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 틀린게 아니라 다른거에요. [패션]

글 입력 2020.07.0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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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콜라보레이션이나 협업이라는 말을 비교적 다양한 분야에서 발견하는데 이런 걸 보면서 각박한 세상이 조금이나마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물론 없다.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은 라틴어로 함께를 의미하는 cum과 노동의 laboro가 합쳐지면서 태어난 말로 쉽게 풀어보자면 같이하는 노동 정도다. 너와 내가 얼싸안고 자본주의 사회의 피지배계층의 일원으로서 같이 한 번 죽어보자는 말을 거창한 말로 포장을 해 놓으니 대중과 미디어가 열광한다. 하지만 그 죽어 나가는 과정이 유의미함은 분명하다.

 

 

 

새로운 화합의 장


 

패션에는 미니멀리즘, 맥시멀리즘, 스트릿, 캐주얼 등 수도 없이 많은 장르가 있고 누군가의 옷차림이 어떤 스타일에 속하는가에 대해서는 주관적 판단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편이다 보니 정확하게 분류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며 보통은 이런저런 스타일의 교집합에 들어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도 크게 두 가지 갈래로 나눠보자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들이 모여 런웨이를 통해서 선보이는 쿠튀르 계열의 하이 패션(High Fashion)과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지나는 길에서 많이 보이는 스트리트 패션(Street Fashion) 정도로 볼 수 있는데 이 둘의 사이가 꽤 미묘하다. 마치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우리 엄마 아들 또는 우리 아빠 딸 정도의 관계랑 비슷하다.

 

쿠튀르 패션은 예술적인 가치를 중시하며 다소 귀족적인 모습을 보이는 경향이 있었기에 그들만의 리그에서 어울리며 대중적인 문화에 다소 소홀했던 반면 스트리트 패션은 고지식하게 보일 수도 있는 이런 쿠튀르 패션에 대한 반발로부터 파생되어 거리의 젊은이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패션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상극일 수밖에 없는 역사를 지니고 있으니 원수지간 같은 관계를 이어 올 수밖에 없는 것도 당연했으나 다양성과 개성을 중시하는 패러다임으로 물들어가는 사회 탓인지 이제는 함께 어울리면서 각자의 특성을 조화롭게 녹여낸 작품을 경쟁하듯이 뱉어내고 있으니 어안이 벙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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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Numero

 

 

루이비통, 구찌, 디올같은 브랜드는 수십 년의 역사가 보증하듯이 누구에게나 명품으로 인정받는 브랜드다 보니 콧대가 높을 수밖에 없고 자신들의 브랜드와 제품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나다. 쿠틔르 패션 세계에는 이들이 있다면 스트리트 패션의 세계에는 대표적으로 슈프림(Supreme)이 있다. 박스 로고 티로 유명한 이 브랜드는 가끔은 정말 이걸 도대체 왜 만들었나 싶은 제품도 출시하지만 스트리트 패션에 있어서 상징적인 브랜드임에는 부정할 여지가 없다.

 

그러니 이런 두 브랜드가 서로 협업을 해서 제품을 출시한다니 쿠틔르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스트리트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뒤집어 지지 않고서야 어찌 버티랴. 당연히 엄청난 파문을 불러왔고 처음에는 놀랐던 사람들도 고풍적인 매력과 자유로우면서도 친숙한 모습이 공존하는 디자인에 열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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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Hypebeast

 

 

이후부터 명품 브랜드와 스트리트 브랜드 사이의 협업 제품이 나오는 경우가 꽤 늘었고 서로 다른 장르를 달리는 브랜드 사이에서 협업으로 제품을 출시하는 빈도도 늘었다. 그중에서도 나이키가 이 콜라보레이션이라는 트렌드를 가장 잘 잡아낸 브랜드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언더커버(Undercover), 디올(Dior), 사카이(Sacai) 등 여러 브랜드와 콜라보를 통해 다양한 제품을 쏟아내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대고 있는 탓이다.

 

브랜드 사이에서 맺어지는 콜라보레이션을 그냥 패션 업계의 마케팅 수단으로 보고 넘길 수도 있지만 서로 다른 패션 세계를 살아온 역사를 알고 있는 나로서 이런 변화는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 있는 첫걸음이다. 스트리트 패션은 우리는 들으면 두 눈이 감기지나 않으면 다행일 클래식처럼 고리타분하다고 여기던 쿠튀르 패션에게 손을 내밀었고 쿠틔르 패션은 점잖지 못하게 설치며 품격 없다 여기던 스트리트 패션에게 손을 내밀었다.

 

결과는 지금 보이듯이 서로 다른 두 가지 매력이 공존하는 새로운 예술이 태어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고정관념과 편견을 버리고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로의 변화다. 이러한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한 곳이 바로 패션을 비롯한 모든 예술이다. 편견은 새로운 영감을 가려둔 장막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다.

 

 

 

패션. 시대의 반영.


 

세계대전 시기의 독일 나치군이 국내의 젊은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군복 디자인에 꽤 정성을 쏟은 덕분에 선풍적인 유행을 끌었다. 여성들이 사회적 탄압에서 벗어나고 자신의 자유로움을 표출하고자 하는 욕구를 표현하고자 했던 시기에는 미니스커트가 트렌드를 이끌었고, 힙합이 대중문화의 주류가 되면서 힙합 아티스트들이 즐겨 입는 스트리트 패션이 지금의 유행이 됐다. 일제 강점기에는 저항 정신이 당시의 문학에 담겼고, 피카소는 전쟁의 아픔을 담아내고자 게르니카를 그렸듯이 모든 예술의 한 편에서는 당시의 시대적인 모습이 담긴다. 그림은 안 그리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책은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옷을 안 입고 생활하는 사람은 없다. 옷은 곧 패션이고 패션은 예술이며 거리에 넘쳐나는 이 패션은 결국 그것이 존재하는 당시의 시대를 여과 없이 비추어내는 살아 움직이는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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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Madame.Blue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분홍색 옷을 입은 남자를 보면 거부감을 느끼거나 남자가 뭐 저런 옷을 입느냐는 말을 뱉는 것이 보편적이었고 여자가 머리를 짧게 자르면 여자애가 왜 그러고 다니느냐는 말을 듣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이 당연하고도 올바른 것으로 여겨지던 시기를 지나친 지금에 와서 이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사람은 질타를 받지나 않으면 다행이기에 남자가 입는 옷, 여자가 입는 옷 따위의 고정관념을 벗어 던지고 젠더리스 또는 앤드로지너스같은 스타일들이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지금의 우리 시대가 추구하고자 하는 자유와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라는 가치가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증거다. 이래야만 하고 저래야만 하는 사고방식을 벗어나 이건 저렇게도 해보고 저건 이렇게도 해보자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명품 브랜드와 스트리트 브랜드 사이에서 맺어지는 콜라보레이션은 서로에 대한 적개심과 차별로 인한 갈등 대신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고 패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패션으로 다가가려는 변화의 발걸음이자 또 다른 모습의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다. 덕분에 나를 비롯해 패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색다른 즐거움을 누릴 기회를 얻었고 디자이너들은 지금까지 시도하지 못했던 새로운 영감을 얻으며 윈윈(Win-Win)이라는 결과를 끌어냈다. 매출과 실적 증가라는 실질적 이득은 말할 것도 없다. 다만 한 가지 더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런 흐름이 좀 더 넓은 범위의 사회로까지 퍼졌으면 하는 점이다.

 

코로나 사태에서 비롯된 공포심으로 인해 서로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이 비교적 더 날카로워졌음을 자주 느낀다. 이전부터 인종, 사회, 문화적 지위에서 나오는 차이로 인해 불가피하게 갈등을 겪으며 살아온 우리였고 간혹 폭력적인 사태로까지 번지는 경우도 빈번했다. 최근 미국에서 벌어지는 흑인에 대한 차별을 외치는 시위도 유별난 일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반복됐던 앓음의 또 다른 하나일 뿐이다. 내가 입는 옷은 나만이 입는 게 아니라 나 이외의 다른 누군가도 반드시 입는다. 전혀 다를 수도 있고 비슷할 수도 있고 어쩌면 완전히 똑같은 옷을 입었을 수도 있다. 지금 나 혹은 당신이 우연히 마주친 전혀 다른 모습의 누군가가 크게 다를 것 없는 일상을 살며 게 다를 것 없는 옷을 입는다. 그들 모두가 언젠가 나 혹은 당신의 우리가 될 수도 있는 사람들이다.

 

모든 옷을 다 좋아할 수도 다 입을 수도 없듯이 모든 사람과 사회, 문화를 좋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우며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도 이쪽은 아니다. 싫어하는 것과 배척하는 것, 괴롭히는 것은 명백하게 다른 일이다.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며 성별에 얽매이지 않는 패션이 대세가 되고 점점 더 자유로운 스타일이 유행하는 것처럼 좋아하지는 않더라도 이 옷 저 옷 그냥 보고 넘기듯 서로 다른 문화를 겪었던 사회에서 온 이들도 그저 있는 그대로 두고서 그렇구나 하고 이해하고자 함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다.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자유이기에 당연히 강요할 수 없으며 어느 한쪽도 잘못되지는 않았다. 그저 배척과 차별로 이어지지만 않고 자유롭게 입으며 내 몸 위에 그려내듯이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이런저런 문화를 입는 패션을 선보이는 사회가 오기를 기다린다.

 

 



[김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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