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개인 서사와 정치극의 결합, 웹툰 '여혜' [문화 전반]

글 입력 2020.07.07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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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웹툰’에서 <유색의 멜랑꼴리>를 연재하고 있는 비나리 작가의 전작은 <여혜>라는 작품이다. 가상의 동양적 세계관을 배경으로 한 웹툰으로 주인공 이름이 제목과 같다. 이 작품은 레진 코믹스에서 연재되다가 2019년 7월부터 카카오페이지에 다시 연재되었고 지금은 ‘다음 웹툰’에서도 서비스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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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혜>를 읽은 독자들은 대부분 긴 여운을 호소한다. 끝을 예상하고 있었으나 알고도 마주하게 된 결말이 날카롭고 묵직한 감정으로 가득차서 쉽게 벗어나기 힘들다. 이러한 몰입감은 비나리 작가의 특징이다. 인물의 감정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이것을 영상과 같은 컷으로 드러낸다. 쉽게 경험하지 못하는 감정도 이해할 수 있게 보여주다보니 독자는 인물의 강한 감정에 동조하고 작품에 빠져든다. 요즘 보기 드문 비극이라는 점에서도 이 작품의 매력은 독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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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줄거리는 이러하다. 쫓겨난 왕의 딸인 여혜가 자신의 출신을 모른 채로 사가에서 성장한다. 여혜의 아버지가 자신의 동생을 죽이고 왕권을 되찾으려 하고, 자연스레 여혜도 공주라는 신분을 되찾는다. 하지만 작은 아버지를 아버지로 알고, 그의 아들을 친오빠로 알고 자란 여혜에게 친아버지는 갑자기 모든 것을 부숴버린 사람일 뿐이다.

 

이 과정에서 여혜를 더욱 괴롭게 하는 것은 오빠의 동무이자 어린 시절 자신의 친구였던 ‘교연’이 친아버지의 앞잡이가 되어 오빠를 해치고, 자신을 잡아 넘겼다는 점이다. 업적을 인정받아 부마가 되는 교연에 복수를 결심하고 결국 자신이 왕좌에 오를 계획을 세우고 실천한다.

 

익숙한 사극 드라마의 서사구조처럼 느껴진다면 그것은 요약한 필자의 능력부족이다. 사실은 기존 사극 드라마와 차별화되는 점이 몇 가지 있다. 우선은 주요 인물인 여혜와 교연의 젊은 시절부터 중년에 이르는 시간에 걸쳐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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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인연은 초반에 짧게 소개되지만 그 장면은 반복해서 나온다. 이들이 서로에게서 벗어나기 힘든 이유도 어린 시절의 추억이 애틋해지며 강해진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행복했었고 그대로 자랐다면 어땠을지 계속 고민하게 되는 향수.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정경을 상상하게 만드는 향수는 처참한 현재를 부각한다.

 

순수하고 밝았던 유년기의 여혜는 궁에 들어오면서 사라진다. 아버지(친아버지가 아닌, 사실상의 작은아버지)와 할머니, 오라버니가 자신 때문에 죽음에 이르렀다고 생각하고 그들을 죽게 만든 교연에 대한 적개심을 불태운다. 궁을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지만 여혜 개인의 힘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여혜는 권력을 차지하고, 권력의 잘못된 구조를 자기 대에서 끊어버리려 한다. 그렇게 왕좌로 나아간다.

 

교연은 여혜가 잃어버린 것을 찾기를 바랐다. 공주로서의 지위, 진짜 가족이 아닌 가족과의 삶. 교연에게는 잘못된 것으로 보였다. 안타깝게도 여혜가 바라는 것을 교연이 짐작하고 그것을 이루어주려 무던 애를 쓰는 과정이 엇갈림의 시작이었다. 대화 없이 시작된 노력은 일방적이고 피드백 없는 노력은 걷잡을 수 없는 결과를 불러왔다. 그렇게 꼬여버린 관계가 풀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교연은 자신이 여혜의 과녁이 되어야 함을 깨닫는다.

 

여혜가 살게 만들기 위해서는 자신을 향해 적개심을 불태우고 계획을 세우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상황을 의도해야 했다. 오직 자신만이 그녀의 목적이 되어야 하므로 그녀의 또 다른 방해꾼들을 정리한다. 그렇게 여혜와 교연은 서로의 상대이자 적수이자, 가장 잘 아는 파트너로서 살아간다.

 

아마도 교연은 여혜보다도 고독하게 살아갔을 것이다. 유일한 적으로서 군림하기 위해서 다른 적들과도 우호관계보다는 견제하는 관계를 유지해야 했고, 교연이 벼슬에 나갔을 때 그의 가족은 이미 의미가 없어진 후였다. 여혜는 그의 편을 만들어간다. 유년기를 공유하는 ‘충학’을 비롯한 여혜의 세력이 만들어진다.

 

결과적으로 여혜가 원하는 바를 이루었으니 말없이 ‘희생’을 담당한 교연은 안타까워 보일 수 있다. 감정적으로는 순간 안쓰럽지만 곧 교연에 대한 안쓰러움은 사라지고 만다. 아무래도 자초한 고통이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여혜는 자신의 마음과 상대의 마음을 얼핏 알면서도 확신하지 않는다. 계획을 향해 나아가는 그 과정에서 다른 감정의 외피로 목표를 확고히 한다. 이 부분에서 독자들은 마음 아파하지만 대화할 수 없는 두 사람의 관계를 이해하기 때문에 다음 화로 넘어간다.

 

마음은 무겁지만 여혜가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것이 곧 세상을 바꾸는 길이었기 때문에 응원하고 지켜보게 된다. 실상 여혜를 괴롭게 만든 것은 기성 질서와 관습이었기 때문이다. 권력은 우애 좋던 형제를 갈라서게 만들었으며 그 갈등이 봉합되지 않고 이해(利害)에 따라 계속 이용되었다. 아이들은 비밀 속에서 자라고 그것이 폭로될 때 세상이 무너짐을 겪어야 한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또 다른 갈등은 갈등의 핵심인물들을 권력 싸움의 장기말로 만든다. 바꿀 수 없는 구조 속에서 고통 받는 것이 반복되는 셈이다.

 

여혜는 구조 밖으로 나간다. 첫 시작은 복수였지만 그 끝은 잘못된 관습을 부수는 것에 이른다. 정통을 따지는 관료들에게 정치적인 이유로 ‘정통’한 세자를 해치려고 했던 것은 당신들이라며, ‘정통’의 가치를 묻는다. 그리고 공허한 법도가 아니라 여혜 존재로 보여주는 정통을 새로운 법도로 제시한다.

 

‘합당한 자가 위(位)를 원하면 내어줄 것이다. 예외가, 선례가 되면 더는 예외가 아니며, 자연스러움과 당연함을 불러올 것이니 곧 이치 중 하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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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운이 좋게도 무료 재연재 기간에 이 작품을 만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유료로 결제해야 볼 수 있다. 정치적 수싸움과 인물 개인의 서사가 얽히며 만들어내는 현실성과 몰입감이 상당하다. 쉽게 벗어나기가 힘들 정도다.

 

여운이 짙게 남아 다시 보고 싶어질 때면 조금씩 결제하면서 정주행하고 있다. 누군가 이 글을 읽고 나와 함께 정주행한다면 이 글은 정말 성공했다고 할 수 있겠다.

 

 

[이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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