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사건 없이 지속되는 아름다움

살아라, 너는 아름답다
글 입력 2020.07.01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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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모노노케 히메에서 산이라는 인물은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며 위험에 뛰어든다. 아시타카는 그런 산을 온몸을 희생해가며 지켜낸 다음 임무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자신을 죽이려 드는 산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아름다워."

 

 

아시타카가 산에 대해 시각, 청각 등 감각적으로 받아들인 결과가 산이 아름답다는 판단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보는 앞에서 산이 추하게 변했더라도 아름답다는 말은 그대로였을 것이다. 그가 가지고 있는 산에 대한 기억은 그것이 미에 관한 것이든, 추에 관한 것이든 아름다운 잔상일 것이기 때문이다.

 

아시타카는 산을 사랑한다. 아름답다는 말은 그래서 아름답다. 아름다움은 그 느낌의 근거가 되는 잔상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잔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아름다움의 정의는 달라진다. 어떤 경우 잔상은 미와 추 모두를 포함할 수 있지만 흉측한 뉴스를 보고 아름다움을 느끼지는 않는다. 문화예술의 경우에만 미와 추가 아름다움이 될 수 있다.

 

추는 미에 비해 항상 타자였고 미가 주인공이 되어 사랑 받을 때 구석에서 주목 받지 못했다. 주류가 되지는 못했지만 추는 언제나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스 신화에서의 지하 세계에서부터 추가 존재했음이 드러나고 우리나라의 경우 추는 판소리의 해학과 장정일이나 손창섭의 문학 작품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추는 오직 문화예술에서만 정당하게 표출될 수 있었다. 엄격한 미의 기준의 시대에서도 양반들은 판소리 심청가에서 뺑덕어멈의 추태에 웃었다. 현대가 되자 추를 표현한 작품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이제까지 아름답다고 여겨졌던 미를 대표하는 작품들처럼 대놓고 전시될 수 있게 되었다.

 

미와 추는 카타르시스 또는 생각할 여지를 준다는 측면에서 동등하고 문화예술 속에서 똑같이 향유될 수 있다. 미는 반드시 아름다움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대상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은 대상이 미에 적합해서가 아니다. 자신 깊숙이 내재되어 있던 아름답다는 기억을 대상의 잔상이 건드렸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추도 이러한 잔상을 얼마든지 건드릴 수 있다는 점에서 문화예술 속 아름다움의 스펙트럼은 넓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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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 문화예술의 범주에서 미와 추를 포괄한다는 사실은 좀 더 중요한 사실을 알려준다. 바로 미와 추가 공존하는 문화예술은 기득권이 지배하던 세계를 전복하는 타자의 가능성을 내포한다는 사실이다.

 

알랭 바디우에 따르면 이러한 추의 힘은 사건을 만들어내는 힘이다. 지하세계의 추함이 담긴 그리스 신화가 만들어졌을 때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인류는 사건을 기다려왔는지도 모른다.

 

사실 반란이 일으켜지지 않아도 타자는 존재하는 자체가 사건이고 아름다움이지만 그것을 아름다움의 반란이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이 사건은 기다려지는 동시에 일어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타자가 지배자가 되어 다시 기존의 질서를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타자가 존재함으로써 이 사건은 지속되어 왔다. 사건, 즉 타자가 존재하는 상태를 지속하기 위해 다음 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이러한 타자적 존재로서의 추를 기득권의 미와 함께 아무렇지도 않게 버무리는 공존을 뜻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뒤섞인 상태의 아름다움을 포용하는 문화예술이 있기에 추는 미의 가면을 덮어쓰지 않고 추의 얼굴로 존재하게 된다. 문화예술은 아시타카가 산에 대해 품은 잔상이 어떤 것이냐에 상관없이 그가 내뱉은 아름답다는 말을 아름답게 한다. 문화예술을 애호하게 되는 이유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아름다움의 반란을 유지하게 하고 아시타카가 산을 사랑하게 하는 힘 말이다.

 

 

 

김수연이다.jpg

 


[김수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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