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인국공 논란', 한국 사회는 정말 공정과 평등을 바라는가

글 입력 2020.07.05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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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2일, 인천국제공항공사가 비정규직 보안 검색 노동자 1,902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방침을 발표하자 이에 대한 반발이 뜨겁게 이어지고 있다. 기존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노동자와 정규직 전환의 대상이 아닌 비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인천국제공항이라는 청년 선호 1순위 공기업의 취직을 목표하고 있는 취업준비생 등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정규직 전환을 반대한다. 공기업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막아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27만 명의 청원인을 동원하여 정부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고, 각종 입시와 취업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아직도 열띤 찬반 토론이 끊이지 않고 있다.
 
관련된 논쟁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공정’과 ‘역차별’이다. 기존 정규직 노동자가 거친 까다로운 공개 경쟁을 거치지 않은 대상이 정규직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공정하지 않으며 기존 정규직 노동자 혹은 그 희망자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것이다. 정부의 정책이 ‘결과의 평등’을 추구한다며 이는 성공할 수 없다는 주장도 개진되는 등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평등의 개념에 대한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 막연히 이상향으로 생각되던 공정과 평등의 개념이 구체적 일상에 적용되려고 할 때 늘 발생하는 복잡한 담론이 이번 이슈에서도 다양한 이해관계와 관점을 관통하여 전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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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인천국제공항공사의 결정은 2017년 현 정부의 임기가 시작된 해로부터 추진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을 기반으로 한다. 노동과 고용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이에 따라 공항 보안 검색 요원과 같이 국민의 생명 및 안전과 직결된 직무는 직접 고용의 형태로 반드시 정규직 전환의 대상이 된다. 이에 대한 반발의 내용이 단순히 하나로 수렴되는 것은 아니다. 기존 정규직 노동자의 경우 비정규직 노조의 입장이 이전보다 더욱 강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연봉 테이블이나 기업 정책의 변화에 우려를 표하거나, 전환 대상자들이 기존 정규직 노동자가 거친 공개 경쟁을 동일하게 치를 것을 주장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공항의 직접 고용이 아닌 자회사 채용을 종용하는 목소리도 크다.
 
이들의 반발은 행동적이며 격렬하다. 공사의 사장이 해당 결정을 발표한 기자회견에서는 300여 명의 정규직 노동자들이 나타나 욕설과 함께 격한 반발심을 표했다. 정규직 노조는 전환 반대 시위를 통해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고 있고, 언론과 지속적으로 접촉하여 입장을 전달하고 있다. 이렇듯 직접적이고 뚜렷한 반발의 움직임은 소문의 형태로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삽시간에 확산되었다. 정규직 전환 대상자들이 아르바이트 구직 사이트를 통해 부실한 절차로 채용되었다는 설부터, 노력하지 않고 정규직으로서의 이익을 취할 수 있어 기쁘다는 메시지가 오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단체 채팅방 이미지, 정규직 노동자로 채용되기 위해 쌓아올린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 절망스럽다는 취업준비생들의 성토가 온갖 SNS와 커뮤니티를 통해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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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운데에는 해당 결정과 관련된 허위사실과 가짜뉴스, 그리고 그것을 거름망 없이 확대 재생산한 언론사가 있었다. 사실은 알려진 바와 많이 달랐다. 이를테면 이번 정규직 전환 대상자인 보안 검색 요원들은 아르바이트 구직 사이트를 통해 채용되지 않았으며 단체 채팅방은 실제로 존재하는지 확인할 수 없고, 채팅방 이미지에서 언급되었던 ‘연봉 5000만 원’도 사실이 아니다. 정규직 전환 후에도 보안 검색 요원들은 일반 공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평균 연봉인 9000만 원의 절반도 되지 않는 3800만 원 상당의 연봉을 지급받을 예정이다. 그마저도 기존 보안 검색 용역 회사 경영진에게 가던 비용을 절감함으로써 인상된 임금이다. 이번 정규직 전환의 골자는 무엇보다 기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 안정 보장에 있으며,  전환 후에도 이들은 별도의 직군에 편성되는 등 정규직 노동자 측에서 우려하는 ‘무임승차’와는 거리가 먼 업무에 임하게 될 것이다.
 
물론 정규직 노조에서 주장하는 바처럼 전환이 결정되는 과정에서 충분한 민주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이들의 불만은 타당성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88%를 차지하며 그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이 꾸준히 문제시되어왔던 인천국제공항에서, 특히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보안 검색 업무를 정규직 전환함으로써 요원들의 고용 안정을 보장해야 할 필요성은 지속적으로 대두되어왔다. 이에 대한 응답으로 공항은 요원들을 용역 회사 소속에서 자회사 소속으로 전환시켰으나 열악한 처우는 달라지지 않아 요원의 상당수가 퇴사하여 보안 검색에 차질이 생긴 것이 올해 1월이었다. 최소한의 고용 안정과 노동 환경의 개선을 위한 직접 고용의 필요성 역시 논의되었다. 이번 정규직 전환이 구성원 간 합의 없이 졸속으로 이뤄진 독단적 결정이라고 일축하기엔, 열악한 환경 속에서 하염없이 긴 시간을 기다려야 했던 노동자들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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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켜켜이 쌓인 논의들을 언론들은 ‘역차별’이라는 한 단어로 납작하게 축약했다. 가짜뉴스가 양산되었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왜 그 가짜뉴스의 내용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반대하는 근거로 쓰였으며 사람들은 이에 왜 동조했냐는 것이다. 왜 아르바이트 구직 사이트를 통해 채용된 노동자가 고용 안정을 보장받는다는 것에, 그들이 기존 정규직 노동자와 필적한 임금을 받는다는 것에 분노하는 것인가? 왜 토익 점수와 학벌을 내세워 노력을 부정당했다며 억울함을 드러내는 것인가? 왜 자신이 ‘끼인 세대’라며 차별이 없어지는 과정의 희생양임을 주장하는 것인가?
 
여기엔 비정규직 노동자를 향한 계급의식과 학벌주의적 차별의식이 전제되어있다. 아르바이트 구직 사이트를 통해 보안 검색 요원을 채용했다는 것이 사실이어도 임금을 결정하는 요소는 노동이지 채용 방식이 아니며 어떤 방식으로 채용되었든 부실한 처우로 차별당해 마땅한 노동자는 없다. 진위를 확인할 수 없는 단체 채팅방 속 메시지가 실제라고 해도, 설사 그들이 정말 정규직 노동자들보다 채용을 위한 노력을 덜 했다고 해도 그들이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기득권이 되기 위해 노력했으나 성인이 되고 난 후에 차별이 없어지는 것에 대한 억울함을 토로하는 ‘끼인 세대’론도 소용없다. 차별이 정당화될 수 없다는 사실을 뒤로해도, 그 ‘끼인 세대’에는 여태까지 불공정한 노동 환경에서 일하다가 이제야 노동을 인정받게 된 젊은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끼인 세대’임이 억울한 자들도 언젠가 지금과 같은 과정의 수혜자가 될 것이며, 이미 된 적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미 안정된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기득권 중장년층뿐 아니라 청년층의 분노가 드러났다는 점에서 해당 논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신의 파이를 지키려는 보수적인 사고방식이 실질적인 파이를 아직 갖지도 않은 취업준비생들을 중심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비수도권 지역에 분원을 두고 있는 수도권 지역 대학의 학생들은 비수도권 지역 분원의 재학생들이 지역 이름을 제외한 학교 이름만 ‘내세우는’ 것에 분노한다. ‘입시를 위한 노력을 덜 했다’는 이유로 자신과 같은 ‘취급’을 받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곧 계급의식과 학벌주의에 대한 찬동이다. 계급의식과 학벌주의가 사라지지 않고 공고해져서 자신은 우위에, 분원 재학생들은 열위에 있는 현상이 지속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계급의식과 학벌주의가 타파되는 것에 분노하는 것이다. 이러한 분노는 ‘학벌 블라인드’ 제도에 대한 논의가 오갈 때도 격렬한 여론을 형성하였고, 이번 논쟁에서도 재점화되었다.
 
청년층의 분노가 모순적이라고 여겨지는 이유는 그들이 기득권에 대한 저항으로서 반발하고 조소한 ‘노력’ 프레임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년들의 취업을 위한 노력을 경시하고 그에 마땅히 삶을 소모할 것을 요구하는 사회가 문제적인 것은 맞으나, 노력을 차별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노력의 가치를 존중하는 게 아니라 의미를 왜곡하는 것이다. 노력의 여부를 입시와 취업의 성패로 판단하는 사회에서 노력은 존중될 수 없다.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에 달하지 못한 노력은 없는 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열악한 노동 환경에도 불구하고 까다로운 채용과 훈련 과정을 거쳐 선발되는 보안 검색 요원들이 ‘노력하지 않았다’는 주장에 반박하기에 앞서, 노력을 강조하는 청년들의 요구 자체의 정당성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노력의 정도를 판단하는 것은 주관적이며 그렇기 때문에 감정적인 싸움으로 번지기 쉽고, 그것은 발언과 공격이 쉬운 아래를 향하기 마련이다. 여기서 발생하는 혐오를 제지하고 사실을 기반으로 한 이성적인 논쟁을 유도해야 하는 언론과 정계는 오히려 논점을 이탈하고 혐오를 부추겼다. 다수의 언론사는 자신의 노력이 무시당했다는 취업준비생의 성토를 기사화하여 노력하지 않은 비정규직 노동자와 노력이 헛수고가 되어버린 정규직 노동자 및 취업준비생이 이분된 프레임을 구성하였다. ‘묻지마 정규직’이라는 단어를 헤드라인에 걸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고용 안정을 위한 투쟁의 역사를 지웠고, 1분기만 산출된 올해 채용인원을 다른 해의 전체 채용인원과 비교하여 마치 정규직 전환으로 인해 채용인원이 줄어든 것처럼 정책을 지적하며 정확하지 않은 추측을 일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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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하태경은 ‘로또취업성토대회’를 개최하여 정규직 전환 대상자들의 ‘로또취업’을 반대하는 취업준비생들의 하소연을 공론화했고, ‘로또취업방지법’을 발의했다. 다수의 정치인은 이 대회에 참여하여 목소리를 보탰다. 안정적인 경제적 기반이 없는 취업준비생들이 당장 느낄 만한 감정적 우려에 공감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그것은 정규직 전환을 반대할 만한 근거가 될 수 없으며 따라서 공론화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언론사들과 정치인들은 권력을 기반으로 한 거대한 스피커를 활용하여 이를 공론화하였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이나 학벌주의 완화, 고용 안정을 약속하지 않는 이들이 청년들의 뒤에 숨어서 비정규직 노동자를 개탄하고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다. 이것이 불공정이며, 이것이 차별의 시작이다.
 
혹자는 해당 논쟁을 자신에게 필요한 공정과 평등만을 외치는 한국 사회의 민낯이 드러난 사건이라고 분석한다. 그러나 정확히는, 한국 사회의 기득권이 그 민낯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에 가깝다. 정규직 전환을 개탄하는 목소리 역시 공정과 평등이라는 이상적인 목표를 향해 뻗어 나갔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공정과 평등의 개념이 무엇인지, 혹여 누군가의 힘이 실린 채 활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것이 누군가에 대한 차별을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예민하게 감시해야 한다. 내가 서 있는 곳이 누군가에겐 뒤집어진 세상은 아닌지, 그리고 사실은 나도 뒤집어진 세상에 순응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근거가 자명한 의심과 함께 말이다.
 
 
참고 기사

 
'[인터뷰] 가짜뉴스로 촉발된 ‘인국공 논란’, 고개조차 들 수 없는 낙인...“사람이 무섭다”', 민중의소리 이승훈 기자
'[단독] 구본환 인천공항 사장 "SNS에 떠도는 소문으로 오해 생겨"', 신동아 고재석 기자
'고용안정됐는데 무더기 사표…공항 보안 검색요원에게 무슨 일이', 연합뉴스 손형주 기자
'"우린 무지하지 않다"…'인국공 사태' 규탄한 청년들', 한국경제 조준혁 기자
 
 
[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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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험이 가장 공정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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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제나 깊이있는 사색이 담긴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글을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건필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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