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는 범죄자의 서사가 궁금하지 않다 [문화 전반]

글 입력 2020.07.06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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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 동네 도서관에서 나는 화장실 불법 촬영을 하던 남성을 경찰에 신고했다.

 

다니던 대학교에서 여자화장실 불법 촬영 범죄가 일어났던 적이 있어 나는 외부 화장실을 갈 때면 주위를 살피는 버릇이 있었다. 화장실 칸에 들어갔을 때, 문 아래로 내가 있는 칸 앞에서 서성거리던 그림자를 발견했다. 무서워서 그림자가 사라질 때 까지 화장실 칸에서 기다리는 날이 이틀 연속이었다.

 

다음 날 나는 화장실 앞에 숨어서 누가 나오는지 기다리며 숨어 있었다. 놀랍게도 남성이 후다닥 화장실 밖으로 나가는 것을 목격했고 나는 그 앞을 가로막았다.(이는 위험한 일로, 절대 하지 않기를 바란다.) 왜 여자화장실에서 나오는지 물었고 범죄자는 자신이 여자라고 말하고는 빠르게 도망쳤다. 나는 경찰에 신고하면서, '만약 진짜 여자면 어떡하나.'라고 고민했다.

 

며칠 후 경찰에서 연락이 왔다. 그는 남성이 맞았다. 나는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실제 피해자는 나를 제외하고도 도서관에 있던 모든 여성들이었는데 피해자에는 내 이름만 있었다. 그들은 합의할 의사가 있는지 물었고 나는 그럴 일이 없다고 답했다.

 

한 달이 지나서는 범죄자가 벌금형을 받았다는 연락이 왔다. 그가 젊다는 이유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이 상당히 당혹스러웠다. 피해자인 나 또한 그보다 어린 20대 여성인데 그는 젊고 앞길이 창창하다는 이유로 벌금형을 받았다. 나는 그의 나이가, 그의 사정이 궁금하지 않았다. 범죄자는 자신의 사정을 호소하여 감형 받았다.

 

 

 

손정우 미국 송환 불허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운영자인 손정우의 미국 송환이 불허되었다.

 

믿기지 않는 사실이다. 신생아부터 철저히 유린하여 수많은 피해자를 낸 성범죄자는 이제 출소하여 다시 한국 사회로 돌아오게 되었다.

 

전 세계의 아동 피해자를 낸 만큼 손정우를 검거하기 위해 2년 넘게 미국 안보부, 법무부, 변호사, 이민 및 관세청이 수사에 협조하였고 국제 조사로 IRS-CI, HSI, NCA가 참여하였다.

 

그러나 손정우는 한국에서 1년 6개월 형을 받았고, 법무부는 미국 송환을 불허했다. 사유는 조약 및 범죄인 인도법에 따라 인도 대상 범죄에 해당하지만, ‘재량권’에 의해 인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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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피해자를 무력하게 만든 판결 속에서 더욱더 당혹스러운 것은 언론의 보도이다. 손정우 부자의 “현명한 판단 감사”를 우리가 알아야 하는가? 언론에서 손정우 부자의 인터뷰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독한 성장 서사


 

우리는 범죄자의 성장 배경 서사에 종종 노출된다. ‘불우한 가정에서 자랐다, 부모님의 사람을 받지 못했다, 학대를 받았다, 혹은 성실한 사람이었다.’ 등등. 최근 N번방 사건 가해자 중 하나인 ‘부따’는 착실한 학생이자 개발자가 꿈이었다는 TMI(Too Much Information)까지 남발되었다.

 

범죄자의 성장 배경을 극적으로 보도하면서 마치 그들은 성장 배경 속에서 ‘범죄자’로 자랄 수밖에 없었다는 뉘앙스의 서사를 부여한다. 이는 다분히 폭력적이다.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한 모욕이자, 피해자의 존재를 지우는 2차 가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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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쳐나는 불필요한 정보들

 

 

N번방 성착취물 사건에서도 우리는 가해자의 장래 희망까지 뉴스보도가 되는 것을 목격했다. 조주빈의 가정환경, 대학 생활, 그가 받은 시술 등을 자세히 보도하며 이들의 의견을 대변하거나 '악마' 등의 호칭으로 성 착취 범죄를 범죄자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기사가 포털 사이트에 노출되었다.

 

가해자의 장래 희망, 착실했던 학교생활, 성적의 보도는 가해자 범죄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이 같은 보도는 범죄자 개인의 불필요한 서사에 집중하는 것으로 그저 가해자의 정보로 빠르게 퍼져나가는 가십거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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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우가 어머니의 부재로 아버지와 자랐다는 것은 그의 면죄부가 아니다. 마치 어떠한 결함을 찾아 어떤 사유를 부여한다는 것에서 오히려 피해자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2차 가해이자 비슷한 사례의 성장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향한 새로운 공격이 된다.

 

 

 

지워진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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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우의 미국 송환 불허는 우리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성범죄자 형량 논란에서 N번방 사건, 지금의 아동 성착취 사이트 운영자 처벌에 이르기 까지 가해자를 향한 관대한 형량이 우리를 분노하게 한다. 최근에는 ‘고도비만’을 사유로 이를 콤플렉스로 인정하여 형량을 낮춘 판결로 논란이 생겼다.

 

이처럼 국내 형량이 솜방망이 처벌인 것을 알기에 우리는 손정우의 미국 송환을 바랐다. 한국에서 처벌받는 것을 요구하는 반성하지 않는 가해자에게 우리는 분노했다. 그들이 심신미약을 사유로 형벌을 낮추기 위해 최선을 다할 때 피해자는 여전히 피해자인 상태로 남아있다. 오히려 언론의 2차 가해로 더 상처를 받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국내 성범죄 형량이 낮다는 것을 알기에 악착같이 버티고 결국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손정우 부자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다시 무력감을 느낀다.

 

 



[이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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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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