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효율의 시대에서의 만남 [사람]

두 번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
글 입력 2020.07.14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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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오랜 효율의 시대에 우리는 어떠한 이유로 상대와의 차이, 다름을 눈앞에 두고도 그 자릴 박차고 나오지 않을 수 있을까. 도대체 근본적인 차이를 지닌 나와 타인의 간격에서 어떤 섬광과도 같은 만남이 이루어진다는 것일까. 철저히 나의 기준에서 보자면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차이의 기쁨을 주는 사람. 처음 누군가를 만나서 공감대를 형성하며 가까워지는 것은 기본적인 관계 형성의 과정 중 초반부에 해당할 것이다. 이때는 상대방과의 몇 가지 접점을 찾아내 어색한 관계를 이렇게 저렇게 접붙여볼 수 있겠다.
 
문제는 다음인데, 생활하면서 계속 마주치거나 소통해야 하는 관계인 경우엔 처음과 다르게 각자가 가지고 있는 차이에 이목이 향하고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모든 다름이 묘한 기쁨을 줄 수 있는 건 아니다. 내가 그 차이를 이해할 준비가 됐을 때, 혹은 상대방도 그 차이를 명확하게 인지하여 인식의 기반에서부터 서로의 차이를 구체적 받아들이고 있을 때 비로소 차이의 기쁨에 대한 전제조건이 형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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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홀씨가 나무 위에 뿌리내렸다.
 
 
나와 유사한 경험, 그리고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부분을 동시에 지닌 사람과의 만남은 삶이라는 이름으로 융화되어 그간 겪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색감을 자아낸다.
 
이를테면 나는 월간지에 음악에 관한 글을 쓰지만, 프로 연주자는 아니다. 나는 앨범을 리뷰하거나 인터뷰를 하면서 내가 아닌 그들의 말과 음악에 기쁨을 얻는다. 거기에서 오는 차이와 생경함에 마음을 내준다. 내가 더 이상 음악을 듣지 않고 책을 읽지 않는 한 창작자들과의 차이의 기쁨을 느끼는 행복은 꺼지지 않을 거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이 ‘창작 생활인’들을, 그리고 그들의 창작을 언제나 다시 만나고 싶다.
 
 
두 번째는 ‘깊은’ 수준의 경청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이는 ‘높은’ 수준과는 차이가 있다. 깊이와 높이의 차이가 엄연히 다르듯, 관계는 고도의 시선으로 상대를 굽어보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깊이로 침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상대가 누구든 간에 그와 같은 시선에서 바라봐야 하는 것일 테다.
 
내려다보는 관계가 아니라 저 아래서부터 올라와 시선이 평행해지는 관계. 최근에는 깊은 경청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경청의 태도가 상대에 대한 인식까지 바꿔놓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이런 사람에게는 어떤 이야기든 꺼내놓고 싶어진다. 주말이고 평일이고 언제든 만나 며칠 전 읽은 장류진 작가의 단편과 이기호 작가의 연재소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그 사람의 경청에 대해 생각하다가 문득 든 생각은, 어쩌면 나와 타인이라는 범주를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 그가 가진 깊은 경청의 필수조건일 수도 있겠다는 사실이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차이의 기쁨에 대한 전제조건과도 상통한, 그러면서 아주 진부한 이야기로 귀결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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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다보는 관계가 아니라 아래서부터 올라와 시선이 평행해지는 관계.

 

 
김애란 작가는 산문집을 내고 진행한 인터뷰에서 ‘사람에 대한 마음이 한 바퀴를 돌면 이해에서 다른 애정으로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의 만남도 시간이 지나면서 이해의 폭을 넓어 다른 종류의 애정으로 향하는 건 아닐까.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누군가가 오고 갈 내 곁의 몇 자리를 미리 덥혀놓아야겠다. 요란하게 반기기보다는 작지만 차분한 이해와 애정이 가닿을 수 있도록. 그렇게 하면 나의 경청도 깊어지려나. 두 번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
 

 

조원용 에디터.jpg

 

 

[조원용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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