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질문 받습니다 [문화 공간]

질문받기의 트렌드, 그 즐거움
글 입력 2020.07.09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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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이 생각해보면 유명인과 연예인, 혹은 교수도 아닌 평범한 우리가 질문을 받을 일은 그리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푼돈을 벌려고 깐 서베이 앱에서 가끔 질문을 보내오긴 하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시나요?’, ‘흡연하시나요?’, ‘연소득이 어떻게 되세요?’ 따위의 조사 목적이 뚜렷하기만 한 질문에 질려버린 뒤로, 울리는 알림 족족 무시해 버리고 만다.

 

부익부 빈익빈이 만연한 이 사회 속, ‘질문받기’의 행위에도 양극화가 도사리고 있다. 당연한 설명이지만, 질문을 받는다는 것은 누군가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고, 곧 나에게 어떠한 형태로든 관심이 있다는 뜻이다. 즉, 질문을 받는다는 것은 관심을 받는 것과 비슷하다.

 

따라서 관심 끌기의 각축장인 인터넷 연결망 속에서 질문받기의 역사가 이어져 오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유튜브에는 QnA 영상들이 심심치 않게 업로드 되고,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들은 스토리와 라이브를 통해 다양한 질문들을 받고 답하는 시간을 가진다. ‘오늘 바른 립 정보’에서부터 ‘올해 가장 이루고 싶은 목표’까지 다양한 질문들이 그 안에 펼쳐진다. 시간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페이스북의 ‘에스크(asked)’라는 질문 받기 전용 링크가 활발히 운영되었고, 싸이월드 시대에는 백문 백답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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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받는 플랫폼의 형태는 시간에 따른 사회의 관계 맺기 방식과 함께 움직인다. 싸이월드 백문백답은 누구에게나 평등했다. 주어지는 엇비슷한 질문들에 자신을 듬뿍 담은 답을 주욱- 적어놓고 게시한 뒤, 누가 볼지 두근대는 마음으로 자신의 문답들을 훑고 또 훑곤 했다.

 

페이스북의 에스크는 질문받기를 개인적인 공간 안으로 가져다 놓았다. 원한다면 누구나 질문을 받을 수 있는 자기만의 방을 가질 수 있었다. 물론 방이 얼마나 채워지는지는 사람마다 달랐지만, 그래도 모두 방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평등했다.

 

인스타그램의 시대로 들어와서, 질문의 양과 질은 더욱 인기에 비례하고, 그 차등적 현황은 깨끗한 창처럼 훤하게 보인다. 나도 인스타그램 스토리의 질문받기 스티커를 한 번쯤 사용해 보고 팠던 적이 있다.

 

사람이라면 갖고 있는 ‘질문받기’의 본능인 걸까, 조용한 관종 축에도 끼기 힘겨울 정도로 빈약한 sns 인기도를 가지고 있던 내가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아무도 질문을 해주지 않을 것 같아서, 그리고 그런 나의 인기 없음이 훤하게 드러날까 봐 마음 깊은 곳으로 묻어 둔지 오래다.

 

이런 걱정을 대체하듯, Z세대들은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의 줄임말인 ‘무물’을 통해 질문받기를 놀이처럼 즐긴다고 한다. SNS 친구들이 직접 질문을 생각해내서 물어보아야 하는 부담이 있는 초반의 무물에서, 본인이 직접 무물 질문지의 리스트를 올린 후, 그 중 골라서 질문을 받고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리는 형태로 진화했다고 한다. 이 또한 뉴트로의 일환일까, 생각해보면 싸이월드의 백문 백답이 돌고 돌아 현대의 버전에 맞게 치장한 뒤 다시 환생한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 없다.

 

우리는 살면서 ‘대답하라’라는 말을 참 많이 들어왔다. 왜인지 거부감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표현이다. 어릴 때 펼친 문제집은 ‘답하라’, ‘대답하라’, ‘답하시오’의 변형된 표현들의 향연이었다. ‘너, 이거 왜 이렇게 만들었어? 대답해봐!’와 같은 윽박지름도 비틀비틀 떠오른다. 그다음으로는 ‘질문하라’이다. 사실 이 또한 반가운 말로 남아있진 않다. 언제부턴가 퍼지기 시작한 자기 주도적 학습의 능동 질문 공부법이나, 흥미가 안 생겨서 궁금한 게 없지만, 질문을 해야만 받을 수 있는 강의의 참여점수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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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질문을 받아보는’ 일은 드물게 일어난다. 질문을 받아보는 것과, 대답하는 것은 사실 비슷한 고리 안의 행위이다. 질문을 받아야 대답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연히 다르다. 정해진 답을 강요하지 않는 좋은 질문을 받으면 그 질문은 내 생각을 똑똑 두드려 깨운다. 일상에 좋은 자극을 준다.

 

그래서일까, 한때 질문 다이어리가 열풍이었다. 매일 다른 질문이 적혀있고, 그 질문에 대답을 쓰는 일기와 같은 형태이다. 나도 질문다이어리와 비슷한 앱을 깐 적이 있는데, 대답을 적고 혼자서만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 답답해 금방 시들해졌다. 그것이 바로 굳게 닫혔던 입을 간질거리게 하는 질문의 힘이다.

 

일반인을 인터뷰하는 현상도 늘어나고 있다. 하나의 질문을 던지고, 일반인들을 인터뷰해 그 내용을 싣는 독립잡지를 본 적이 있다. 또한, 명성 있는 인터뷰어가 일반인을 인터뷰해주고 소책자와 녹취록을 제공하는 고가의 프로그램도 흥미롭게 다가와 기억에 남아 있다.

 

요즘 나는 질문을 찾아 나서 받으려고 하고 있다. 좋은 질문이 좋은 대답을 만들고, 좋은 글을 쓰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받은 재밌는 질문은 바로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지원서의 질문이었다. 어찌 보면 활동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할지라도, 4년 후까지의 비전이나 계획에 대한 질문은 골똘히 즐거운 생각에 빠져들게 해주었다. 관심을 받는 기분이 들어 신이 난 채로 술술 글을 적어 내려갔다.

 

또, 최근 읽은 알랭 드 보통의 책 ‘영혼의 미술관’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질문이 피어오르게 한다. ‘우리는 아트 오브제들을 단지 좋아하기만 하지 않는다.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의 경우 우리는 그것들과 약간 닮아있다. 그런 오브제들은 자기 자신을 알게 하고, 타인에게 우리의 진정한 모습을 더 많이 알릴 수 있게 하는 매개체다.’라는 문장을 읽으면, ‘내가 소중히 여기는 나의 오브제는 무엇인가?’, ‘소중하다는 것은 무엇일까?’와 같은 질문이 몽글몽글 솟아난다. 이것이 바로 책의 수많은 기능 중 하나이다.

 

유명인이 아닌 나이지만, 이렇게 생각의 국민체조와도 같은 자연스러운 질문들을 꾸준히 받으면서 살고 싶다.

 

 

[곽예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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