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애호(哀呼)'로 풀어내는 나의 에세이

글 입력 2020.07.01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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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호하다 ;

 

1) 愛好 : 사랑하고 좋아하며 소중히 보호하다.

 

2) 哀呼 : 슬프게 하소연하다.

 

 

되돌아보니, 나의 삶은 문화예술로 점철돼있었다. 어렸을 적 취미와 놀이의 수단이었던 미술은 우연의 일치에서 벗어나, 어느샌가 평생의 업으로 나의 곁에 존재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에게 문화예술은 함께한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긍정적인 애호가 아닌, 병을 주어 곪아 터지게끔 하려는 부정적인 애호에 가까웠다. 명시해놓은 사전적인 의미처럼 사랑하고 좋아한다는 의미이기보단, 슬프게 하소연하는 존재로 다가왔기에.

 

중학생 때의 풋풋했던 시절을 거쳐, 본격적인 꿈의 준비를 위한 예술 고등학교로의 진학은 그러한 애호의 존재를 확연히 각인시켜 주었다. 공식처럼 틀에 짜인 입시 미술을 마주한 뒤, 나는 따라가기에도 벅찬 나의 부족한 실력을 그 틀에 어떻게든 끼워 맞추려 했다. 그렇게 그려진 그림은 타인에 의해 평가되고 좌절되었으며 개척해가던 미래의 모습마저 뿌옇게 처리해버렸다. 삶의 방향을 찾으러 간 곳이었지만, 그곳에서 오히려 아무것도 아닌 나의 현 상태 그대로를 자각해버린 것이다.

 

나는 슬프게 하소연하는 애호 그 자체였다. 문화예술은 그저 꿈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고, 나는 그것을 발판삼아 도약하려 했다. 하지만 행복한 상상이 반드시 현실로 나타나리라는 법은 없기에, 삼키기엔 역부족이어서 입 밖으로 무참히 내뱉어지는 쓴맛밖에 볼 수 없었다. 연속된 쓴맛을 보고 나니 자신감은 결여됐고 나에 대한 믿음과 굳은 의지는 저버린 지 오래였으며, 탐탁지 않은 평가를 받으면서 속은 점점 더 곪아들어갔고 자책의 눈물을 흘리던 나날의 지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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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분야에서 _______한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구체적인 목표보다는 실력을 쌓아 원하는 대학에 가기 위한 간절함만이 앞섰던 그때의 나는, 우선순위가 뒤바뀌었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발걸음만 재촉했다. 그 과정에서 애호(哀呼)의 감정은 갈수록 골이 파여 깊어졌지만, 묵묵히 견디며 속으로만 아파했다. 비록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스스로 다독이긴 했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암흑 속을 홀로 걸어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친구들과 함께 격려하고 "할 수 있다!"를 외치며 다시금 일어서고 삶의 목표를 바로잡기도 했지만, 문화예술과 대면한 나는 한없이 작아지고 슬퍼졌다. 나의 분수에 맞지 않는 이상향만을 추구하고 있진 않은지 의구심이 들던 순간도 여러 번이었다. 그런 기억에 사로잡혔기 때문일까, 문화예술에 대한 진정성이 담긴 긍정적인 애호(愛好)의 감정은 고등학교 시절 느껴본 기억이 거의 없다.

 

나는 목표로 하고 있던 미술교육과와 디자인과의 입시에서 쓰라린 고배를 마셔야만 했고 최후의 수단으로 지원했던, 어쩌면 예상치도 못했을 미술이론 관련 과에 진학했다. 입학 당시에는 그 선택이 얼마나 많은 길을 열어 보여 줄 것인지를 알지 못했다. 그때 당시 내가 설정했던 최고의 성취를 이루었으면 나는 현재와는 또 다른 삶의 모습으로 살아가며 거기에 맞는 미래를 설계했겠지만, 최후의 수단을 품고 조심스레 나아가야만 했던 나에게 문화예술은 최적화된 새로운 방향을 일러준 듯하다.

 

입학 후 미술사, 미학, 미술비평 등 수많은 예술 강의를 통해 깊이 있는 문화예술의 발자취를 탐독하며 이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관심과 흥미에 설렜다. 적성에 맞으면서도 흥미를 느끼고 잘할 수 있는 것이다 보니 결과도 만족스러웠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대학 입학 후 미술이론은 나에게 그런 존재로서 자리해왔다. 그런 이유로, 내가 품어왔던 애호의 의미를 동형어인데도 정반대의 뜻을 지닌 '애호(愛好)'로써 전환할 기회를 마련해준 인생의 분기점이 아니었나 싶다. 나는 다시 자신감을 되찾았고 진정으로 문화예술을 아끼고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이때까지 겪은 상황과 여러 고민은 그저 겉핥기에 불과했고, 합격과 불합격의 당락을 좌우할 최적의 황금열쇠를 찾아 나가려는 고통의 몸부림일 뿐이었다. 그 상태에서는 문화예술의 진정한 가치를 바라볼만한 여유도, 조건도 갖출 수 없었기에 나에게 있어 몸부림은 마땅히 수반될 수밖에 없었던 필연의 행위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인고의 과정이 있었기에, 사랑하고 좋아하며 소중히 보호할 수 있는 지금의 애호가 더 빛나 보이는 게 아닐까. 그렇기에 슬프게 하소연했던 그때의 나를 대변하는 애호 역시, 나와 내 삶의 일부분을 차지하는 소중한 추억으로 따스히 보듬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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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호의 감정을 더욱 극대화하게 된 건 2020년 어느 봄날, 우연한 기회로 내게 찾아온 아트인사이트로부터 시작됐다. 지원서에 적힌 다양한 질문은 나를 통찰의 세계로 이끌었고, 문화예술에 관한 생각을 가감 없이 적어 내려가게끔 유도했다. 그렇게 온전한 내 생각을 표현해 제출했을 뿐인데, 나는 19기 에디터로 합격해 4개월간 20편이 넘는 오피니언과 리뷰 글을 오로지 나의 목적대로 선보일 수 있었다.

 

평소라면 관심 가지지도 못했을 다양한 분야에 관한 문화 초대를 향유하거나, 나의 관심 영역을 더욱 확장하며 글을 써나갔다. 아트인사이트를 통해 나 자신조차 몰랐던 잠재 능력을 무한히 발산해가며 나, 그리고 글을 읽을 수많은 독자를 위해 막중한 책임감을 갖기도 했다. 매주 기고할 주제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기에, 아트인사이트는 어느덧 일상의 루틴으로 자리해있었다.

 

그렇게 루틴이 된 플랫폼은 나를 더 큰 통찰의 세계로 인도하며 문화예술의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삶의 가치를 경험하게끔 했다. 글을 쓰며 내 속에 담긴 복합적인 모든 것들을 끄집어내 자기 치유의 과정을 거치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나의 글을 읽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의 존재로부터 값진 원동력을 전해 받기도 했다.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로서의 자부심이 저절로 생길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었다.

 

나는 아트인사이트로부터 비로소 완전한 치유의 과정을 거치면서 문화예술 전반을 애호할 수 있게 되었다. 나만이 표출해낼 수 있는 통찰의 힘으로 쓰여진 글과, 그런 글을 읽으며 각자의 방식대로 새로운 통찰을 맞이하는 사람들. 그러한 체계가 아트인사이트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기에 인사이트의 즐거움은 돌고 돌며 순환한다. 그 상황을 루틴처럼 지켜보는 나는 더할 나위 없는 행복함을 매 순간 느낀다. 3개월간의 여정이 몇 년의 아픔을 급속도로, 그리고 완벽히 치유했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닌가? 그렇게 예술에 대한 나의 태도가 바뀌게 된 순간, 애호의 본질적인 의미 역시 변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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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나의 삶과 어느 정도 맞닿아있는 문화예술의 오랜 발자취를 보고, 그것에 대한 애호의 감정이 생겨난 것 같다. 문화예술은 르네상스 이전까지 기술자인 장인의 손길이 닿아 생산된, 노동의 산물에 그치지 않는 Art(기술)로 정의돼왔다.

 

그 상황에서 고대 철학자인 플라톤은 예술가들을 폴리스로부터 추방해야 한다고 말하며 예술의 근본 자체를 평가절하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문화예술은 미적 의식을 지녔던 당대의 사람들로 인해 숨겨진 잠재성을 무한히 뽐내 최고의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꽃피웠고, 우리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예술의 가치를 구축해내기에 이르렀다.

 

나의 삶 역시 문화예술로 오랜 시간 점철돼있었지만, 잠재 능력을 뽐낼 수 있었던 건 막상 3년이 채 되지 않았다. 비록 탁월한 재능을 가진 건 아니었지만, 나는 예술을 포기하지 않았고 불굴의 도전정신을 가진 채 아트인사이트에 지원했으며 에디터로서 최선을 다해 문화예술을 애호하려 했다. 그런 애호의 감정이 생겨나기까지 예술의 가치를 발굴해 르네상스를 꽃피우게 한 당대의 사람들처럼, 아트인사이트의 에디터 활동은 나도 몰랐던 내 속의 무궁무진한 잠재성을 끝이 없을 정도로 발굴해준 것이다.

 

그렇게, 문화예술을 사랑하고 좋아하며 소중히 보호할 수 있는 완벽한 용기가 나에게 찾아왔다. 이제는 더이상 슬프게 하소연하는 애호의 의미를 마주하지 않고, 그저 찬란했던 하나의 추억으로 품은 채 새로운 애호의 의미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다. 잔잔하면서도 큰 울림을 주는, 누군가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빛나는 예술의 본질을 일깨워줄 수 있는 사람으로서 말이다.

 

 


 

 

P.S 여러분은 문화예술을 애호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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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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