, 럭키는 벙어리가 되어 있다. 하지만 디디 빼고 아무도 그들이 왜 장님과 벙어리가 되었는지 개의치 않는다. 당사자들조차도. 게다가 고고는 그들이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지, 어디서 만나기로 했는지 잊어버림으로써 책을 관통하는 소재인 ‘고도의 부재와 기다림’에서 벗어나 버리는 모습을 보인다.

 

자신이 전날까지는 멀쩡했다는 것을 잊어버린 포조 역시 바닥에 엎어져 디디와 고고에게 얻어맞으면서도, 그들이 전날에는 자신을 ‘선생님’이라 부르며 추켜세워주었다는 것을 기억해내지 못한다. 그러니까 1막과 2막의 배경과 시간, 인물은 모두 같지만 내가 기억하는 1막은 2막으로 넘어오면서 전부 의미 없는 파편이 되어 버린 셈이다. 즉, 우리 삶도 어제는 파편이요, 오늘은 부조리하며 의미 없다는 것 아닐까. 책을 다 읽고 내린 결론이다.

 

 

 

말없는 존재감


 

이 작품은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느끼긴 했지만, 나머지 세 인물과 눈에 띄게 구별되는 인물인 럭키에게 자꾸만 주목하게 되었다. ‘목에 줄이 묶여 있다'는 묘사까지만 해도 아 럭키가 애완견인가? 싶었으나 그는 백발의 노인이다. 이 늙은 노예는 '의자, 더 가까이, 뒤로, 더, 됐어' 등의 포조의 단순한 명령어에만 반응하여 복종한다. 앞서 말했듯, 포조는 질문을 던져놓고는 답을 들으려 하지 않으며, 질문을 들어놓고는 답을 하려고 하지도 않는 인물이다. 그래서 페이지는 주로 그가 하는 말들과 디디와 고고의 몇 마디 맞장구로 채워져 나간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읽는 동안 가장 큰 존재감을 보이는 인물이 누구냐 하면 아무 말 없는 럭키인데, 반복되는 건조한 대화 속에서 나머지 세 인물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존재가 그이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에야 무슨 이런 책이 다 있담, 하고 호기심에 읽어나갔지만 아무 의미 없는 말들을 주고받는 것만 몇십 페이지가 이어지는데 계속 집중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았다. 아 나무에 대한 얘기인가? 하면 어느새 하늘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고, 아 하늘에 대한 얘기인가? 하면 어느새 또 다른 얘기로 넘어가 있는데 당최 그 대화를 따라가기조차 어려우니 슬슬 '이만 읽고 일단 덮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이쯤 되면 인물들로부터 내가 왕따 당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빠질 때쯤 다시 작품 속으로 주의를 확 환기시킨 장치가 럭키였다. 뚜렷한 사건 없이 이어지는 대화 속에서 처음으로 합리적인 궁금증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럭키의 등장으로 비로소 나는 '대체 이 대화가 무슨 내용인가'에서 벗어난 다른 의문을 가질 수 있었다. 왜 목에 줄을 매고 있는가? 포조는 늙은 럭키를 왜 저렇게 자비 없이 대하는가? 이것은 나만 궁금해하는 것이 아니라 디디와 고고도 갖는 궁금증이라는 점에서 거의 튕겨져 나갈 뻔했던 작품 속으로 다시 한 발짝 정도는 들여놓은 느낌을 받았다.

 

럭키는 나뿐만 아니라 작중 세 인물들에게도 의미 없는 횡설수설에서 벗어나 감정을 부여하는 장치라고 생각했다. 디디와 고고에게는 궁금증과 동정심을, 포조에게는 혐오와 분노를 일으키는 존재. 럭키로 인해 나머지 인물들이 인간다운 감정을 드러내면서 비로소 대화에 미약하게나마 맥락 같은 것이 생기는 것도 같았다. 럭키는 줄에 묶여 외형적으로는 가장 종속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1막에서 가장 영향력을 내보이는 인물도 이 노인이다. 앞서 말했듯 디디와 고고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존재로서, 자연스레 대화의 주제이자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대체 베케트는 럭키라는 인물을 설정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의 세계에서 럭키가 상징하는 바가 무엇인지, 참 궁금하다.

 

 

 

말의 존재감


 

 
"프왕송과 와트만의 최근의 공동 연구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까까 흰 수염이 달린 까까까까 인격신은…(중략)… 땅바닥 위의 테니스 항공 테니스 땅바닥 위의 바다 위의 공중의 하키 페니실린과 그 대용 약품에도 불구하고…"
 

 

등장 이후로 내내 입 다물고 있던 럭키는 생각하라는 포조의 명령이 떨어지자 마침표 한 번 없이 장장 네 페이지에 걸쳐 자신의 생각을 쏟아낸다. 연관성 없는 단어들의 나열과 반복으로 이루어진 문장들은(사실 몽땅 한 문장이지만) 이해가 불가능하다. 럭키가 떠들어대는 동안 디디와 고고는 감탄하는 반면 포조는 차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럭키에게 달려든다. 갑자기 벌어진 난투 끝에 럭키가 쓰고 있던 모자가 벗겨지자 마치 전원이 꺼지듯 그는 입을 다물고 쓰러진다. 이 이전에 디디와 고고가 럭키를 동정하다가 포조의 말 몇 마디에 금세 태세를 바꿔 럭키를 비난하는 비상식적인 태도를 보이는 장면이 있었는데, 럭키의 '생각' 장면에서도 디디와 고고는 감탄하다가도 포조가 럭키에게 달려들자 이에 합세하여 럭키의 생각을 저지하려 든다. 럭키가 쓰러지자 고고는  '이제야 원수를 갚았다'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조금은 알 것 같았던 인물들의 사고방식에 다시금 왕따 당하는 기분이 든다. 포조는 럭키의 모자를 짓밟아서 넝마를 만들어 놔야 다시는 생각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모자를 뺏긴 럭키는 쓰러져 있다가 손에 트렁크와 바구니가 쥐어지자 비로소 혼자 일어서고 채찍 소리에 비로소 다시 움직인다.  그러곤 이내 포조와 럭키는 퇴장한다. 퇴장 직전의 처음이자 마지막 대사가 네 페이지에 걸친 한 문장이라는 점에서 누구나 '이것이 뭔가 중요한 주제의식을 시사하는 부분 아닐까' 하고 합리적으로 추론해볼 수 있을 것이다. 럭키의 '생각'이 끝나고 내가 다시금 인물들로부터 왕따 당하는 기분을 느낀 것처럼, 독자들도 아마 그의 생각을 읽는 동안 '대체 무슨 소리야'라는 의문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작품으로부터 완전히 튕겨져 나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이 책에서 인물들이 존재하는 방식은 ‘말’이다. 데카르트는 인간이 사유함으로써 존재한다고 했지만, 작중 인물들은 생각을 (아마도) 거치지 않은 말 그 자체로서 존재감을 확보한다. 그들의 대화에는 아무런 맥락도, 상호작용도 없다. 뭐야? 라는 의문을 품을 때쯤 다른 주제로 넘어가고, 무슨 소리야? 싶을 때쯤 또 딴 얘기로 새어 버린다.


희곡이라 빨리 읽히기도 했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뒤죽박죽 대화들이 주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혀 자꾸만 페이지를 넘기고 싶은 충동이 이어졌다. 그래서 화장실 한 번 가지 않고 원테이크로 완독했다. 기승전결이 명확하고, 인물들의 갈등과 관계가 머릿속에 팍팍 그려지는 일반적인 극과는 다른 이 부조리극이 주는 묘한 느낌은, 몰입을 방해하는 장치들로 인한 이질감뿐만이 아니다. 앞서 잠깐 얘기했듯 지극히 비현실적이고 부조리하면서도 우리 일상과 너무나도 닮아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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