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낯익은 타인을 대하는 법 [도서]

글 입력 2020.07.01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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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온 24년에 가까운 시간을 통틀어 인간관계에 대한 문제로 가장 격렬하게 고통받았던 시간은 사실 성인이 된 이후가 아닌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였다. 꽤 밝고 활발한 편이었으며 뭐든 열심히 하고 또 잘 해냈지만 친구 관계만큼은 나에게 미지의 영역이었다.

 

혼자 있는 게 좋았지만 함께이고 싶었다. 수많은 무리 가운데 나는 혼자였지만 따돌림을 당하는 건 아니었다. 어정쩡하게 두루두루 친했다. 부딪히고 떨어지고, 무리에 어설프게 껴있다가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고 나오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그렇게 지칠 대로 지쳐버린 나는 꾀병을 부려 학교 가기를 거부하며 ‘내 인생의 암흑기’라고 불리는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더 이상 꾀병이 먹히지 않았고 학교는 가야 했다. 그래서 혼자 담을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그건 일종의 방어기제였다. 혼자 있으면 상처받을 일이 없으니 혼자 있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실패하지 않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과 동급으로 바보 같은 일이었지만. 사실 지금도 그 담을 완전히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나는 여전히 사람을 밀어낸다.

 

하지만 슬프게도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을 대학교 4학년이 되어서야 수긍했다. 지금이야 휴학을 하고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서 인간관계로 스트레스 받을 일이 거의 없어 평화로운 내면세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곧 졸업이 등을 떠밀어 나가야 할 사회가 완벽한 타인투성이라는 건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서둘러 나갈 채비를 하기로 했다.

 

 

“가족에 대해 궁극적으로는 아무것도 말할 게 없는 심심한 상태까지 이르고 싶다”

 

 

책을 펼쳤다. 그리고 가족 이야기에 조금 놀랐다. 가족도 결국 타인이라는 건 받아들이기 힘들면서도 1 더하기 1은 2인 것처럼 당연한 사실이었다. ‘가족이기 때문에’ 이해해야 했던 (그러나 결국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도 있었고, 선을 넘어서까지 서로에게 건넨 관심도 많았다. 피가 섞이지 않은 타인으로 인한 슬픔 그리고 분노, 우울만큼 피가 섞인 타인으로 인한 것들 또한 가득했다.

 

부모님과는 대학 탓에 상경하게 되어 고속버스로 왕복 6시간 거리에 떨어져 사니 그 사이가 조금 더 애틋해졌다. 여기에는 확실한 비교 대상이 있는데 함께 상경해서 한 집에 사는 언니와는 24년 동안 숨 쉬듯 다투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함께 있어 좋을 때도 있지만 나는 꽤 자주 거리를 두고 싶다고 생각한다. (물리적, 심리적 거리 모두 말이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무조건적인 이해와 관심 그리고 사랑은 힘들다.

 

때로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일도 없는 그 상황에 두드러지게 행복함을 느낀다.

 

 

“사랑을 받아야만 우리 삶이 가치 있는 건 아니다. 사랑을 받지 않고도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우아하다. 스스로의 성장을 막고 자신을 해치는 사랑이라면 어떤 정당성도 인정될 수 없다. 굳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당신은 ‘사랑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어쩌면 우리는 가족이 아닌 타인에게 더 많은 사랑을 갈구하며 사는지도 모르겠다. 더 많이 기대하고 바란다. 내가 그들에게 주는 만큼 내게도 돌려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사랑은 보이지 않아도 서로 다른 크기의, 다른 형태의 것을 가지고 있다. 내가 조금 내어준 것이 그 사람에게는 벅찰 만큼 커다란 것이었을 수도 있고, 내가 ‘고작 이만큼’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그 사람에게는 전부였을 지도 모른다.

 

사실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내가 사랑을 하고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내어준 만큼 돌려받을 수 없을 수도 있고 심지어는 남이 될지도 모른다. 종종 사랑하는 것에 대한 회의감이 들 때도 있을 거다. 그럼에도 후회 없이 오늘 내가 줄 수 있는 만큼 가득 내어주는 것. 작가의 글을 읽으며 내가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은 다시 한 번 더 큰 기쁨으로 다가왔다. 그러니 내일은 더 사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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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작가의 수많은 이야기 중 기억에 남는 한 조각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지인 몇 명의 얼굴이 떠올랐다. 졸업 패션쇼를 준비하며 힘들어하고 있었을 때,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아 앞이 깜깜했을 때, 심지어는 아무런 주제 없이 대화하고 있었을 때. 그들의 대사 중 한 줄이었던 것이 내게는 자신감이 되고 용기가 되고 온기가 되어 나의 일부가 되었다. 타인은 지옥인 동시에 구원이기도 했다.

 

 

“어느 선까지 할 건지 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내가 할 일이다. 내 인생의 선은 내가 긋는 것이다. 내 인생 전체를 그곳에 모조리 전시할 필요는 없다. 원할 때는 잠시 연결되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고 그들과 항상 연락을 주고받으며 일상을 공유하지는 않는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이 거리에서 나는 나의 낯익은 타인들에 연대와 감사함을 느낀다. 멀어진다고 불안해하지 않으며 가까워지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저 어쩌다 듣게 된 잊지 못할 한 마디와 그 사람을 하나 둘 떠올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더 이상 미디어가 보여주고 사회가 요구하는 끈끈한 관계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 다름을 인정하고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시간을 살아가며 사랑하고 연대하면 되는 것이다. 확신할 수 있게 된 한 가지는 우리는 항상 연결되어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앞서 적은 것들은 이 책의 일부일 뿐이다. 책을 한두 장 넘기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게 되는 것들, 인덱스 스티커를 붙여 놓고 두고두고 꺼내어 읽고 싶은 것들을 끝없이 마주하게 된다. 그 주제 또한 다양하다. (기억에 남는 것들을 글에 모두 적는다면 책 내용의 반을 써야 할 거다.) 그렇게 조곤조곤 진솔하게 풀어낸 이야기들을 읽고 있자면 작가와 가만히 마주 앉아 이야기를 듣는 기분에 편안함을 느끼기도 한다.

 

이 책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우리가 미래에 만나게 될 어느 타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가족, 친구, 연인 등의 이름으로 타인 중에서도 특별하고 낯익은 타인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러니 이야기를 읽으며 과거의 일들이 떠오르고 어제와 오늘의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런 기억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책을 다 읽는 데에 3일이 걸렸다. (에세이는 보통 하루면 다 읽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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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끄트머리 작가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나 자신을 타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란 사람을 더 잘 이해하고 싶어서였다. ‘타인’이라는 가벼운 이름표를 달아줘서 앞으로 더 홀가분하게 살고 싶은 바람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노력하는 것만큼 나 자신에게도 공평하게 너그럽게 대하고 싶다. 내가 완벽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란 걸 잊지 말고 남들과 전혀 다를 바 없고 그저 ‘적당히 괜찮은’ 사람 정도만 돼도 괜찮다고.”

 

때로는 나조차도 타인이 되고 싶은 세상에서 인간관계에 답이 어디 있겠냐마는 이 책 덕분에 수많은 타인 사이로 다이빙하기 전 준비 운동을 하는 법을 배웠다. 이제 굳어 있던 몸을 유연히 움직여 헤엄칠 수 있다. 적어도 내일은 오늘보다 더 가벼운 마음으로 낯익은 타인들을 그리고 나 자신을 마주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두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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