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무언갈 믿는다는 것 - 새끼돼지 [도서]

글 입력 2020.07.15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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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들어 여러 사건들을 통해 한국 문단의 병폐가 드러나고 있다. 올해 초 모두를 충격에 빠뜨린 ‘이상문학상 사태’는 물론이고, 며칠 전부터 새로 이슈가 되고 있는 ‘김봉곤 작가 사태’까지 연이어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 사건들을 간략히 설명하자면, 이상문학상을 관리하는 출판사 문학사상사의 소위 ‘문단 갑질’로 인해 올해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자인 윤이형 작가가 올 초 절필을 선언했다. 그리고 얼마전 올해 젊은작가상 수상작인 김봉곤 작가의 「그런 생활」이 지인과의 사적인 SNS 대화 내용을 그대로 사용했다는 사실, 그리고 피해자의 항의를 김봉곤 작가와 문학동네 관계자들이 묵살하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한편 이러한 기존 문단의 권력구조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한국의 제도권 문학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올해 벌어진 두 사건 외에도 수많은 사건들에 의해 문단의 권력구조와 한계가 드러난 바 있고, 기존 문단의 사건들로 인해 독자가 문학에 기대하는 윤리가 배반당해 왔다. 공동체 속에 자리잡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으면 한국 문학이 독자를 잃는 것은 물론이고 새로운 신진 작가들이 설 곳 역시 사라질 것이다. 따라서 문학 출판사의 권력의 산물인 종이 문예지가 아닌, 웹진(webzine)이라는 새로운 플랫폼에서 작가들이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한국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전시키기 위해 기성 작가와 평론가, 편집자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이들의 협력을 통해 신진 작가들이 널리 읽힐 수 있는 지면을 얻고 있다.

 

오늘 소개할 소설은 장진영 작가의 「새끼돼지」이며, 웹진 《문장》 1월호에 실린 작품이다. 웹진 《문장》에서는 매월 우리 문단의 새로운 작품들이 발표되며, 별도의 비용 없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다. 장진영 작가의 「새끼돼지」 역시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으니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읽어보길 추천한다. 장진영 작가는 작년에 《자음과 모음》을 통해 등단하여 현재까지 네다섯 작품을 발표하였다. 한국 제도권 문학의 일반적인 서사에서 어긋나는 그녀의 작품은 독자에게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겨둔다는 점에서 아주 특징적이다. 그녀의 작품을 통해 한국 소설에 새롭게 태동하는 하나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장진영 작가의 작품들 중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작품이 「새끼돼지」이다. 「새끼돼지」는 올 상반기에 발표된 소설 중에서 가장 파격적이고 논란거리가 많은 작품이기도 하다. 읽는 데 짧으면 15분, 길면 30분 정도 소요되는 이 짧은 소설 속에 여러 가족과 친지들이 등장한다. 이들 모두는 한편으로는 타인으로부터 폭력을 당하는 존재인 동시에 다른 이에 삶에도 폭력을 가하는 양면적인 존재들이다. 소설의 서술이 진행되며 독자가 믿었던 인물들이 반전과 배신을 반복하여 보여주어 독자는 그 어느 인물도 믿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나는 이 젊은 작가가 이 짧은 소설을 통해 오늘날의 독자에게 경험시켜주고자 한 충격과 여운이 무엇이었을지 생각해보며 들여다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였고, 그래서 이 글을 통해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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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영 작가


 

소설의 주인공인 ‘나’는 남편과 함께 딸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여성이다. ‘나’의 고종사촌인 ‘순철 오빠’는 말더듬이 증상을 가진 장애인으로 베트남에서 이주해온 ‘호아’와 국제결혼을 하여 아들(그러니까 ‘나’에게는 조카뻘인) ‘하엘’을 낳는다. 한편 고모의 딸이자 순철 오빠의 여동생이자 ‘나’의 또 다른 고종사촌인 ‘정아 언니’가 있고, 그녀의 남편은 비정상적인 종교의 목회자이다. ‘나’에게는 사촌 형부뻘인 이 목회자로 인해 순철 오빠네 가정은 불행해진다. 사촌 형부는 눈엣가시인 순철 오빠가 더 이상 장애인 연금을 받지 못하게 만들고, 평소에는 호아를 때리며 화풀이하며 하엘을 키운다. 결국 순철 오빠는 돈을 벌기 위해 먼 길을 떠나고 폭력에 시달리던 호아는 베트남으로 돌아가 버린다. 그리고 하엘은... ‘나’의 집에 맡겨지게 된다. 하엘이 ‘나’의 집에 오면서 이 거대하고 폭력적인 가족 서사의 또 다른 면이 밝혀지게 된다.

 

하엘은 ‘나’의 평화로운 가정에 하나의 균열로 작용한다. 하엘은 은연중에 ‘나’와 ‘나’의 남편, ‘나’의 집에서 일하는 가정부, 그리고 딸과 남편이 다니는 키즈카페 직원 사이의 관계를 이간질한다. 집에 어른들이 없는 동안 가정부가 ‘나’의 옷을 입어보았다든가, 키즈카페의 직원을 남편의 여자친구라고 지칭한다든가 하는 식이다. 그런데 한편 남편은 야구 유망주인 하엘에게 애착을 가지며 하엘과 호아가 당한 폭력을 법적으로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본다. 그러는 사이에 ‘나’의 딸 수빈은 언젠가부터 ‘돼지새끼’라는 욕을 배우게 된다. 또 베트남으로 떠났던 호아는, 알고 보니 베트남에서 새 인생을 시작해 다시는 하엘과 만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걸 모르는 하엘은 호아를 폭행한 사촌 형부에게 복수하고 베트남의 엄마에게 돌아가는 미래를 꿈꾼다.

 

이 모든 내용이 짧은 단편소설 안에 들어있는 내용이다. 물론 소설 내에는 이밖에도 사소하고 미묘한 갈등들이 무수히 많이 존재한다. 각각의 인물이 서로 얽혀있는 모양이 굉장히 묘하면서 혼란스럽다. 소설은 이렇게 ‘나’의 시선에 비친 모든 가족과 친지들의 관계를 그리고 있다. 각각의 인물은 적어도 세 명 이상의 다른 인물들과 얽혀 있으며 배신이나 폭력을 가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는 식의 아포리즘적인 구조가 아니다. 모든 인물은 물리적, 정신적으로 한정된 각각의 존재들이다. 소수자인 호아나 하엘, 더 나아가 학교 갈 나이도 안된 ‘나’의 딸 수빈조차도 인물 간의 관계에 악한 존재로 거듭난다. 절대적인 피해자나 절대적인 선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

 

이러한 인물관계 속에서는 독자에게 상당한 부담이 가해진다. 일반적으로 독자가 소설을 읽을 때는 소설의 도입부에서 각 인물에 대한 정보를 얻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인물들에 대해 판단을 내리고, 그 판단 내지 선입견을 토대로 소설에 몰입하게 된다. 그런데 「새끼돼지」에서는 각 인물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없도록 반전이 거듭해서 나타나는데,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고 소설 전반에 걸쳐 계속 일어난다. 심지어 서술자인 ‘나’조차도 남편과의 대화 후 갑자기 분을 참지 못하고 남편을 두들겨 패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보인다. 독자는 서술자가 정상적인 인물인지, 서술자의 발화가 신뢰가능한 것인지 의심하며 읽어야 하는 것이다.

 

왜 작가가 꼭 이런 작품을 만들어야 했을까, 굳이 독자에게 부담을 주고 독자를 불편하게 만들면서까지 이런 인물관계를 그려야 했을까,를 생각하면... 사실 이런 상황이 오늘날의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특히 SNS 상에서 벌어지는 논쟁의 양상을 떠올려 보면 더욱 그렇다. 사태의 발단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해 보이고, 대중들은 우르르 몰려가서 사건에 감정적으로 몰입한다. 그러나 이내 새로운 진술, 추가적인 정황이 밝혀지고 기존의 가해자-피해자 구도가 모호해지거나 역전된다. 더 나아가서는 사태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새로운 당사자들이 등장하고 누군가에 대해서 함부로 판단을 내리기 힘든 결론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현대인은 언론과 SNS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상황에 꽤 자주 노출되어 있고, 신뢰할 수 없는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위기를 항상 직면하고 있다.

 

독자와의 쌍방향 소통에 의해 소설이 완성되고 있는 오늘날, 독자가 겪을 불편함을 무릅쓰고 이러한 작품을 만들어낸 장진영 작가의 재치와 통찰력은 오늘날 우리가 놓인 상황을 생각하게 한다. 수많은 정보가 동시다발적으로 생성되고 전파되지만 그 모든 정보를 의심해야 하는 새로운 현실 속에서, 독자는 어떠한 노선을 선택해야 하는가. 더 정확한 정보를 찾아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가. 아니면 사실 관계를 넘어선 또 다른 무언가를 생각해야 하는가. 이러한 값진 질문을 장진영 작가의 「새끼돼지」가 2020년의 독자들에게 던지고 있다.


*

 

이 글의 독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 소설 줄거리 요약이 너무 어지럽고 산발적이라서 이 글을 읽으면서 많이 당황스러웠을 것이라 생각한다. 올 상반기의 화제작을 너무 어설프게 소개한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도 민망하고, 좋은 소설을 소개받고 싶을 독자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주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소설은 가족 서사인 동시에, 미묘한 긴장감이 내재되어 있는 한편의 스릴러이기도 하다. 인간의 한 단면을 날카롭게 포착한 작가의 시선을 이 글에 온전히 담을 수는 없지만, 원래 문학이란 설명과 논증을 넘어선 영역에서 독자들에게 새로운 읽을거리를 던져주는 것이다. 오피니언으로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충격과 도취를 장진영 작가의 글을 통해 만나보길 바란다.

 

 

[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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